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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모호성’? 世界觀의 빈곤

Written by. 류근일   입력 : 2015-03-24 오전 8: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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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하고 떼려야 뗄 수 없고 뗄 이유도 없는 관계에 있는데 또 다른 제3자와 사귀어야 할 때가 있다. 이럴 땐 미리 이렇게 일러두고 시작하는 게 현명할 것이다. “나는 저 사람과 짝꿍이다. 이걸 알고 나와 친하게 지내달라.” 이러지 않고 그냥 “우리는 친한 친구…”얼씨구 하며 간(肝)도 쓸개도 다 빼줄 듯 러브 샷을 하다가는 나중에 무척 난처한 지경에 몰리는 수가 있다. “그래? 그럼 어디 저 친구 버리고 나하고 더 친해 봐” 하고 들이댄다면 그땐 뭐라고 하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몰입해 온 한·중 친선 외교에 배 아파할 사람은 김정은 패거리를 빼놓고선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이미 우리 교역량의 27%를 차지하는 나라다. 북한과 관련해서도 중국은 너무나 중요한 인접국이다. 이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그동안 중국에 들여온 공은 평가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만약 그것 때문에 우리를 향해 “너희, 우리와 친구 하자고 했지? 그럼 어디 미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차버리고 우리한테 와 봐”라고 말하며 가지고 놀게 되었다면 우리의 불찰 또한 없었다고 할 순 없다.

 우리는 중국과 친선을 도모했을 때부터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두었어야 했다. “우리는 안보에선 한·미 동맹을 최우선시 한다. 이걸 전제하고서 한·중이 잘해보자” 이런 사전 천명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중국은 우리에게 요즘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양자택일이라도 하라는 듯 오만과 무례를 자행하고 있다.

 중국의 이런 말도 안 되는 행태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팀은 ‘전략적 모호성’이란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이런 궁색한 처세법 자체가 박근혜 외교·안보팀의 ‘세계관의 빈곤’을 드러냈을 뿐이다. 아니, 미국과 중국이 맞붙는 동아시아·서태평양 국제정치의 격랑 속에서 여태 ‘추호의 모호함도 없는’ 확고한 전략 틀 하나 제대로 짜지 못해서 임시방편거리도 안 될 ‘전략적 모호성’ 따위로 깔고 뭉개려 했는가?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중국은 근래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라는 말 대신 ‘중화 애국주의’라는 말을 즐겨 쓰며 마치 당(唐) 제국이나 청(淸) 제국의 판도(版圖)라도 회복하겠다는 투다. 오키나와·대만·믈라카를 잇는 이른바 ‘제1 열도선(列島線)’ 안쪽을 중국의 내해(內海)쯤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A2/AD, 다시 말해 '접근 거부/배타 지역(anti-access/area denial)' 구상이다. 함대함(艦對艦) 미사일, 초현대식 잠수함, 사이버·위성요격 무기로 이 바다를 중국의 기지화(化)하겠다는 것이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서태평양·남중국해·동중국해 일대 서반구가 미국 입김 속에 들어가 있듯 중국 손아귀에 떨어질 판이다. 한국·베트남·필리핀·말레이시아·호주 등이 모두 중화 대국주의의 위협 아래 놓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중국의 이런 ‘이빨 드러내기’ 앞에서 베트남 등 아세안 국가들과 호주는 분명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가 그것이다. 우리와 똑같은 문제에 직면했으면서도 이 나라들이 ‘전략적 모호성’이 어떻다고 둘러대며 쩔쩔맨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2014년 4월 베트남은 중국이 어떻게 보든 말든 미국과 합동 해상 훈련을 감행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는 그곳 연안 경비대에 1800만달러와 쾌속정 5척을 제공하기로 했다. 팜 반 민 베트남 부수상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해상 순찰 장비, 레이더, P-3 정찰기 금수(禁輸)를 완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런 아세안 국가도, 전통적인 친(親)서방 국가 호주도 ‘경제는 중국과’ 트려 한다. 아세안은 중국의 패권주의를 막기 위해선 미국과 협력하지만 또 한 편으론 중국과 FTA를 체결했다. 호주의 안보 전문가는 자국 CEO들을 상대로 이런 정세 브리핑을 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의 주요 경제 파트너가 미국·영국 등 전통적인 전략 파트너가 아니게 되었다.”

 이게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느니,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눈치를 본다느니가 아닌 것이다.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은 자발성과 주체성을 가지고 ‘안보는 안보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다(多)차원적인 살길을 열고 있다. 그런데 우리 외교는 뭐가 어떻다고 구차스러운 ‘모호성’ 뒤에 숨으려다 웃겼나? 중국과는 물론 잘 지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이 눈 흘긴다고 사드를 망설인다면 그건 못난 짓이다.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 '조선일보 류근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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