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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着韓스토리텔링③]나약해지지 말자

Written by. 김용군   입력 : 2014-12-05 오후 1: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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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12월4일 남북하나재단(이사장 정옥임) 주최로 열린 북한이탈주민의 성공과 실패, 좌절, 눈물, 사랑, 열정의 이야기를 전하는 ‘2014 북한이탈주민 정착경험사례 발표 대회’ 내용임. (편집자 주)

  2006년 나는 임신 6개월의 몸인 아내와 ‘남한으로 가서 잘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탈북을 감행했다. 제3국을 걸쳐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고 집사람은 하나원에서 딸을 출산하게 됐다.

 기쁨도 잠시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무게에 많이 당황스러웠다. 하나원을 나온 다음날부터 신문을 뒤져가며 일당 아르바이트, 이삿짐센터, 식당 홀서빙, 야간 농산물센터, 건설 현장 등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닥치는대로 했다.

 잘 살아보려는 욕심에 이렇다 할 직장 없이 정착하지 못하고 살다가 2009년에 아들이 태어났다.

 아들을 얻은 해에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이렇게는 가정을 지킬 수 없다는 생각에 남부고용지원센터를 찾아갔다. 그렇게 고노동부 알선으로 지금 회사의 택배기사로 일하게 됐다. 내가 맡은 영등포 구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건물이 많다.

 40킬로그램이나 되는 쌀을 어깨에 메고 계단을 오를 때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다리가 떨렸다. 하루 14시간을 일하다 보면 힘들고 지쳐 주저앉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그만둘 수 없었기에 지금까지 택배기사로 일하고 있다.

 택배일은 힘들었지만 노하우가 생기자, 회사에서 나를 대신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정받는 택배기사가 됐다.

 그러던 2012년, 나에게 가장 큰 시련이 찾아왔다. 힘들고 지칠 때 항상 힘이 되어주던 아내가 뇌종양 판정을 받은 것이다. 종양이 주먹만큼 커져 수술이 어렵고 또 수술이 잘 되더라도 반신마비가 올 수 있다는 담당 의사의 말에 하늘이 무너지듯 앞이 캄캄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술을 선택했다. 수술하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제발 살아주라’라는 기도뿐이었다. 기도 덕분이었을까? 다행히 수술이 잘 되었고 수술 일주일 만에 아내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때 나는 아침 일찍 아이들을 어린이 집에 보내고 회사에 나가 일하다가 잠깐 짬을 내어 아내를 간호했다.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간이었지만 내가 나약해지면 더 이상 일어 날 수 없을 것 같아 마음을 다잡고 택배 일을 계속해 나갔다.

 지금은 아내도 건강하고 나는 여전히 택배기사로 근무 중이다. 택배를 나르는 일이 고된 직업이지만 나에게는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준 고마운 직업이다. 그렇기에 힘들어도 지금 현실에 만족하고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게 됐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탈북 했을 때를  떠올린다면 이겨내지 못할 일이 없다. 나약해지지 말고 참고 이겨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거라 믿는다. (Konas)

김용군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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