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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 패권 전쟁시대, 한국의 국가안보전략 ①

Written by. 문영일   입력 : 2014-10-20 오전 10: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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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초, 중국의 시진핑주석이 우리 박근혜대통령 초청으로 한국을 국빈방문하였다. 이는 한-중, 북-중관계의 역사적변화의 상징적 사건이었고, 동시에 아시아태평양에서 한국의 전략적 위상이 가일층 강화되는 사건이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아시아태평양 패권경쟁(Hegemonic War)국가들, 즉 신-제국주의열강(특히 중·소·일) 사이에서는 한국의 향후 지역안보전략적 위치와 역할변화에 기대와 우려의 분위기가 역력하였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한국의 동아시아안보전략적 위치는, 크게 ‘힘의 지렛대’ 즉 신-아시아태평양전쟁을 예방할 수 있는 평화의 균형자역할을 할 수 있느냐 아니면 과거 아시아태평양전쟁시대처럼 ‘고래싸움에 새우 등터지는 꼴’이 되고 마느냐하는 국가흥망의 기로에 다시 서게 되었음을 실감하게 하였다.

 그러기에 지금 또다시 대한말기 고종시대와 같이 정부가 국제안보전략 환경을 잘 못 판단하게 되면, 바로 망국의 길로 다시 깊이 빠져 들어가게 되는 엄연한 현실에 직면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한다. 이제 그 확실한 판단을 위해 주변의 신제국주의지향 패권경쟁국가들(미·중·일)의 국가안보전략을 안보전략사상사와 전략사적 측면에서 먼저 분석·평가하여 판단하고 그 진단위에 우리 한국의 국가안보(大)전략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미·중·일의 국가전략 분석 및 판단

 먼저 일본을 보면, 동아시아 전통적 위험국가의 한 축인 일본은, 전통적으로 소위 ‘사무라이(武士)국가’ 즉 ‘군사·군국주의국가’ 인데다 자연환경이 불리하고 자원약소국가임으로 이러한 안보환경을 극복하기위해 역사 이후 지금까지 아시아대륙과 태평양으로 국토와 국력의 확장을 간단없이 기도해 왔다. 그러기에 일본은 침략근성이 DNA화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6세기에 소위 ‘전국시대통일’을 이룩한 도요도미는 겁 없이 중국과 심지어는 인도까지를 침략목표로 임진왜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근대에 들어와 19세기 서세동점시대, 스페인과 네덜란드에 이어 영-불-독 등 서양의 신제국주의 식민지 열강국가들이 아프리카를 넘고 인도를 지나 동남아를 삼키면서 중국을 아편으로 환각시켜 분할점령 하였던 시대에는, 이들을 안내하고 따라다니면서 원조 받고 지원(영-일동맹 등)받아 소열강이 된 일본이 중국분할에 개입함은 물론, 러시아 남하를 저지해 준다는 역할론을 내세워 드디어는 소위 정한론(征韓論)으로, 무력했던 한제(韓帝)를 무혈침략하고 청-일, 러-일전쟁까지도 감행하였던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때는 신제국주의 연합군에 가담, 중국침략을 위한 전략거점들을 장악하였고, 전후에는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종식을 위한 미국작품 [국제연맹]을 농락하면서 이전의 스페인과 독일제국이 영유했던 다수의 태평양 영토 권익을 차지하였다. 일본은 또한 특히 식민지 한국을 기지로 만주를 침략하고 나아가 국부와 중공으로 분열된 중국을 선과 점으로 점령해 나가면서 ‘바로 그 제국주의 국제법’(제1차 제국주의 세계전쟁 전후에 선포된 제국주의열강을 위한 세계 식민지 질서법)들에 따라 한국의 독도와 중국의 대만과 댜오이다오섬들을 포함 다수의 태평양 연안 거점들과 도서들을 강압으로 편입(강탈)하였다.

