현충일, ‘푸대접 받는 태극기’ 유감천만!
소망해본다, 내년 제59주년 현충일엔 도시 전체가 태극기 물결로 출렁이는 광경을.‘태극기 유감’아닌 역동적인 현충일이 되기를”
6월의 태양이 눈부시다. 온 산하가 초록빛으로 더욱 짙어가면서 4계절이 분명하면서도 국토의 풍광 마디마다에 알알이 새겨지고 배긴 숱한 사연과 지천으로 깔린 이름 모를 들꽃의 행렬이 한데 뒤엉키며 쉼 없이 눈길을 자극한다.
특히나 도시민들에 있어 도심지 생활이란 개미 쳇바퀴 돌 듯한 일상에만 젖다 잠시만 밖으로 나와 보면 도시 속 한가운데서도 그림처럼 펼쳐지는 그 작은 서정에 감탄사를 연발하는 곳이 산지사방으로 널려지니 역시 ‘아름다운 강산’ 대한민국이란 말이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란 걸 절로 깨닫게 되곤 한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
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대한민국이 있기 까지 누가 이 나라를 지켜왔고 키워 왔으며, 짧은 근현대사 기간 동안 이토록 부유하고 강성한 나라를 오늘의 우리에게 물려주고 있는가?
이른 아침 출근길, 회사 앞 국기 게양대에서 힘차게 펄럭이는 태극기를 바라볼 때면 늘 가슴 벅차오르지만 매번 대하는 6월 이때면 하늘 높이 휘날리는 국기를 대할 때마다 또 다른 설렘과 감동에 젖게 됨은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이 유달리 험난하고 남다른 탓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젖게 되곤 한다. 어찌 그게 필자만의 생각이겠는가.
6월6일 현충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곧바로 서랍장을 열고 곱게 접혀 보관된 태극기를 꺼내 베란다에 걸었다. 물론 혼자서였다. 미처 전 날 아이들에게 같이 태극기를 달자는 말을 까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개를 내밀어 인접 아파트 주위를 살펴본다. 너무 이른 시각이었을까, 위아래로 살펴본 주변 아파트엔 아직 태극기가 보이지 않는다. 조금은 불안하다. 올해는 이 아파트 전체가 태극물결로 휩싸이기를 작년 현충일 아침에도 그렇게 기원했기 때문이다. “잘 되겠지, 올해는 꼭 그렇게 될 거야” 하는 되지도 않을(?) 기대감을 품었다.
6월6일 오늘은 현충일, 유치원생부터 확실하게 태극기를 다는 날임을 아는, 말 그대로 삼척동자가 다 아는 날이기 때문이다.
확인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9시가 훨씬 넘은 시각, 애마(자전거, 세븐-11호)를 타고 아파트를 한 바퀴 돌아본다. 아니, 전체를 돌아보기도 전 결론은 이미 났다. 돌아오는 것은 허탈감뿐이다. 2,938세대 중 10퍼센트는 고사하고 1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 눈을 씻고 고개가 아플 정도로 헤아려 봐도 1개 동에 걸린 태극기는 너댓 집에 많아야 열 집 미만이다.
이번엔 방향을 바꾼다. 가야 할 곳도 있어 그 복장 그대로 시내로 향했다. 평소 한강변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지만 오늘만은 일부러 시내로 방향을 틀었다. 암사동 지하철역에서 천호동 4거리로 오는 동안 주변을 샅샅이 관찰한다. 상가에 걸린 태극기는 단 한집. 천호동 올림픽대로를 타고 가다보면 좌우대칭이 절묘하게 지어진 지역 내 명물이라면 명물인 극동아파트도, 더 지나 송파구 성래2동 주상아파트도, 풍납동 현대아파트도, 잠실 나루역 부근 파크리오 아파트 단지도 필자가 거주하는 암사 선사현대아이파크와 매일반이다. 기념일 때면 중앙 도로변을 연해 줄줄이 걸리던 태극기도 이 날 현충일엔 없었다.
