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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적지 답사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 ⑤

[장려작2]나의 새로운 시작의 힘이 되어준 국토 대장정
Written by. 이슬기   입력 : 2008-08-08 오전 1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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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5월 중순 어느 날, 오랫동안 준비와 생각을 해 선택한 시드니행.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동안 한국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한 뼘 더 큰 마음과 생각의 창이 자랐다는 결론을 내리고 6월 초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 시간 동안 우연히 육군홈페이지를 통해 건군 60주년 6.25 전적지 답사 국토 대장정 대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문을 보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지원서를 제출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일에 대해서는 힘들고 지치더라도 꼭 그걸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온 나였다. 하지만, 이번 기회로 얻은 것도 많지만 왠지 모르게 드는 죄책감과 결국은 편한 것을 찾기 위해 돌아가는 것이구나 하는 나에 대한 나약함으로 인한 실망감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이번 도전으로 인해 나의 스무 해 활력소와 채찍질,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초심의 마음을 다 잡기 위해 뜨거운 젊은 열정을 내 뿜기로 했다.

 나에게 있어서 6월은 언젠가부터 특별한 달이 되고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6월이 오면 외할머니와 함께 국립 서울 현충원에 참배하러 갔다. 지하실 같은 곳에 들어가서 묘비는 없고 벽에는 전부다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고, 외할머니는 누군가를 찾고 계셨다. 이번 대장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이것저것 있었던 일들을 부모님께 이야기를 하면서, 현충원 얘기도 꺼냈다.

 지금에 와서 엄마에게 들은 얘기인데, 6.25 전쟁 당시 외할머니의 하나뿐인 남동생은 그 당시 학생이었는데 징병으로 끌려가 행방불명이 되셨다고 한다. 그래서 매해 외할머니는 현충 원을 찾아가셨고, 위패 봉안 관에서 동생을 찾고 계셨던 것이다. 결국, 몇 년 동안 우리는 현충 원을 찾아갔지만 결국 동명이인이라 외할머니는 정확히 동생의 전사 사실을 확인하시지도 못한 체, 아직까지도 저 멀리 북한에서 동생이 살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계신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 외할아버지도 6.25 전쟁에 참전하셨고 국가유공자이시다. 할아버지는 지금 영천호국원에 계신다. 원래 대장정의 계획이 영천호국원도 답사 일정에 포함되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데 일정이 바뀌어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외할아버지는 전쟁 중 왼손가락 두 개를 잃으셨다. 다 우리들을 지켜주신 6.25 전쟁 용사들, 우리 할아버지들이 있으셨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편히 살 수 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번 대장정을 하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앞으로 여군을 꿈꾸는 나지만,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분들, 생전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도 모르면서 UN 참전 용사 분들……. 다 그분들 덕분에 우리는 지금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꼭 대장정을 완주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우리는 6월 25일 6.25전쟁 58주년 기념식 행사에서 출정식을 하고, 국립 서울 현충원 참배를 하고 수원으로 향했다. 프랑스 참전 기념비 참배와 재향군인회 관계자 분의 얘기를 듣고, 이제 우리는 정말 대구까지 걸어가야 하는 시작점에 도달했다. 첫날, 수원 공군부대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그날 저녁, 군대리아를 또 한 번 맛보게 되었다. 2002년 여름, “휴전선 155마일 횡단”을 참가했다. 그때도 군부대에서 숙식을 해결했었는데, 그 때 처음 먹었던 군대식 버거와 맛스타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인데, 또 먹게 되다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공군 부사관 시험에 한번 낙방한 나에겐 첫날의 시작을 공군 부대에서 맞이하게 되어 얼마나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는지 모르겠다.

 다음날 아침, 6.25 전쟁 UN군 참전 후 첫 전투가 일어난 죽미령 전투지로 향했다. UN군 초전 비에서 참배를 하고, 오산 대대 작전 장교님과 대대장님의 죽미령 전투와 6.25전쟁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뭔가 딱 해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내가 배워왔던 6.25전쟁에 대한 시작에 대한 나의 답답한 갈증이 서서히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군부대에서 준비해 주신 설명 자료와 장교님이 말씀하시는 하나하나를 들으면서, 20여 년간 살아오면서, 우리나라 6.25 전쟁에 대한 안보의식이 부족했던 사실이 너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차근차근 우리가 느끼고 배워야할 안보의식에 대한 생각의 창이 한 뼘은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또 다시 평택, 천안, 조치원을 거쳐 드디어 육군, 공군, 해군 우리나라 3군 본부가 모여 있는 계룡대로 향했다. 오랫동안 군에 관심이 많았던 나지만, 부끄럽지만 계룡대에 대한 사실은 아마도 우리 동생이 계룡대로 자대배치를 받기 전까지는 몰랐을 것이다.