 이렇게 이웃국가에 대한 침략으로 부국강병이 가능해지자 일제는 근성화된 침략본능을 더욱 발휘하여, 우리의 독립투사 이승만이 미국과 세계에 일찍부터 경고한대로, 연합국을 배반하고 더욱 침략적인 세계 파쇼정권들 - 소련과 국제공산주의혁명전선에 반대하여 새로 형성된 독일·이태리 추축국 - 과 3국 동맹을 체결하고, 당치도 않게 세계패권 야욕을 들어내면서 오히려 미국을 상대로 제1차 아시아태평양전쟁(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자본주의전쟁을 겁 없이 야기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일본을 위시한 추축국들은 완전 패망하고 승리한 연합국, 특히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미국은 이번에야말로 민주주의와 평화세계를 만들고자 집단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엔을 창설하고 그 유엔헌장에 따라 전후 신질서를 확립하였다. 이에 따라 우리의 독도는 환수되었으나 대마도는 놓치고 말았으며, 중국은 내전(장개석의 국부와 모택동의 중공소비엩 간)으로 잊고 있는 동안 태평양의 섬들을 환수 못한 체 19-20세기제국주의질서법에 의해 일본에 귀속되고 말았다.

 2차 대전후 신세계질서에서, 미국은 전범국가처리에서 장기전략에 의해 일본을 배상과 응징대신 민주주의국가로 개조하여 아시아태평양의 무력이 거세된 평화국가로 양성해 보려고 노력해왔다. 이에 일본 스스로는 전범국가가 아닌 양 변명하면서, 히로시마와 나가사끼 원폭비극을 역이용하여 오히려 마치 전쟁피해국인양 역선전하면서 영구적인 평화애호국으로 가장해 가며, 옛날 히틀러의 독일제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재기의 기회(군국주의국가)를 엿보았다.

 그래서 일본은 전후 미국국력에 무임승차하여 한국전쟁특수에서 경제부흥의 기회를 잡기 시작, 미국의 최혜국 보호하에 30여년 만에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고 G7국가로 성장하였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이제 다시 선천적 패권·침략야욕이 되살아난 일본은, 최근 미국이 국력정비를 위해 태평양의 무력을 감축하려는 기미를 보이자, 지체 없이 미국에 역할론(대리 또는 番犬)을 속삭이고, 적극적평화주의 / 집단안보주의라는 위장평화주의를 내세우며 제국주의군국화의 길로 질주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과거 독일의 히틀러가 유럽의 식민지제국주의열강의 경쟁에 ‘더 늦기전에 가세하기 위해’ [생존권(Lebens Raum)]요구를 내세워 막무가내로 재무장하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서슴없이 질주했던 역사사건을 일본이 모방하여 재현해 나가려 하는 것이다.

 이제 이 교활하고도 간사한 아베정권은, 인류의 상식을 벗어나 침략자 모두가 그러했듯이, 과거 잔혹했던 (일제)침략사를 부정 - 심지어는 침략이라는 단어자체를 부정 - 하는 건 물론 1차 대전후 질서로 강탈한 이득은 고수하면서 2차 대전후 신질서로 내놓은 이권(독도와 북방4개도서 등)은 기필코 회수하려는 술수성 전략정책까지도 우격다짐하고 있다.

