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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체험 수기㉔] 나 자신에게 당당해지도록

Written by. 김민재   입력 : 2017-09-12 오전 9: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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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질병치료’ 부문 입선 당선작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나에게 있어서 미국이란 우리 대한민국처럼 모성애가 느껴지는 국가이다. 난 그곳에서 청소년 이였던 내 파릇파릇한 시기를 보냈다. 그곳에서 내가 보고 느껴왔던 군인이란 나라에서 존경의 눈빛을 받으며 국민들의 대우와 환호를 받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다른 사람들처럼 처음에는 한국 까지 와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당시 또래 친구 및 선배들만 해도 “굳이 갈 필요가 있나? 뭐하러 사서 고생하러 가냐” 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나또한 그런 말을 들으며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되니 점점 별 생각이 없게 되었다.

그러다가 미국에서 성인이 되는 날 한국인 친구와 시간을 보내던 중 그 친구가 SNS를 보고 곧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군대를 간다며 불쌍하다고, 우리는 선택받았다며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문득 들었던 생각이 과연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대한민국에서 국가를 지키고 병역의 의무를 한다는 것이 부끄럽고 귀찮은 일인가 하고 의문이 들었다. 또한 그전까지 군 입대를 기피 하려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의 친척들을 예로 들면 친척 형이 네명 이었는데 전부 해외 영주권 및 시민권을 취득함으로서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동시에 국방의 의무를 포기했다.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내 자신에게 떳떳해지고 싶었다. 이후 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결과 당연히 한국인으로써 지킴을 받아왔고 이제는 내가 지켜야 할 때가 왔다는 결심이 섰다. 스물 한 살이 되던 해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내가 신체검사를 받으러 한국에 들어왔다고 하니 다들 미쳤다고 미련하다고 놀려댔다. 놀려대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수원 병무청으로 신체검사를 받으러갔다. 왠지 벌써 군인이 된 것 같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신체 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마치니 바로 내 신체등급을 알려주었다. ‘신체등급 2급’ 현역판정 이었다.

같이 갔던 아버지가 특히 뿌듯해하셨고 병무청 직원 분께서는 친절하게 조만간 핸드폰으로 연락이 갈 것 이라고 말씀하셨다. 설렘과 긴장이 공존되는 기다림 속에서 핸드폰으로 전화 한통이 왔다. 병무청 직원 이었고는 내가 졸업한 미국에 있는 고등학교가 한국에서는 비인가 된 학교라서 한국에서 중졸학력으로 처리가 되어 현역부적합이 나왔다는 것이다. 너무 허탈하고 낙담했었지만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검정고시를 통과해 합격하면 입대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교육청 홈페이지를 들어가 검정고시 시험일정을 확인 후 신청을 했고 한 달 동안 열심히 공부했다. 2016년 5월 검정고시를 쳤고, 6월 3일 결과는 아주 좋은 성적으로 합격이었다. 합격 고지를 받은 그 다음날 나는 합격통지서와 함께 병무청을 찾아갔고 최종적으로 현역판정을 받아내었다. 병무청 직원은 ‘대단한 마음 가짐’ 이라고 말해주셨다. 이 소식을 나를 제일 사랑해주시는 할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알렸고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해주셨다.

  할아버지께서는 6.25전쟁을 몸으로 겪으셨고 9년간 군복무를 하셨다. 다리에도 현재까지 탄알이 박혀있는데 할아버지는 그것을 아주 자랑스러워 하신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웠고 그런 할아버지께서 내가 군에 입대함에 좋아하시니 나의 기분도 좋아졌다. 나는 이왕 입대하는 것 최전방에서 나라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께서 전역하신 ‘무적 태풍부대’28사단을 지원하였다. 2016. 11 .15일 입대 당일 씩씩하게 부모님과 신병교육대를 향했다. 신병교육대 입구에는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젊은이들로 인산인해였고 그런 고귀한 희생으로 나라가 지켜지고 있음에 한번 더 감동했다. 입대후 자대에 오니 나에게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다.
 
  첫째는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부모님께서는 입소한 내게 편지 한통을 써주셨다. 내 인생 부모님께 받은 첫 편지였고 아직도 그 내용을 달달 외울 수 있을 만큼 많이 읽었다. 유학기간 4년동안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지만 내게 있어서 신병교육대 한 달 동안 부모님을 보고 싶었던 것이 유학 내내 보고 싶었던 것 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군 입대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가족애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자대 배치 후 매일 일과가 끝나면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오글거리지만 평생 안 해본 ‘부모님 사랑해요’를 말하고 있는 내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음을 느끼게 되었다.
 