 드디어, 계룡대로 입성하는 것이구나! 사실 그 전주에 우리 가족은 동생을 보기위해 계룡대에 갔었다. 동생이 바로 정문 앞으로 나와, 얼마만큼 큰 곳인지 궁금했는데 드디어 나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득 찼다. 하지만, 동학사에서 계룡대까지 가는 길이 경사로가 많아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그 전주에 차로 지나갈 때는 그리 짧아보이던 길이 얼마나 길고 힘들던지.......

 하지만, 같이 함께한 대원들이 없었더라면, 우리 분대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든 나에겐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멋진 취타대와 군악대의 환영하는 음악소리를 들으며, 그리고 육군참모총장님, 재향군인회장님 등 많은 관계자 분들의 격려와 환영 속에 우리는 드디어 계룡대로 입성했다.

 그날 밤은 육군본부에서 후원을 해 주셔서 캠프파이어와 우리들만의 조촐한 파티를 했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그동안 지치고 힘들었던 몸과 마음도 다시 새롭게 타오르는 열정을 느꼈다. 다음날 아침, 다행히 동생과 연락이 되어 행보 관님이 잠시 나갔다오라고 하셔서 동생을 만나게 되었다. 저번 주에 만났지만, 왠지 모르게 힘들고 지친 마음이었는데 동생을 보니 눈물이 났다.

 어릴 때부터, 무슨 일이든 누나가 먼저, 누나가 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착한 우리 동생, 실제로 군부대 안에서 군복을 입고 있는 동생을 보니 좀 더 늠름해진 정말 군인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것저것 욕심이 많아 다양한 체험활동들을 해온 나라서 그런지, VJ언니가 인터뷰를 하는데 동생은 무덤덤했다. 하지만, 나보다도 어린 나이에 가족의 품을 떠나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에 와 있는 우리 동생, 뿐만 아니라 친구들, 군인들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르겠다.

 다음은 대전 현충 원으로 향했다. 서울 현충원보다 왠지 더 큰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서는 직접 참전 용사들 묘비에서 참배도 했다. 내가 참배한 묘비의 용사 분은 1950년 6월 25일에 돌아가셨다고 쓰여 있다. 아마도 다 우리와 비슷한 나이또래이셨을 텐데, 짧지만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힘쓴 그분들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셨다. 그들의 희생정신에 고개 숙여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영동, 김천을 거쳐 최후의 격전지로 유명한 낙동강 전선의 대구까지 또 행군을 시작한다. 대구로 입성하기 전, 왜관 전적기념관을 지나고 칠곡 대대를 지나, 유학산 6.25 격전지 순례 길을 따라 다부동 전적 기념관으로 향했다.

 다부동 일대는 대구 방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투적 요충지라고 한다. 이곳에서 관계자분의 다부동 전투에 대한 설명과 비디오 자료를 보면서, 그 당시의 상황을 다시 되새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조금만 힘내서 걸으면, 드디어 대장정이 끝나는 대구 2군 사령부에 도착한다. 며칠 동안 비가 내려 많이 힘들었다.

 비가 오는 날을 싫어하는 나지만, 나에게 굳게 약속을 하고 시작한 대장정이기 때문에, 그리고 함께 하는 모든 대원들이 함께 했기에 마음을 다잡고 이제 조금만 걸으면 도착이니까, 하는 말을 되새기면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2008년 7월 3일 목요일 “오후 4시 40분을 기해 국토 대장정이 종식되었다”는 답사단장님의 훈시를 하셨다. 드디어 끝났구나, 나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한 모든 대원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처음 나의 대장정의 시작은 나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실망감에 가득 차 있어 나의 한계를 극복해 보고자 시작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난 또 이 대장정을 통해 그것보다 더 큰 함께한 대원들과 울고 웃으면서 보낸 10일 동안의 대장정을 모두 함께 해 냈다는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10일 동안 대장정을 하면서, 대장정에 오기 전 힘들었던 나의 상황들에 대한 혼란과 또 힘든 몸과 마음 때문에 함께한 대원들에게 제대로 도와주고 챙겨주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 한 것 같다.

 그리고 6.25 전쟁에 대한 비참상, 비극적인 우리 민족의 국토분단의 현실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최근 뉴스 기사에서 청소년들의 안보의식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생각보다 6.25 전쟁에 대해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는 기사를 접하니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나도 부끄러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뜻 깊은 건군 60주년 6.25 전쟁 전적지 답사 국토 대장정을 마치며, 올바른 안보의식과 국가관, 가치관에 대해 확실히 생각해 봐야겠다.

 함께한 100명의 대원들, 답사 단장, 부단장님, 스탭분 들, 그리고 대한민국 재향군인회와 국방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국군의 날 꼭 다시 만나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하루빨리 멋진 여군이 되어, 우리 대장정의 새로운 기수 대원들의 대장정을 함께할 그 날을 기약해 본다.(konas)

 이슬기 (동아대학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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