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 (3)용문산전투 전적비
“새까맣게 기어올라옵니다!”
1951년 5월, 이와 같은 보고와 함께 시작된 ‘용문산 전투’는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전개양상을 보이며 중공군과 국군 제6사단이 혈전을 치르게 되었다. 당시 공산군은 4월 공세 때 사창리에서 큰 시련을 겪고 난 후 용문산 일대에 배치된 국군 제6사단을 집중 공격했다. 5월 17일 국군 제6사단 정면으로 중공군 제63군단의 3개 사단이 공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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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자료에 의하면 당시 6사단은 제2연대가 중공군의 집중공격을 받으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으면서 때때로 역습을 감행했다. 5월 21일에는 제2연대가 진지를 고수하는 가운데 제7. 제19연대가 역습을 가하여 제2연대와 연결한 후 중공군을 추격하였다. 중공군 제63군단은 국군 제6사단의 결사항전과 항공 및 포병화력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고 퇴각하였다. 이 전투로 중공군은 3개 사단 10만여명의 병력을 잃었고 이 전투는 한국전쟁 기간 동안 가장 큰 성과를 올린 대 접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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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문산 전투를 기리기 위한 비석은 세군데 있는데 이번에 방문한 곳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에 있는 용문산지구전적비와 같은 용문면 광탄리에 있는 용문산지구전투전적비다. 나머지 한곳은 아직 가보지 못한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있는 용문산전투가평지구 전적비다.
먼저 양평군 용문면 광탄리에 있는 용문산지구 전투전적비를 살펴보자. 광탄리 공원 안에 있는 전적비는 용문산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제6사단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1957년 7월 15일 제5사단에서 건립했다. 비문을 읽다보면 당시 전황이 눈에 그려지며 어느새 숙연한 마음이 든다.
“몰려드는 적을 물리치고 불휴의 공을 세워 위기에 선 조국을 건진 민족의 영웅으로서 추앙받을 전우들의 위훈은 태양과 같이 춘추에 길이 빛나리라. 단기 4284년 5월 19일부터 동 30일까지 전개된 용문산 지구 전투에서 영용무쌍한 국군 제6사단 장병들은 중공군 제60군 예하 186, 187, 188사단의 적과 대치 분전하였으나 완전 포위되여 46시간이란 장기간을 육박전으로 전투사상에 다시없는 격전을 거듭하다가 아군의 공세 이전으로 후퇴하는 적을 추격 분쇄함으로써 이 중요한 중부전선을 끝까지 확보하고 전세를 호전시켜 북진케 함으로 국가의 명맥을 다시 이었으니 이 어찌 큰 자랑이 아니랴. 이 전투에서 호국의 신으로 사라진 전우들의 명복을 빌며 그 공을 후세에 전하고자 이 작은 돌을 세우고 고이 잠든 영령들의 거룩한 마음을 길이 잊지 못하는 뜻을 새긴다. 단기 4290년 7월 15일 제5사단 세움“이라고 새겨져 있다.
또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산85에 있는 용문산지구전적비도 있다. 이 비는 1979년 2월 10일 건립하였으며 지금은 용문산국민관광지 안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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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의 비문에는
“한국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 건곤일척의 대회전이 벌어지던 날
결사의 머리띠를 두른 청성장병들이 이곳 용문산 북록에서 사주방어전을 펴고 중공 오랑캐의 인해전술을 분쇄하여 몸으로써 나라를 지키니 삼가 그 큰 뜻을 받들어 여기에 공적비를 세운다.“라고 적혀있다.
이 비석은 언뜻 보기에 초승달이 누워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서 그 모형과 의미를 살펴보니 전쟁을 치르던 그 날 머리띠를 두른 청성장병 결사대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고, 좌우로 치켜올라간 배면석은 민족의 저력을 상징하고 있었다. 또 누워있는 동상은 고난에 처했어도 굳건히 나라를 지키려는 결연한 의지와 영령들의 안식처임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용문산은 1951년 5월 중공군의 1차 춘계공세 당시 아군의 서부전선과 중부전선을 연결하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양평 동북쪽 700미터 넘는 고지들로 이루어진 험준한 산으로 북한강과 남한강이 주변을 흐르고 있어 자연적으로 견고한 벽을 이루고 있어 북으로 향한 진격요선(進擊要線)이자 남으로는 방어를 위한 기지로서 작전상 양보할 수 없는 피아간의 양보할 수 없는 요충지였다. 그만큼 치열한 공방전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이 용문산 전투에서 방어에 성공한 국군 제6사단 장병들은 공세로 전환하고 퇴각하는 중공군을 춘천과 화천까지 추격하여 결국 화천저수지가 중공군 3만여명의 무덤이 되면서 제2의 살수대첩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지금은 예쁜 연두색 새잎과 초록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평화로움 속에 건강한 공기가 가득한 숲이지만 불과 70여년 전에는 그야말로 생사를 오가는 혈전의 현장이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위기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 헌신한 장병들, 생각해보면 겨우 내 또래이거나 나보다 어렸을 그들이 죽음과 어둠의 공포속에 분연히 일어나 전쟁을 수행했다는 것 또한 너무나 현실적이지 않은 역사다. 지금 우리가 그들의 희생을 기리고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무엇보다 그들을 잊지 않고 기념비를 찾아 머리숙여 진심으로 명복을 빌며 호국영웅들의 혼을 느끼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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