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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아세안 외교의 안보적 성과와 방향

Written by. 이창형   입력 : 2013-12-08 오전 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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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월 6일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참석을 시작으로 6박 8일간의 동남아 순방외교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언론은 한-인도네시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연내 타결 합의 등을 들며 박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외교를 “성공적인 세일즈 외교”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경제외교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이 외교․안보 분야의 성과이다. 한-아세안 정상회의, 아세안+3 정상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의장성명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 대한 지지가 명시되었다. 이에 본고는 박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외교와 그 직후에 서울에서 개최한 한-필리핀 정상회담에 비추어 박근혜 정부의 대(對)아세안 안보협력의 방향과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대북정책 지지 확보

 박 대통령이 아세안과 정책 공조를 시도한 몇 가지 의제 가운데 눈에 띄는 성과는 아세안으로부터 대북정책의 지지를 확보했다는 점이다. 아세안 소속 10개 회원국 모두가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다. 이들 국가는 북한의 핵 실험, 미사일 도발 등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폭격과 같은 북한의 무력 도발에 대해서는 아세안은 ‘양비론’ 입장을 견지하면서 북한을 직접적으로 규탄하지 못했다. 가령, 천안함 피격 이후 개최된 2010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은 공격의 주체가 ‘북한’임을 명기하지 않았다. 다만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면서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강조할 뿐이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아세안은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은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함으로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하지만, 한국에 대한 북한의 국지도발의 경우에는 자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에 한 발짝 물러서기 때문이다. 이렇듯 아세안은 미중 간 헤징 전략을 쓰는 것처럼 남북한 문제에 있어서도 균형적인(balancing) 입장을 취해왔다.

 하지만 올해 아세안 관련 3개의 정상회의의 의장성명에는 모두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지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대화를 통한 갈등의 예방과 해결을 대외정책기조로 삼고 있는 아세안은 대화와 교류․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고, 궁극적으로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통해 북한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견인한다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정책을 전적으로 환영하였다. 하지만 이를 차치하더라도, 특정 국가의 정책이 다자외교 정상선언문에 채택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런 만큼, 향후 북핵문제 접근 및 대북정책의 국제공조에 있어 힘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북한은 유일한 지역 외교 무대에서 보다 직간접적인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기류는 또한 2012년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헌법에 선포하고, 2013년 2월, 제3차 핵실험을 강행한 데에 따른 반작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예년과 달리 2013년 7월에 있었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북한을 동정하는 아세안 회원국은 한 나라도 없었다. 결국 북한의 핵 폐기가 공동의 지역안보문제라는 위협인식이 분명해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북핵 불용”을 강조하며 북한의 변화를 위해 아세안이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인도네시아․필리핀․미얀마․브루나이 등의 국가가 전폭적인 지지를 보여주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북한과 전통적인 친선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향후 한반도 문제에서는 남북한 중재 혹은 한국에 우호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아세안 안보 분야 협력 증진

 한-아세안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박 대통령이 제안한 ‘한-아세안 안보대화’를 내년부터 정례적으로 개최하는 데에 합의하였다. 박 대통령이 기존의 일반적인 안보대화에 추가해 별도의 전략 대화를 갖자고 제의한 만큼, 한-아세안 안보대화는 차관보급 주재 하에 외교당국과 국방당국이 참여하여 구체적인 지역 및 국제현안을 토의하는 형태로 운영될 계획이다.

 한-아세안 안보대화 신설은 아세안의 대외관계 특성을 고려한다면,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세안은 개별 국가와 비전통 안보 및 해양안보 분야에서 양자및 다자 협력을 진행하고 있지만, 상대국 정부와 정례적인 안보 대화 메커니즘은 갖고 있지 않다. 2009년부터 ‘일본-아세안 국방차관 포럼(Japan-ASEAN Defense Vice Ministerial Forum)'이 정례적으로 개최되고 있지만, 주요 의제는 일반적인 비전통 안보 이슈와 구체적인 해양안보 문제로 기술적 지원, 역량 개발 성격이 짙으며 정치․군사적 신뢰 형성을 목적으로 한 대화체가 아니다.

