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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적지 답사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 ⑨

[장려작6]우리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Written by. 김시형   입력 : 2008-08-13 오전 10: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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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참전용사와의 만남 잊을 수 없어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항상 설레임을 동반한다.
국토대장정 대원으로 선발되고부터 계속 되었던 이 설레임의 씨앗이 오늘 6월 25일에는 잘 익은 열매가 된 것처럼 무르익어 있었다.

 2008년 6월 25일. 장충 체육관은 이 열매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어제부터 잠을 설쳐간 보람이 있게 날씨는 너무도 좋았고, 이 출정을 응원하는 행사 역시 규모가 굉장히 컷지만, 비장한 모든 대원들의 각오같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출정식 후에 우리가 도착한 곳은 동작구에 위치한 현충원이었다. 항상 TV가 시작되고, 끝날 때, 각종 연중 기념식이 개최되는 이 현충원에 처음 온 나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 참배를 하며, 이 대장정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 우리 대원 100명에게는 단순한 행군의 열기보다 더 뜨거운 마음 속 무언가를 찾아 낼 필요가 , 의무가 있는 것이다.

 현충원에서 참배 후에 중식을 먹고는 우리는 프랑스 참전비에 도착하여 역시 참배를 마친 후 9박 10일의 기나긴 행군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

 첫날이어서 그리 오래 걷지는 않았다. 하지만 첫 걸음부터 힘들어하는 대원들도 몇 있었다. ‘무리하지 않고, 완주하자.’, '많은 것을 배우자'는 것을 목표로 한 걸음씩 걸어갔다.

 전역한지 오늘로 120여일 정도 되는 나는 대한민국의 모든 예비역 장병들이 말하는 것처럼 2년간의 긴 군 생활을 이틀 만에 잊어버린다고 생각했었다. 다시 들어온 내무실에서, 부대에서 느낀 사실은 사람이란 그리 쉽게 기억을 잊어버리는 동물이 아니며, 현역이었을 때 항상 주장했던 대로 군 부대의 아침은 굉장히 상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으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내가 너무 좁은 우물 안에 갇혀있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까지의 12년간의 교육 후 치른 수능시험 이어 합격한 대학에서의 생활. 앞만 보고 달려온 탓에 주변은 전혀 볼 수 없었다. 서울을 제외하고 어느 지역도, 어느 대학교도 가보지 못했었는데 이번 대장정을 하면서 옆을 볼 수 있는 여유를 배웠다. 가끔 방송을 보면 ‘저희나라’ 라는 말을 사용하여 크게 곤혹을 치르는 유명인을 볼 수 있다. ‘나라’라는 명사는 국력의 크기에 상관없이 1:1관계이기 때문에 상대방에 비해 주체를 낮추는 ‘저희’라는 수식을 할 수 없다. 이렇게 한 나라에는 존엄성이 있고, 권위가 있다. 국권을 잃은 나라는 약소국 취급을 받으며, 멸시를 당하고, 그 나라의 국민은 인권 또한 존중 받기 힘들다. 나라는 우리가 사는 집과 같은 곳이다.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의 삶을 영위하게 한다. 자신의 집을 믿지 못하고, 집이 부실하다면, 그 안에 사는 주인이 주인 역할을 하지도 못하고, 두 발을 뻗고 잘 수 없을 것이다. 계속 되는 기행문에서 살펴보겠지만, 생각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실천은 생각보다 간단한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토는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넓고, 무수히 많은 명소와 명경을 가지고 있다. 이전에는 왜 몰랐을까 라는 반성으로 시작한 생각은 무언가 개발적인 미래의 종착점에 도착했고 행군 도중 있었던 비에 대한 감상으로 이어졌다.

 비에 대한 생각은 사람들 마다 정말 다양한데, 비를 보는 것보다 빗소리를 듣는 것이 좋다는 어느 작가의 말부터 시작하여 비는 생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말 여러 소재가 되곤한다. 행군 때 며칠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판쵸우의 만을 덮어쓰고, 걷기 시작했다. 비가 와서 햇볕이 내리 쬐지 않아 훨씬 행군하기 수월하다는 대원과, 파전에 동동주가 생각난다는 대원, 신발이 모두 젖어 불편함을 느끼고 미간이 찌푸려 있는 대원과 비오는 날 헤어진 첫사랑을 생각하는지 웃고 있다가 가끔씩 우수에 젖는 대원까지, 이 비에 모두는 각기 다른 모습이다.

 각 부대에서는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는 배려를 해주셔서, 모두 감기가 걸리지 않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 할 수 있었다. 자기 전에 생각 했다. ‘모든 대원들의 꿈속에서도 비가 내렸을까?’ 꿈속에서는 맑고 화창해서 모두의 기분이 비온 뒤 갠 날처럼 뽀송뽀송했으면 좋겠다.

  이 대장정의 중간지점인 계룡대에 입성하였을 때는, 육군·공군의 군악대로 시작된 환영식은 육군참모총장님과 재향군인회 회장님의 격려사로 이어졌고, 현역 복무 시절에서 2스타밖에 볼 수 없었는데, 4스타 외의 여러 장성 분들의 환영은 별들의 전쟁(스타워즈)라던 한 대원의 말처럼 기분마저 번쩍번쩍 했던 것 같다.

 계룡대 측의 환영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캠프파이어와 군악대의 공연, 박세직 회장님의 선물 등은 총 행군 거리의 절반인 175KM를 걸어온 우리에게 더 힘을 낼 수 있는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해 주 었다. 군사도시인 계룡대는 무언가 웅장하고, 장엄한 분위기였고, 그 큰 거인 같은 도시는 10시가 되자 우리와 함께 잠들었다.

