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기념 시설물 소개」(17) 국립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자리잡은 국립대전현충원은 육·해·공군 3군본부가 있는 계룡대 근처 양지바른 배산임수 지형에 위치하고 있다. 국립서울현충원 다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국립묘지로, 매년 각계 각처에서 수많은 단체가 방문하여 참배하고 있다.
국립대전현충원에는 장병, 장군, 독립유공자, 경찰관묘역 외에도 소방공무원묘역, 순직공무원묘역, 의사상자 묘역, 독도 의용수비대묘역, 국가사회공헌자묘역 등 다양한 묘역이 있다. 제2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전, 천안함 46용사 묘역 등 북한의 도발에 용감하게 맞서 싸우다 전사한 장병들도 이곳에 영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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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대표적인 분들로는 최규하(전 대통령), 홍범도(독립운동가) 백선엽(예비역 대장), 전대욱(경찰관, 6·25전쟁 최초 전사자), 손기정(운동선수), 홍순칠(국가유공자) 등 우리가 잘 아는 분들이 안장되어 있다.
취재를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가 장군묘역에서 해병대 출신 장군 한 분의 비문이 눈에 들어왔다. 해병 문석수 준장은 1923년 부산에서 출생, 1950년 해군사관학교를 수료하여 소위로 임관하였고 한국전쟁 발발 이후 1951년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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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해군 소속이었던 그는 덕적도 상륙작전에 참여하였는데, 덕적도 상륙작전은 1950년 8월 18일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교두보 확보를 위해 해군 PC-702함 항해사 장근섭 중위의 지휘 하에 110여 명의 1개 중대가 덕적도의 북한군 소대와 좌익청년들을 소탕한 작전이다. 당시 문석수 소위는 1개 소대를 이끌고 최전방에서 활약하며 북한군을 몰아냈다.
故 문석수 준장은 이후 덕적도 수비사령관에 취임하여 시국 대책위원회를 조직, 정전까지 행정을 지휘하였으며 정전 후에는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해병대 준장으로 진급하는 등 나라를 위해 헌신하다가 2006년에 사망하였다. 생전 및 사후에 충무무공훈장, 보국포장,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장군제1묘역 첫 번째 줄에 안장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또 다른 작전과 많은 군인이 희생했다는 사살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렇듯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묘지 한 곳 한 곳마다 모두 호국적·헌신적인 사연을 품고 있다.
국립대전현충원 ‘현충문’ 현판은 1985년 준공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종이에 쓴 글씨를 확대한 뒤 탁본하는 방식으로 제작했으나, 지난 2020년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을 기념하여 안중근체로 현판을 다시 제작하였다.
당시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는 “안중근 의사는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자 당시 독립군 참모중장으로 오늘날 군인 정신의 귀감이 되는 위인”이라며 “광복 후 고국에 뼈를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현재까지 유해발굴 작업이 진행 중으로 안 의사의 글씨체를 현충원 현판에 담아 안중근 정신을 기리겠다”고 설명했다.
국립대전현충원은 1사 1묘역 결연 봉사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한 곳의 묘역을 하나의 공공단체, 시민단체, 기업 등과 결연하여 관리하는 제도로, 관리상의 한계를 보완하여 많은 묘지를 더욱 정성스럽게 보살필 수 있으며, 단체 입장에서도 봉사활동과 동시에 보훈정신을 제고하고 있다.
국립대전현충원은 현충일 하루를 제외한 364일 매일 보훈모시미(버스)를 운영한느데, 대전 지하철 현충원역에서부터 묘역까지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 30분 간격으로 운영되며 20여 개 정류소가 있다.
또한 국립대전현충원은 매주 2회, 매월 8회 ‘열린 현충원 작은 음악회’라는 이름의 행사를 개최한다. 주로 주말마다 진행되며 팝페라, 아트쇼, 어쿠스틱 기타, 클래식 공연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가족단위 방문객들에게 휴식과 위안을 제공하고 있다.
국립대전현충원을 취재하면서 현충원 곳곳에 안보의식과 호국정신을 일깨워주는 비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중 한 곳의 내용 전문을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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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또 다른 우리의 이름입니다.
호국,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의무입니다.
보훈, 미래를 위한 우리의 도리입니다.(konas)
향군 대학생 인턴기자 김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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