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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길 칼럼〕임칙서(林則徐)를 그리며

Written by. 김동길   입력 : 2014-06-24 오전 7: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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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심천(深川)까지는 약 3시간 반 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서, 거기서 자동차로 옮겨 타고 1시간 남짓 아름다운 고속도로를 달려 동완(東莞)이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하여 이틀을 머물고 엊그제 돌아왔습니다.

 중국인들이 ‘동관’이라고 부르는 이 현대적 도시에는 한국의 실업인들이 많이 살고, 그들의 자녀들을 위해 세운 한인들의 국제학교도 있습니다. 그곳 상공인들의 초청을 받아 교포사회의 어른들과 아이들을 위한 강연을 하기 위해 87세의 ‘노구’를 이끌고 그 먼 길을 다녀왔는데, 크게 보람이 있었던 여행이었습니다.

 홍콩‧마카오‧심천‧동관 등이 자리 잡은 광주성(廣州省)에 와서 나는 청조 때 있었던 아편전쟁(1840~42)의 중국인 영웅 임칙서(林則徐)가 그리웠습니다. 영국은 게으른 중국인을 상대로 아편장사를 하며 큰돈을 벌었습니다.

 아편 때문에 엄청난 은(銀)이 해외로 흘러나가고, 아편 때문에 중국인의 건강이 말이 아니기 때문에 청조는 임칙서를 흠차(欽差) 대신으로 임명하여 광주에 보냈습니다. 그로 부임하여 2만 상자의 아편을 불태우고 아편 장사하는 외국인들을 모두 국외로 추방하였습니다.

 이에 경악한 영국은 함대를 현지에 파견하여 아편전쟁이 드디어 터진 겁니다. 임칙서로 이런 훈령을 내렸습니다. “1보 물러나면 적은 1보 더 다가온다.” 그는 지구전을, 또는 게릴라전을 해서라고 끝까지 항전하려 하였으나 영국군의 침공으로 겁에 질린 청조는 흠차 대신을 면직‧추방하고 영국과 화평을 꾀하는 가운데 남경조약(1842)으로 중국은 영국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뒤에 임칙서는 사면 복권되었지만 청조는 줄곧 쇠망의 길을 가다 드디어 손문의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1912년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동완에서 한 30분가면 임칙서기념관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시간이 없어 가보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김동길(www.kimdonggill.com) ‘자유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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