 때마침 중국이 대륙굴기(大陸屈起)를 내세워 아시아와 세계에서 일본의 열국지위를 위협하며 태평양방면으로 진출을 시도하자, 공공연히 미국과의 소위 [미일집단자위권동맹]을 강화하며, 미-일-호-인 4국에 의한 소위 [다이아몬드 포위망] - 중국의 동아시아거점항구외교를 [진주목걸이외교]라 비하하며 자국전략우위를 강조하는 의미의 전략 - 을 획책하고, 가치동맹(價値同盟)이라는 명분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중국봉쇄에 혈안이 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심지어 상호양보 없는 중일전투기충돌촌전의 모험으로 이어지면서, 일촉즉발의 제2차 아시아·태평양전쟁 상황까지로 도 서슴없이 몰아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번견국가(番犬國家)를 자처하는 일본은 최근에 야비하게도 한국의 통일이 두려워 이를 방해하기 위해 북한과 접촉을 시작했다. 더구나 한국과의 갈등시기를 이용하여 한국의 반대에도 기어이 보낸 ‘북송 일본인 妻’를 구한다거나 납치문제를 해결한다는 등의 명분을 내걸고 있으나 그것은 가깝게는 한국 박근혜대통령의 남북 / 아시아태평양 신뢰프로세스를 방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멀게는 힘세어질 것 같은 통일한국을 방해하기 위해서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한 아베는 외교통로를 통해 공식적으로, 한국이 한일간 현안해결을 위해 선제외교와 함께 제의한 정상회담 전제조건인 [위안부문제해결]을 거부함과 동시에 ‘위안부인정’ 외교전자 문건을 삭제하는 역사말소 만행도 저지르고 있다. 아베의 이러한 역사말소적이고 국제적 안하무인의 행위는 무엇을 의미할까. 침략도발의 전주곡이 자명하지 않은가.

 그런가하면 이를 상대하려는 중국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영광과 굴욕으로 점철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19세기에 들어와서는 문자 그대로 서세동점의 영향으로 아편전쟁과 서양열국에 의한 분할점령, 홍콩 영구조차 등의 수모를 겪다가 드디어는, 일제가 침략하면서 “시나징 짱깔로 미나미나 고로세!”(중국사람 모두모두 죽여라) 의 구호와 함께 수많은(수십만을 넘어 수백만) 중국인들이 무참히 학살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그렇게 어려웠던 시절 미국의 적극적 개입 / 지원(Open Door Policy와 최혜국대우 등)으로 국가소멸을 면했고, 2차대전시에는 [원-장(援蔣)루트]를 통한 미국의 물심양면의 원조로, 연합군의 일원이 되어 항일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후에는 미국이 중국(장개석의 國府)을, 영국 불란서 소련과 함께 유엔안보리의 5대 이사국으로 지명하여 전후질서를 설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불행이도 전후 중국은 중공과 장개석의 국부중국으로 분열하여 내전과 상호 이해관계가 얽혀 마치 중국민족의 관대함을 과시하듯 일본에 대한 아무런 전쟁배상요구를 내 놓지 않았다. 중공이후 중국은 한때 모택동의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국력이 쇠락하였으나, 모택동사후 민족적 자각으로 등소평 지도하에 자본주의경제제도를 도입하여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중국(中共)은 이제 자칭 세계1위의 경제대국은 물론 부국강병전략에 성공해 가면서 G2를 자칭하고, 앞으로 멀지않은 장래에 미국을 앞서 일극체제까지 꿈꾸고 있다. 이러한 패권야망의 현재 중국전략은, 우선 구질서(1차-2차 세계대전이후 신질서)를 타파하여 탈취 당했던 영토 - 홍콩과 마카오는 이미 환수되었고, 댜오이다오섬 등 - 를 수복하고, 불가사리처럼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중화사상을 기반으로 태평양과 6대양으로 제국주의적 무력진출도 불사하려하고 있다. 그러기에 중국은 ‘인류를 위한 민주주의질서’ 선양보다 중국자신의 국익을 위해 우선 아시아태평양의 패권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미·일·호에 의한 환태평양봉쇄선(포위망)이 형성되자 중국(시진평)은 [아시아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를 주재, 러시아까지도 불러들여 세를 과시하면서, [팍스 시니카(Pax Sinica)]를 선언하고, 이 봉쇄세력과 정면충돌 즉 제2차 아시아태평양전쟁조차 불사하려는 기세다. 동시에 그 세를 집결시키기 위해 시진핑은 5대양 6대주를 순방하고, 한반도에서는 과거 혈맹관계의 북한을 두고도 한국을 ‘친척’으로 호칭하며 포섭하려 접근해 오고 있다.