  둘째는 건강해진 나의 생활습관이다.
규칙적인 생활패턴으로 인해 내 몸이 건강해지는 것을 느꼈고. 사회에서 밤낮이 바뀌며 거칠어진 피부와 지쳐보이던 내 모습이 점점 건강해지고 피부도 좋아지게 되었다. 또한 사회에 있을때에는 밥을 거르는 경우가 많아서 체중이 적게 나가는 편이었는데 군입대 후 삼시세끼를 다 챙겨먹음으로써 마른 내 몸에 살이 붙기 시작했고 신병교육대 수료할 때 즈음엔 정상 체중으로 되어있었다.

   셋째는 전우애이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모인 장병들이 같이 땀 흘리며 함께 감정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힘들 때면 서로 밀어주고 당겨줄 수 있는 전우들이 많아서 좋다. 나는 평소에 누군가에게 내가 아는 무언가를 알려주는 것을 좋아하며 또한 남을 돕는데 있어서 적극적인 편이다. 예를 들면 5월 11일 날본 연대 체력 측정에서 나는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 특급을 달성했고 그전에 달성한 특등사수를 토대로 특급전사를 달성했다. 많은 소대 인원들이 너도나도 특급전사를 달성하고 싶어서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특급전사 붐’이 일어났다. 최근에는 내가 운동을 가르쳐주던 한 인원이 특급전사를 달성하는 쾌거도 이루었다.

  넷째는 선진병영이다.
입대하기 전에만 해도 부조리나 가혹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있다. 걱정이 많이 되었었다. 하지만 SNS,인터넷 등에서 본 흔히 말하는 ‘옛날군대’와 지금의 군대는 차원이 다르다.

첫째는 동기생활관이다. 과거 선임병과 후임병이 함께 생활하는 생활관은 후임병이라는 이유로 눈치도 보이고 궂은일도 도맡아 하지만 도움을 요청하기에는 힘든 환경이었을 것이다. 동기생활관은 말 그대로 그달 입대한 동기들끼리만 생활관을 같이 지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선임병 들은 후임생활관에 들어오려면 간부에게 보고를 해야 하고 합당한 이유가 있을 때 에만 들어갈 수 있다. 후임병 들의 인권 및 휴식여건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동기생활관을 통해서 후임병 들은 개인정비시간에 조금이나마 나은 휴식여건을 취할 수 있다. 또한 군에서는 지속적인 외부강사를 통한 인성교육을 해준다. 한 분기에 한 번씩 외부강사님들을 초청하여 병사들에게 서로 소통과 배려, 용기, 믿음 화합에 대한 교육을 해주신다. 일주일 정도 진행되는 인성교육은 병사들이 군생활 하는데 있어 필요한 요소들을 배울 수 있으며 선임병과 후임병을 토의와 게임들을 통해 더욱 가깝고 친밀한 사이로 만들어준다.
 
  마지막으로 발달된 군 편의시설이다.
 입대 전 ‘대체 군인들은 그들의 휴식 시간에 무엇을 하며 쉬지?’ 라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자대에 배치된 후 개인정비시간에 하루도 심심할 틈이 없었다. 너무도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대학 전공 과목 강의를 들으며 원하는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사이버 지식 정보방 과 소대원들과의 단결력과 체력을 기를 수 있는 풋살장 그리고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노래방, 오락실 등이 있으며 군인의 기본권 보장과 훈련을 대비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제공해주는 생활관에 최신형 TV와 에어컨이 보급되어 있다.

  끝으로 나는 군에 오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킴을 받아온 나로서 지키는 차례가 되었기 때문에 입대를 한 것이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떳떳해지기 위해서 자원으로 입대를 한 것이고 입대 후 에는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신을 돌아 볼 수 있고 또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시간이다. 군 생활에 너무 만족스러움을 느낀 나는 부사관도 지원하고 도전해보고 싶은 의향이 있다. 이글을 통해 많은 병역 미이행자들이 한번 더 입대에 관하여 생각할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28사단 80연대 3대대 9중대 일병 김민재)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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