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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적지 답사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 ⑩

[장려작7]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잊지못 할 경험
Written by. 신미향   입력 : 2008-08-14 오후 1:5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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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6월 10일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내 이름을 확인하면 기뻐했던 순간이 벌써 한달여 가까이 지났다. 되돌아보면 힘든 기억도 많지만 분대원들과 함께 걷던 순간이 문득 그리워지곤 한다. 3년 전 금강산을 다녀오면서 6.25의 아픔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이산가족들의 눈물을 지켜보았다. 그 일을 겪으면서 난 내 조국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었다. 통일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였던 내 생각이 얼마나 잘못됐었는가를 깨닫게 되면서 6.25 전쟁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고 나를 통해 내 친구들이 그것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신청서를 작성했다.

 신청서를 쓰면서도 “설마 될까?!”라는 생각에 며칠 동안 잠못 이루면서 날짜를 손꼽아 기다렸었다. 하지만 막상 뽑히고 나니 내가 그 먼 거리를 과연 걸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더 큰 고민을 안고서 잠을 설쳐야만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1차 오티를 참석해야 했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친구랑은 가봤어도 혼자서 오티 장소를 찾아가는게 솔직히 겁도나고 처음보는 분대원들과 어떻게 친해져야 하나.. 걱정도 엄청나게 많이 하고 갔다. 역시나! 처음보는 우리 분대원들 어색하기 짝이없고 우리 조였던 여자애들은 나를 포함해 2명만 온 것이 아닌가!! 어색한 분위기 속에 다음에는 꼭 친해지자고 말하고 그렇게 헤어져서 집에 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우리 조에 언니가 나와 같은 학교를 다닌다는 그 사실 하나가 내가 이 국토대장정을 할 수 있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2차오티를 마치고 국토대장정 그 날이 왔다.

 생각보다 발대식 행사규모가 너무 커서 놀라고 10일 동안 우리 분대원들과 과연 친해질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행사를 끝내고 동작동 국립 현충원으로 향해갔다. 대구에는 국립묘지가 없는 지라 티비에서만 보던 현충원을 본다는 생각에 너무 들뜨고 신기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참배를 하고 설명을 듣고 내부에서 참전 용사들의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더 숙연해지고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편안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러나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해가 너무나 많다는 소리에 하루 속히 유해 발굴 작업이 이뤄져서 아직도 땅속에서 묻혀서 가족을 찾고 있을 전사자들의 영령이 편안히 잠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또한 가지게 되었다.

 현충원을 지나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를 방문하고서 드디어 행군의 첫 스타트가 시작되었다. 첫 날이라서 일까?! 생각보다 걷는게 걸을만하다고 생각하고 걸었다. 그리고 드디어 군부대에서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신기한 것 투성이였다.

 특히나 음식! ‘군대리아’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 같다. 우리 조에 있던 전역한지 3개월 되는 동갑 친구의 그 능숙한 ‘군대리아’ 제조 기술은 우리 조원들의 칭송을 받을만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악몽의 둘째날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30킬로씩 걷기 시작한 날이 온 것이다. 수원에서 평택까지 걸어가는데 하루종일 걸어도걸어도 수원이요 평택은 보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너무 바리바리 싸온 가방의 무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 어깨와 내 정신을 놓게 만들었다. 아마 이날부터 였을 것이다. 우리조가 더욱 돈독해 질 수 있었던 시간이.... 하루종일 걸으면서 서로의 애기를 하고... 같은 공통의 관심사로 모아지고.. 힘든 여자 조원들을 위해서 가방을 들어주는 젠틀한 정신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말이다. 한편으로 너무 고맙고,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데도 같이 완주하기 위해서 함께 도와 가는 모습이 대장정 내내 내가 포기할 수 없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잊지못할 추억의 셋째날 장기자랑! 사실 처음에는 그냥 소박하게 할려고 했으나 술이 걸려있다는 말에 갑자기 다들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면서! 남자애들에게 여장을 시키며 요즘 최고로 유행하는 원더걸스 ‘so hot’을 연습해서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다들 힘든데다 열악한 조명으로 인해 대실패!! 남자애들은 다들 민망함에 고개를 떨궈야만 했다.   선문대에서의 추억을 뒤로한채 4일차에는 비가 엄청나게 왔다. 비가 오는데 걷겠어.. 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걸었다. 이날은 내 사투리가 우리조에 전파되기 시작한 극적인 날이라 볼 수 있다. 서울에 살던 애들은 나의 대구사투리인 ‘맞나! 맞다’에 재미 들려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부터 우리 조에서 사투리 향연이 시작됐다. 같은 말을 쓰는데도 의사소통이 안되고 못알아 듣는 경우를 보니 남북이 통일 됐을 때의 상황을 알만할 것 같았다.

