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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호국인물 최용남 소장· 독립운동가에 오면직 선생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4-11-28 오후 1:5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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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호국인물과 독립운동가에 해군 최용남 소장과 오면직 선생이 각각 선정됐다.

28일 전쟁기념관은 6ㆍ25전쟁 당시 북한 무장수송선을 격침한 '백두산함'의 함장 최용남 소장(1923.10~1998.11)을 '12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평안남도 용성군에서 태어난 최 소장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 1946년 5월 1일 해군 참위로 임관했다. 이후 진해 기지교육대 교관, 함정부 부관 등을 역임하고 1950년 4월에 제2함대 PC함장으로 부임했다.

1950년 6ㆍ25전쟁 중 부산 해역으로 침투하던 북한 무장수송선(1천t급ㆍ무장병력 600여명 탑승)을 발견하고 당시 해군의 유일한 전투함인 백두산함 함장으로서 적함을 추격해 격침했다. 별다른 사격연습과 교전경험도 없이 야간과 악천후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당시 '대한해협해전'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최 소장은 이 밖에도 서ㆍ남해안 봉쇄작전, 여수 철수작전 등에서 북한군의 해상침투를 저지하는데 큰 공적을 세웠고, 인천상륙작전에도 참여해 작전 성공에 기여했다.

1953년부터는 해병 학교장으로 부임해 해병양성에 힘썼고, 이후 해병대사령부에서 작전국장, 참모부장 겸 군수국장, 부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1965년 해병 소장으로 예편했다.

12월의 독립운동가에 선정된 오면직 선생(사진)은 친일세력 처단과 독립운동 자금 확보를 위해 의열투쟁을 전개한 인물이다. 오 선생은 황해도 안악 출신으로 양산학교와 평양 대성중학교에서 수학했으며, 1919년 3ㆍ1운동에 참여했다.

1920년 조선일보 및 동아일보 안악지국 기자로 활동하다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집 활동을 지원했다. 1922년 스승인 김구 선생의 권유로 한국노병회에 가입한 후 한국노병회 파견원 신분으로 중국 허난(河南)성 군관학교에 입학했다. 1931년에는 재중국무정부주의자연맹 상해부 및 남화한인청년연맹에서 활동했다.

1932년 홍커우공원 폭탄 투척 모의에 참여했고, 1933년 아리요시(有吉) 주중일본공사 암살을 시도했으며, 1934년에는 비밀결사대인 한국독립군특무대에서 김구 선생의 비서로 활동했다. 1936년 한국맹혈단을 조직해 친일파 처단 및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 일제에 체포돼 1938년 사형이 집행됐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12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현봉학 의학박사를 선정했다. 1922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난 현 박사는 광복 후 가족과 함께 38선을 넘어 월남했다.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 의대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후 1950년 8월초 미군 통역관에 임명됐다.

6.25 전쟁 당시 1.4 후퇴 과정에서 9만여 명의 민간인을 선박을 통해 피난할 수 있도록 에드워드 알먼드 미 10군단장을 설득한 일화는 유명하다.

휴전 이후에는 미국 의과대학에서 병리학 및 혈액학 교수 등으로 재직했고, 2007년 11월 25일 자신이 근무했던 미국 뉴저지주 뮐렌버그 병원에서 영면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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