오전 10시, 송파구 영파 여자중․고등학교 앞 4거리. 1분간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사람이나 차량이나 정지(차)해 묵념을 갖는 시간이다. 높고 장중한 사이렌이 울리지만 가던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숙이는 시민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신호등을 받아 빠르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청년, 아주머니, 아저씨, 직진-좌회전 동시신호를 받아 줄지어 통과하는 택시며 승용차, 굉음도 요란하게 통과하는 피자집 오토바이.
필자가 잘못 본 것일까? 근처 학교 본관 정면 중앙에 보이는 국기게양대에도 펄럭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텅빈 깃대만 덩그라니 놓여 있을 뿐이다. 오늘은 출근하지 않는 그냥 휴일일 뿐이고, 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그저 어제와 같은 오늘을 이어가고 있는 것뿐이다.
혼자서 하는 묵념, 쑥스럽지만(?) 나만의 묵념을 마치고 풍납2동으로 들어서자 그제서야 조금은 기분이 풀려지는 느낌이다. ‘24시간 마트’에서 한강 쪽으로 이어지는 길 양옆으로 태극기가 죽 게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주민자치센터에서 내 건 것인가? 반가움이 앞서며 페달에 가해지는 힘도 세진다. 계속 달리자 성내천 변 테니스 코트에선 경기가 한창이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지런한 저 분들은 태극기부터 먼저 달고 나왔겠지. 조금 전 묵념 땐 게임을 잠시 멈추고 하나 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셨겠지” 하는.
현충일 하루 전인 5일 서울의 한 유치원 원아들이 스스로 만든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고사리손 태극기 휘날리며’ 행사를 가졌단다. 순국선열의 얼을 기리고 현충일의 의미도 새긴다는 취지의 행사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서울을 비롯한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자치구별로 현충일 태극기 달기 운동을 중점 장려하고 태극기 게양 시범단지도 운영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오랜 얘기가 아니다. ‘태극기 달기’.(?) 어쩌다 태극기 달기를 운동으로 장려하고 시범운영하는 상황까지 내몰리게 되었을까. 어른들을 향해 ‘고사리 손’ 어린이들이 태극기 달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2013년 6월6일은 제58회 현충일이다. 6․25한국전쟁 정전 3년 후인 1956년 국립서울현충원을 창설하고 안장을 실시했던 그 해 4월에 현충일을 제정하고, 6월 6일부터 실시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과 국토방위의 성전(聖戰)에 참여하여 호국의 신으로 산화한 전몰장병의 영령에 대하여 생전의 위훈을 추모하고 명복을 기원하는 동시에 그 유가족에게 조의를 표하고 조국통일 성업에 대한 온 국민의 결의를 굳게 다짐한다는 차원에서 제정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유엔 가입 212개국 중 국토의 크기만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이르지 못하지만 대한민국이 담고 있는 군사․외교․경제적 위상과 한류열풍은 이미 세계 상위권 수준이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세계 최빈국(最貧國)이었던 60여년 전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1964년 최초로 수출 1억달러를 달성했던 우리가 2011년 역사상 최초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하면서 2년 연속 세계의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서 있는 것이다. 누구의 덕(德)이고 후광(後光)이겠는가?
6월6일 아침도 시내거리는 활기에 넘쳤다. 6월의 푸르름이 도시를 감싸고 활보하는 시민들의 발걸음도 가벼워 보였다. 하지만 활기 넘치는 거리 시민들의 걸음마다에 무언가 부족해 보인 게 있었다면, 그것은 조국 광복과 불법 침략자 공산도배들로부터 나라를 보위하기 위해 단 하나뿐인 생명을 바친 위대한 선열과 호국영령들을 잊고 있다는 사실일 게다.
그렇게 58주년 현충일을 보낸다. 소망해본다. 내년 맞이하는 현충일엔 도시 전체가 태극기 물결로 출렁이게 되기를. ‘태극기 유감’ 아닌 역동적인 그런 현충일이 되기를.(konas)
이현오(코나스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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