 더욱이 중국 역시 9일에 있었던 중국-아세안 정상회담에서 양자대화관계 수립 10주년을 기념하여 ‘중국-아세안 국방장관회담’을 제안하였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다i)는 점을 상기한다면, 비견되는 성과로 평가된다. 중국은 아세안과의 협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7대 제안을 소개하면서, ‘중국-아세안 국방장관회담’을 신설 및 정례화하고, 재난 예방 및 구호․사이버 안보, 공동 법집행과 같은 비전통안보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할 것을 제의하였다. 중국은 동 내용을 중국-아세안 공동성명에 담기를 거듭 희망하였지만, 공동성명은 중국의 제안을 언급하는 데에 그쳤다. 중국에 대한 역사적 불신이 강한 탓에 아세안의 우려가 강했을 뿐 아니라 아세안 회원국마다 각기 처한 국가안보 이슈와 우려사항이 달라 합의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주요국 간 경쟁의 장이 된 동남아에서 아세안이 한국을 우호적인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동안 아세안과의 안보협력 여건에 제약이 되는 국제정치적 요소로 미국과 중국, 일본 등 강대국간 경쟁으로 인한 한국의 입지 위축 우려, 이들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흡한 경쟁력 등이 거론되었다. 하지만 한-아세안 안보대화 신설은 이런 우려와 달리 아세안이 미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의 전략적 경쟁을 완화시킬 수 있는 한국의 보다 확대된 안보 역할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국방협력을 통한 국익 기여

 한-인도네시아 정상회의에서 양국정상은 ‘국방 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고, 추가 신규 방산 협력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를 하였다. 인도네시아는 현재 한국의 최대 방산 수출대상국이다. 국방․방산협력은 상호 정치․군사적 신뢰 없이는 진전이 힘든 만큼, 한-인도네시아 국방협력 협정 체결은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내실화하고, 국방 관련 협력을 제도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인도네시아와의 국방협력 발전은 또한 에너지․자원 분야로 협력의 범위를 확대하여 국익을 창출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10월 17일 서울에서 열린 한-필리핀 정상회의 역시 방산협력이 양국 간 투자․통상 발전에 기여하는 효과적인 외교수단임을 입증하였다. 박 대통령은 동남아 순방 직후, 필리핀 아키노 대통령을 초청하여 상호 신뢰를 다지고, ‘국방 분야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였다. 박 대통령이 아키노 대통령을 신정부 출범 후 첫 국빈으로 초청한 데에는 필리핀이 아세안의 유망한 방산협력 수출대상국이고, 필리핀이 베트남(V), 인도네시아(I)와 함께 신흥경제국 'VIP' 로 주목받고 있다는 전략적 고려가 작용하였다.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중인 필리핀은 올해 1월부터 FA-50 경공격기를 비롯한 방산협상을 요청해왔으며, 한국은 11억 달러 규모의  FA-50 경공격기와 해상호위함 수출을 추진 중이다. 아키노 대통령은 “한국의 군수품과 전력이 필리핀에 매우 유용하다”고 화답하였다. 아키노 대통령은 또한 “필리핀이 경전철과 공항 건설 등 인프라 건설 사업 수요가 크다”면서 한국의 대필리핀 투자 여건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하였다. 한국이 필리핀 등 아세안 지역에 유리한 조건으로 진출하여 인프라를 건설하고 시장을 개척한다면, 인접한 중국시장으로의 확대가 유리할 뿐 아니라 해상과 육로를 통한 서남아-중동으로의 접근도 용이해질 것이다.

 결론

 박근혜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결과는 한-아세안 관계에서 미진했던 외교․안보분야에서 성과를 창출하고, 발전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특히, 동북아시아의 중견국인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중견국인 인도네시아가 ‘중견국 연대’를 모색하고, 한국과 아세안이 방산․국방협력의 제도화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국제정치적으로 부상하는 아세안의 전략적 가치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동남아를 중심으로 아태지역 주요국 간의 전략적 경쟁이 심화되는 속에서 아세안을 실질적인 ‘중견국 연대’ 세력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대아세안 외교는 강대국 간 경쟁을 완화하여 지역의 안보환경을 개선하는 데 주안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또한 ‘신뢰 외교(trust-politik)'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역내 다자협의체의 허브(hub)인 아세안과 긴밀히 협력할 것으로 전망된다.(konas)
출처: 월간자유

이 창 형(국방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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