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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은 대륙침략에 대한 일본의 야욕

일본의 재무장은 대륙침탈을 위한 속셈과 계략이 숨어있다. 독도영유권만 해도 포기는 커녕 오히려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Written by. 김차웅   입력 : 2013-07-31 오전 8: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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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대일관계는 선린우호임에도 일본의 침탈은 계속되었다. 1871년 흥선대원군이 부산 가덕도에 척화비를 세웠지만 1904년 뜬금없이 일본이 들어와 수군기지화 함으로써 비(碑)의 뜻을 거스르고 말았다.

 일제강점기, 일본 수산인 조차 임진전쟁 때 자기들 선조가 만든 왜성이 있다 하여 한반도 동남해역의 요새마다 서슴없이 ‘태합(太閤)’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였다. (참조 : 1910.5, 대한제국 농상공부 수산국 자료)

 경남 통영의 ‘판데목’은 통영과 미륵도를 연결하는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로서 1932.11.22 준공 때는 ‘태합굴(太閤堀)’이라 했다. 굴 이름을 태합이라 한 것은 지명인 판데목이 임진왜란 당시 일본인이 팠다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춘원 이광수는 충무공의 “난중일기”에 나오는 ‘숙착포량(宿鑿浦梁)’이라는 글귀로 보아 임란이전(신라)부터 판 것이어서 태합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내다보았다. (참조 : 1931.6.10, 동아일보)

 그러나 일본은 침략자의 상징인 태합을 즐겨 썼다. 1932(소화 7).10.26 경상남도령[도지사 渡邊豊日子] 제16호로 제정된 태합굴운하통항료징수규정(太閤堀運河通航料徵收規程)에서도 찾을 수 있다. (참조 : 1932.11.1 조선총독부 발행 관보, 국가기록원 소장)

 태합은 조선침략의 원흉인 관백(關伯) 도요또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의 직함이다. 1591년 풍신수길이 양자 토요토미히데쓰구(풍신수차[秀次])에게 관백(關伯, 간파쿠)을 물러주고 스스로 태합(太閤, 다이코)이 되었다.

 일본인들이 자기네 조상들과 관련이 있다 하여 태합이라 한 것은 이곳 말고도 있다. 일제 강점기, 국내에 진출한 일본 수산인들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일대를 '윗 태합'이라 하였다. 주변에는 서생면 진하리(실성산)에 서생왜성이 있으며 대송간절곶을 끼고 있는 서생포(西生浦) 앞바다는 물발이 거세다.

 또한 일본인들은 죽성왜성이 있는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일대를 '아랫 태합'이라 하였다. 초량 왜관으로 옮겨지기 전의 이곳 두모포(豆毛浦)는 원래 만호의 땅이었다. 죽성 월전포의 남방에 돌출된 갑각(岬角)이 광계말(廣溪末)로서 일본인들은 부근에 암초가 많고 조류가 빨라 어선이 자주 난파되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한일합방이후 일본인들에 의해 태합으로 분류된 동남해역은 물발이 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다 같이 그들의 전략거점이었던 왜성이 포진해 있어 태합은 곧 침략의 상징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겠다.

 일본인들이 한반도 동남쪽의 수로를 두고 태합이라는 용어로 구획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일본과 근접한 전 해안을 샅샅이 꿰뚫고 있었다는 증거이며 그들의 침략적 야욕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처님이 마지막 설하였다는 경전이 묘법연화경(법화경)이며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은 법화경에 귀의한다는 뜻이다. 1592.4.14 왜적들은 함선에 검은 휘장을 치고 “나무묘법연화경”이라는 글이 적힌 깃발을 앞세워 이리떼처럼 영도 앞 바다에 물밀듯 몰려들었다. (참조 : 칼의 노래, 김훈)

 불교의 진리마저 전쟁의 도구로 사용했던 일본의 무도함에 피가 거꾸로 쏟는다. 하필 이 글자가 공교롭게도 일본에서 태동된 종교단체의 이름이어서 어안이 벙벙했지만 국경 없는 불법(佛法)을 접하면서 의구심은 사라졌다. 그러나 역사는 일본을 일어서게 하고 있다.

 “삼국유사”와 같이 신라 제8대 아달라왕 4년(157),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바다건너 왜의 왕과 왕비가 되자 왜는 피지배라는 이름을 지우기 위해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중반까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내세우고 임진전쟁 때는 철군조건으로 한반도 남부 3도를 넘겨달라는 뻔뻔스러움을 내비췄다. 안보는 비단 북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일본의 재무장은 대륙침탈을 위한 속셈과 계략이 숨어있다. 독도영유권만 해도 포기는커녕 2013.2.22에는 오히려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섬나라 왜는 패권주의 근성에다 철저한 실리주의 및 기회주의 국가이다.

 최근 한일해저터널연구회(사단법인)가 일본의 일한해저터널연구회와 교류하면서 해저터널추진을 위해 2008년 부산광역시, 2009.6.26 경남 거제시에서 각각 설명회를 가졌다. (참조 : 부산일보 2009.6.29)

 이 문제는 간단치 않다. 미래지향적이어야 할 한일 관계에 찬물을 끼얹겠다는 의도가 아니다. 동북아의 물류화와 관광화 등 경제적인 면과 국경없는 종교적인 면도 있겠지만 교세확장, 실리추구 등이 미묘한 한일관계를 넘어설 수는 없다.

 한일터널은 영토분쟁이 없는 영불간의 터널과 다르다. 한일 간에는 역사적, 군사적, 지정학적인 측면 등 많은 난제가 가로 놓여있다. 역사에서 보듯 삼포개항이 가져다 준 피해는 컸다. 한일터널은 어쩌면 그들의 목표인 침략의 루트가 될 수 있음을 되새길 필요는 있다.(konas)출처:월간자유

김차웅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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