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칼럼〕국회 프락치 사건은?
1948년 제헌국회가 구성되고 그 국회가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국회의장이 신익희였고 부의장이 김약수이던 때 나는 잠시 박순천이 창간한 <부인신보>에서 임시기자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국회 프락치 사건’이 터지기 얼마 전이었을 것입니다. 날씨가 더웠을 것으로만 기억되는데 신문 기자들을 김약수 부의장이 시내의 한 음식점에 초대하여 저녁을 대접하는 ‘술자리’였습니다.
그 당시 내가 기자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 시절에 그 신문의 편집국장은 임긍재였다고 기억하는데 하도 오래 전 일이라 내 기억이 정확하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운데,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자리에는 내가 나갔고 윗도리를 벗어 제친 김약수가 나에게 와서 술을 한 잔 권하던 광경도 눈에 선합니다.
국회 프락치 사건이 터진 것은 1949년 6월이었습니다. 당시 50명 넘는 국회의원이 남노당의 저렇게 따라 활동한 사실을 알고 반공 검사 오제도는 그 중 10여 명을 검거, 구금하여 재판에 회부 - 3년에서 10년까지의 형을 확정하였고 그들은 복역하다 6.25 전쟁으로 풀려나 김약수는 월북하여 그 뒤의 소식은 모른다고 들었습니다.
6.25가 대한민국의 체질을 개선하여 ‘빨갱이’는 얼씬도 못하는 공화국을 만들었지만,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 때 즈음에는 또 다시 북의 ‘간접침략’이 우리들의 관심사가 되었고, 김대중‧노무현을 거치면서 대한민국 국회는 친북‧종북을 이념으로 삼는 통진당에게 의석을 할애하는 희한한 국회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김동길(www.kimdonggill.com) ‘자유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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