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13) 홍천지구 전투전적비
강원도 홍천은 6.25전쟁 당시 중동부지역의 요충지로서 서울로 연결되는 중요한 방어선이었다. 그런만큼 이 지역을 선점하기 위한 국군과 유엔군, 북한군과 중공군 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어 그에 따른 희생도 컸다.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연봉리 무궁화공원에는 당시 전투에서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전공을 기념하고 이때 산화한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홍천지구전투전적비가 있다.
무궁화공원은 일제 강점기에 무궁화를 널리 보급한 한서 남궁억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공원이지만 공원 내에는 충혼탑, 3·1만세탑, 6·25전쟁 홍천지구 전투전적비, 반공 희생자 위령탑 등의 역사 시설물들이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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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초기 홍천지구에 배치된 국군 제6사단 제2연대는 북한군의 불법 남침을 성공적으로 막았다. 홍천 북동쪽 말고개를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자주포부대와 T-34전차를 앞세운 북한군 제12사단의 공격을 여러 차례 격파해 남침을 지연시키는 전과를 거두었다.
북한군 제2군단의 주공사단인 제12사단은 2개 보병연대와 1개 포병연대를 투입해 홍천을 점령하고 여주 방면으로 진격해 국군의 퇴로를 차단한다는 계획이었으며 제5사단이 예비대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습공격을 받은 국군 6사단 제2연대는 지연전을 펼치며 철수해 수안보에서 본대와 합류하였다.
인민군은 이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작전 계획에 큰 차질을 빚어 서울 동남방 진출이 좌절되었고 춘천에서 3일간 남진을 지연당하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한강 이북의 군국은 한강 이남에서 부대를 재편성하여 전투력을 보존할 수 있었고 여기서 얻어진 시간적 여유는 유엔군의 파병을 가능하게 했다.
중공군 개입 이후에도 홍천지구를 둘러싼 전투는 치열했다. 1951년 중공군의 신정공세부터 5월공세까지 이 지역에서 국군 제3·5·8사단, 미 제2·7사단과 제1해병사단, 캐나다와 뉴질랜드군은 북한 인민군 제6, 11, 12, 45사단과 중공군 제63군을 대상으로 방어와 재반격 작전을 수행해 각 부대 단위로 또는 연합으로 중공군·북한군의 파상 공격을 격퇴했다.
홍천지구 전투전적비문에는 당시의 처절한 상황과 장병들의 헌신을 이렇게 새겼다.
“피에 굶주린 이리 떼와 같이 침공하여 오던 북쪽 오랑캐에 대하여 이 반격이 없었던들 이날과 이곳에 있을 것인가. 피땀에 젖은 장병들의 혈투사는 불후의 무공으로서 길이 남을 것이다.
단기 4283년 12월 13일부터 다음해 5월 20일까지 전개되었던 홍천지구 전투에서 영용무쌍한 국군 제3, 5, 8사단과 영웅적인 미해병 제1사단 및 캐나다, 뉴질랜드 부대의 장병들은 북한군 제6, 11, 12, 45사단과 중공군 제63군의 큰 적과 대적하여 시산혈하의 일대 혈전을 전개하게 됨에 우리 용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이 장한 기백과 필승의 신념은 끝끝내 적을 섬멸하고 중부전선과 요지인 이 지구를 최후까지 확보함으로써 요원들의 불길 같은 우리의 진군을 계속할 수 있었으니, 이 어찌 우리의 영광과 감격이 아니랴.
이 전투로 말미암아 애석하게도 쓰러진 장병들의 명복을 빌며, 그들의 찬란한 무공을 천추만대에 전하고자 이에 이 비를 세우노라.
단기 4290년 3월 15일 제1군단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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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지구 전투전적비를 지나면 바로 오른쪽에 높다란 탑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탑은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된 홍천지역 전투에서 희생된 홍천군 출신 군경 468위의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위훈을 길이 전하기 위해 건립한 충헌탑이다. 충헌탑 아래쪽에는 468위의 호국영령들 성함이 새겨져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6.25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의 성공과 발전의 역사가 계속되어 자신의 청춘을 바쳐 지켜낸 자유와 평화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그들에 대한 진정한 추모이자 예우가 될 것이라 믿는다. 6월 호국보훈의 달에 찾은 홍천지구 전투전적비 앞에서 참전용사들을 기억하며 참배한다.(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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