 한편 민주주의 선양국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전략을 보면, 미국은 1774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여 1789년에 세계최초의 민주주의가치를 국시로 하는 국가 / 정부를 수립하였다. 19세기 후반에는 남북통일과 서부개척을 완성하였는데, 그러지 않아도 부지런한 개신교도들이 문자 그대로 행운(Windfall)에 행운(Bonanza) - 비옥한 땅덩어리, 이민 빚 갚고도 남는 풍족한 수목림, 필요한 양 다 채우고도 남는 금덩어리, 유럽인들까지도 살찌개한 1000만 마리 들소 때, 석유(현재는 Sale석유로 더욱 부자됨)자원, 광물자원 등등 - 을 겹쳐 얻어, 불과 2세기만에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서세동점시대에, 좀 늦게 태평양으로 진출한 미국은 하와이를 지나 필리핀에 도달하였으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대한 서세동점세력들의 반문명적 제국주의식민지행위를 목격하고, 민주주의 국가들에 의한 국제적 연합이나 국제적 동맹에 의한 집단안보전략을 구상하였다. 그리하여 1차세계대전후 신세계질서에서 미국은 ‘윌슨의 평화14개조’에 따라, 우리 3‧1운동을 유발시킨 [민족자결]을 주장하고 국제연맹을 창설·주도 하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당시는 여전히 강력했던 영·불·독 등 제국주의식민지세력에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에 연합국최강세력으로 참전, 그 풍족하고도 남는 전쟁물자를 전 연합국에(소련에게도) 지원하면서, 전후 평화세계지도이념 - 제국주의식민지(시대)해체와 민족자결주의에 의한 민주주의 세계질서 - 으로 전쟁을 지도하여 이에 승리하였다. 전후에는 수정자본주의적인 [마샬플랜]을 통해 세계경제를 부활시키고 유엔(안보리-安保理-주축)을 통한 신질서를 창립하였다. 그 이후 뜻밖에도 민주주의의 우군으로 믿었던 소련(과 중공)이 구 짜르의 야욕을 들어냄에 따라 동서냉전 상태가 형성되자, 서방측을 지도하여 냉전에 승리(1990)하고 국제공산주의혁명세력을 패망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드디어는 오늘날 명실공히 일극체제로 신세계질서를 감당해 오고 있다.

 최근에 미국은 위와 같은 중국의 태평양 진출전략 목적과 일본의 번견역할 자청의 목적을 동시에 읽고, 1차 대전후 세계질서 확립에 실패한 교훈을 살려 만든 국제연합 정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아시아의 주축국(Pivot to Asia)로 전환하고 패권지반을 굳히려(Re-balance)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군사동맹국 일본을 방패삼아 중국의 환태평양진출은 물론 미래 러시아의 남진을 견제하려는 전략적 포석을 강화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한편으로는, 과거역사 교훈에서 배운바 ‘믿는 일본에 발등 찍히지 않기’ 위해, 이번에는 ‘바른 역사인식’과 ‘위안부 문제’등으로 일본을 압박(견제) - 국무부 성명, 미의회조사국보고서, 유엔결의 등 - 하여 전전과는 달리 한국위상을 높이면서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을 강조해나가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중국을 설득하여 전통적으로 한-미-일-호등에 의하여 실시되는 ‘림펙훈련’과 미-일-호훈련에 주력함대로 참여시키는 등 ’이이치이(以異治異)전략을 또한 구사하고 있다. 중국 또한 미국의 대일본 견제용 ‘이이치이’ 전략을 간주 / 이해하고 지금은 일단 이에 긍정적으로 순응하고 있다.

 이러한 아시아태평양안보전략 환경의 급격한 변화, 즉 [패권경쟁속에 군비경쟁 그리고 일촉즉발의 전쟁위기, 그 속에서 다자간 / 상호외교·군사안보협력]과 같은 상황전개는 곧 우리한반도의 운명과 대한민국의 국가외교·군사안보에 직결되는 [도전과 기회]의 문제로 인식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Konas)

문영일 (한국국가안보전략사상사연구회 대표)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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