 다음날 오전에는 계룡대를 견학했었는데, 조금씩 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서 우리는 이성계가 도읍으로 생각했다던 계룡대 주초석을 견학의 시작으로 국군의 여러 군용 장비들을 보고는 계룡대 내 위치한 명예의 전당, 추모기념관을 둘러보고, 육, 해, 공군의 소개영상과 6·25 전쟁의 비극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갖았다.

 모두들 전날의 피로가 덜 풀렸겠지만, 계룡대 내의 하나하나를, 6·25 전쟁의 내용을 접하는 대원들의 눈빛만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우리 100명은 이 곳에 놀러온 것이 아니다. ‘해야 할 것은 너무 많다.’ 또 ‘그것을 다 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젊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대전 현충원에서는 서울에 위치한 현충원에서처럼 참배를 하고 견학하였다. 이곳에서는 각각 묘비를 기리는 시간이 있었는데, 내 앞에 적혀있던 1952년 7월 2일에 전사하신 이 광휘 육군 일병님의 추모를 마치며, 다시한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렇게 뜨거운 눈물을 흐르게 하는 6·25 전쟁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 조사자료 에서는 믿지 못할 결과가 나왔다. 6·25 전쟁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또는 일부 왜곡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느 나라간의 전쟁인지 모르는 학생들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한다고 한다. 강산도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하지만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6·25라는 우리 조상들이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운 전쟁이 그것이다. ‘조상’이란 말은 듣기에는 무척 오래된 분인 것처럼 보이지만 올해로 전쟁 58주년을 맞은 반세기 밖에 지나지 않은 사건이다. 58년전 이맘때 서울은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지금에야 건물이 들어서고, 수 백 만대의 차가 다니고 천만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지만, 58년 전 서울은 비극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이 국토 대장정을 걷고 있는 모두의 생각은 하나였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지켜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이 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저희가 있습니다.’

 우리는 최종 목적지인 대구의 2군 사령부에 들어왔다. 완주의 기분은 해본 사람만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행군을 해 본 나였지만, 또 이전에도 행군 완주의 기분을 경험해 본 나였지만, 이번 9일간 행군 후 느낀 기분은 뭐라 표현이 되지 않는다.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환호성과 울음소리에 더욱 떨려서 그런지 말이 잘 나오지 않고, 생각 또한 잠시 정지 한 것만 같았다. 해단식 전야제 때는 삼겹살 파티와 레크레이션을 준비해주셔서 모두가 웃고 또는 울고 즐겼지만, 9박 10일의 강렬한 인상을 묻어둘 만큼 크게 역동하지 않고, 오히려 잔잔한 감동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도전, 낭만, 열정, 패기. 이 해단식이 있는 7월 4일. 국토대장정 마지막날 나는 무슨 수식어가 어울릴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결국의 어쩌면 이 세상의 인간을 나타낼 수 있는 모든 수식이 이 10일간의 대장정에 쓰일 것이라는 결론을 낼 수 있었다.

 나 역시 2년간의 대한민국 육군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온 예비역이다. 군에서는 안보에 관한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매주 수요일 정신교육이라는 것을 통해 국가 안보 의식도 고취시키고, 연 2회, 집중 정신 교육 이라는 교육기간을 마련해, 군 장병의 6·25 전쟁 및 대북과 관련한 자세를 배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군대에 있는 기간에는 과거 6·25 전쟁을 잊지 않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TV에서 하는 6·25 전쟁 기념식을 빼고는 안보의식은커녕 6·25를 기억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해단식 전에 있었던 ‘6·25 전쟁 참전용사와의 만남’은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다. 6·25 전쟁은 수치화된 자료로만, 제3자였던 종군기자들의 기록으로만 봐온 전쟁의 내용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참전용사 분들께 들은 얘기 중 공산당에 가입 후 당시 국군이던 친오빠를 죽인 여동생 이야기와 총알을 아끼기 위해 무고한 주민들을 우물에 생매장 시킨 만행 등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끔찍한 일이 벌어지던 사건들은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고, 조국 수호에 대한 마음을 다시 한번 다지게 했다.
 
 가슴 뛰는 해단식에서 받은 A4용지에 적혀진 수료증에는 내가 이 대장정 행군을 완주했다는 말이 적혀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사람으로서 도전하고, 행복하고, 감동하였고, 아름다운 추억들이 모두 적혀있는 것 같았다.

 많은 인연도 생겼다. 나를 이끌어준 분대원들, 이 6·25 전적지 답사 국토 대 장정을 통해 우리 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감사함을 느끼게 해 준 모든 관계자분들, 이 철 없던 청년의 의식을 바꿔준 순국선열들…

 국토대장정간 단단해진 다리와, 금연을 성공하게 한 굳은 의지와, 더위와 고통을 참은 인내와 의식들. 생각해보면 너무 많은 선물을 받은 것 같다.

 대장정을 마친 우리는 대장정이 해단식과 함께 끝났다고 말하지 않았다. 시작이라고 하였다. 구박 십일의 행군은 끝났지만,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구십년, 백년의 인생은 훨씬 더 도전적이고, 낭만적이며, 더불어 열정적이고, 진취적이어야 하기에. 그래서 우린 더 행복해야 하기에.

 글을 마치며, 국토대장정과 인연이 있는 모두에게 감사드리며, 내 눈으로 본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강산처럼 우리가 더욱 아름다워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konas)

 김시형(단국대학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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