 드디어 5일차!! 악몽중의 악몽 계룡대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사실 대전에 살지 않는 나는 계룡대가 그렇게 대단한 곳인줄도 몰랐고 그렇게 악몽의 산인줄도 몰랐다. 가방 무게에 짓눌려서 산을 걸어 올라가도 끝이 안보였다. 거기다 스텝들이 자주하는 1시간만 걸으면 된다는 말은.. 2시간 넘게 걸어서야 군악대의 환영을 받으면서 계룡대에 입성하게 됐다. 계룡대가 대한민국 국방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이때서야 알게 되었고 그 큰 규모에 엄청나게 놀랐다. 그리고 그 시설들을 관람하면서 정말 내가 군인이 된다면 이곳에서 꼭 근무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드디어 대장정의 절반이 지났다. 5일차가 되고보니 세상과 동떨어지기 시작하고 날짜 개념도 점점 없어지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물집이 엄청나게 잡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조에서 누구하나 성한 사람이 없었다. 특히나 제일 맏언니는 발에 물집이 100명 대원들 중에서 가장 커서 vip대접을 받으면서 행군을 계속해 나갔다. 정말이지 그 의지와 투지가 대단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점점 흐르고 이제 D-day 3일이 되었던 날... 소대별 롤링페이퍼를 쓰게 되었다. 롤링 페이퍼를 쓰다 보니 왠지 눈물이 핑~돌 것 같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 여정이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아쉽고 빨리 대장정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참 복잡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8일차!! 김천에서 내 고향 대구가 보이기 시작하는 일정이 시작됐다~ 물론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걷는것도 이젠 적응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밥도 조금먹고 간식도 안먹곤 했는데 이제는 주는건 무조건 다 받아먹고 더 먹을 것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걸으면서 왜관 전적 기념관에 도착하게 됐다. 전에 내가 가본 곳인줄 알았는데 그곳이 아니였다... 알고보니 왜관에는 2군데 전적 기념관이 있었던 것이었다. 시간이 별로 없는지라 얼른 둘러보고 또 군부대까지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버스 안에서의 달콤한 휴식이 끝이 난채 다시 걸으려니 얼마나 힘이 들던지...

 그렇게 마지막 행군의 날이 다가왔다. 드디어! 마지막 행군날~ 다들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나 내고향 대구의 날씨는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오전에는 초등학교 단골 견학장소인 다부동 전적지까지 걷는 코스였다. 그런데 이놈의 날씨가 시원했다 더웠다 비가 왔다 안왔다 오락가락 사람을 잡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길마저도 꼬불꼬불. 어찌나 힘들던지.. 다들 마지막에 우리가 했던 모든 행군의 결정판이라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드디어 1차 목적지인 다부동 전적지에 도착! 그곳에서 영상물을 관람하고 전시실을 둘러보고서는 바로 가방을 메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젠 정말 끝이구나! 라는 생각으로 더운 날씨에 가방을 메면서 숨을 헥헥 거리면서 걷고 또 걸었다. 중간에 착한 우리 분대 남자 대원들이 역시나 가방을 들어준 덕에 그나마 마지막엔 조금이나마 체력이 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대구에 도착^^ 대구에 사는 내가 서울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길이 이렇게 멀고 험할줄 누가 알았겠는가!! 군악대의 환영을 받으면서 도착했을 때 눈물이 핑~돌았다. 게다가 우리 분대 모두 함께 완주할 수 있어서 너무너무 기뻤다.

 9박 10일간의 일정동안 물론 6.25 전쟁의 참상에 대해서는 내 자신이 너무 많이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가슴깊이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6.25 참전용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할아버지뻘 되시는 분들께서 우리 나이에 전쟁에 참가해서 친구와 가족을 잃었다는 사실을 들으면서 난 참 행운아구나!라는 생각을 많이했다.

 분명 북한의 도발로 인해 조국이 둘로 나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북 대치로 인한 소모적인 비용 또한 너무나 많이 지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하루빨리 남북이 하나되어서 6.25 전쟁이 더 이상 남북 교과서에서 서로 다른 내용으로 쓰여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마 땅속에 묻혀있을 전사자들의 영령 또한 그것을 바라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분대 맏오빠가 동생들이 포기하려고 할 때 늘 했던 말이 있다. “이것 하나 이겨내지 못하면 넌 인생에 있어서 낙오자가 될 뿐이다. 너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해라.”라고 말이다. 그 말을 되새기면서 걸어서 대구까지 오게 되었다.

 절대 혼자라면 올 수도 없었을 것이고 마음먹지 못했을 일이였다. 정말정말 분대원들에게 감사하고 이런 행사를 통해서 젊은 세대들에게 잊혀져가는 6.25에 대해서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지속적으로 이뤄졌으면 좋겠다.

 내 인생에 잊지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을 국토 대장정! 힘들지만 꼭 한번쯤은 해볼만한 즐거운 도전이였다.(konas)

 신미향(영남대학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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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0-05 오전 6:17:07
    찬성0반대0
  • Luke    수정

    정말 장합니다! 프러시아가 보불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하기 까지 어머니들과 초등학교 여교사님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습니다. 대한 강군 육성으로 주변 4강에 효율적으로 대응해 나가려면 국가안보를 위한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이 요구됩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8-08-16 오후 1:52:26
    찬성0반대0
  • kjh767    수정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와 평화 그리고 물질적인 풍요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리 선열들께서 우리조국,자유대한민국을 위해 희생이 있으셨나를 생각해보며 나라사랑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셨길 바랍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8-08-14 오후 9:12:46
    찬성0반대0
1
    2019.3.21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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