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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流 사이비 민족주의’의 蠻行을 규탄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갈 데 없는 제3 세계’ 수준으로 추락시켜
Written by. 류근일   입력 : 2015-03-06 오전 9: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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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 일각에는 아직도 한국을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식민지, 반(半)식민지 빈농(貧農) 국가 정도로 간주하는 시대착오적 ‘3류 사이비 민족주의가’ 저회(底廻)하고 있다.

  여기가 이라크인가, 아프가니스탄인가? 리퍼트 미국 대사에 대한 ‘3류 사이비 민족주의’ 광신도의 테러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고도 멀다는 것을 새삼 환기해 주었다. 제3 세계 근대 민족주의는 본래 식민주의, 제국주의에 대한 ‘반(反)테제’로서 발생했다. 나라 한 복판에, 그것도 나라의 상징물인 정궁(正宮) 바로 앞에 외국의 총독부가 떡하니 들어서 있는 마당에서야 그 누군들 전투적 민족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그러나 대한민국은 식민지 시대의 민족주의 정서 하나만으로는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는, 매우 발전되고 복잡하며 독립된 근대 산업국가가 되었다.

 이럼에도 우리 사회 일각에는 아직도 한국을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식민지, 반(半)식민지 빈농(貧農) 국가 정도로 간주하면서, 그것을 지탱하는 한미동맹을 민족의 적, 민중의 적, 통일의 적, 평화의 적으로 적대하는 시대착오적 ‘3류 사이비 민족주의가’ 저회(底廻)하고 있다.

 지금을 아직도 식민지 시대라고 치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고, 그 ‘담론’이라는 것이 너무나 투박하고 무식하다는 점에서 3류이며, 사실과 진실을 털도 안 깎은 채 주관적으로 왜곡한다는 점에서 ‘그럴듯한’ 사이비다.

 그러나 모든 미신들이 다 그렇듯, 그런 교설(敎說)은 항상 밀교(密敎)적이고 유사종교적인 양태(樣態)를 띠운다. ‘새 하늘 새 땅’을 대망하는 그 종말론적인 짜릿함과 도취감(陶醉感) 때문이다.

 1980년대의 신군부 시대에 ‘3류 사이비 민족주의’는 유행의 절정에 달했었다. 어쭙잖은 ‘민족민중’ 담론이 대한민국에 대한 증오와 북한에 대한 호감을 불태우면서 대학을 사이비종교의 제단으로 만들었다. 그 억지와 궤변에 취한 풋내기 광신도들이 자본주의, 서구주의, 근대성(modernity)을 ’반(反)민족, 반(反)민중‘쯤으로 단죄했고, 대한민국을 그 도구쯤으로 매도했다. 이것은 기성종교가 매력을 잃어가는 시대에서 젊은 불평객들을 사로잡는 신흥종교 구실을 했다. 분노, 저주, 증오, 투쟁, 원한, 전복(顚覆), 파괴의 미덕(?)을 설파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마음속 한 귀퉁이에선 “학생들이 오죽 화가 났으면 저러랴...” 하고 헤아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아니다. 그렇다면, 정히 그렇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아니라면 다른 뭐가 있느냔 말이다. 대한민국이 ‘식민지’면 휴전선 이북은 뭔가 말이다. 자주? 평등? 해방? ‘이밥에 고깃국’? 그 모든 것이라고 했지만 그 어느 것도 아니다.

 북한의 ‘자주’는 쇄국주의와 압제의 외피(外皮)이자 터무니없는 배외(排外)주의다. 북한의 ‘평등’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의 별명이다. 북한은 거의 완벽한 ‘카스트’ 체제다. 수용소 체제다. 그리고 북한에서 ‘이밥과 고깃국’은 반세기에 걸친 거짓말이었다. 결국, ‘3류 사이비 민족주의’는 순진한 관객들 둘려먹는 사기란 뜻이다.

 리퍼트 대사에 대한 ‘3류 사이비 민족주의’의 테러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갈 데 없는 제3 세계’ 수준으로 추락시켰다. ‘어? 한국에서? 형편없는 데로군...쯧쯧쯧’ 문제는 이게 우리사회의 속사정이란 사실이다. 우리 사회엔 이런 종류의 원색적인 ‘이념투쟁’이 활화산처럼 불타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걸 정부, 새누리당, 공무원들만 모른다는 게 더 한심한 노릇이다.

 이것도 모른 채 “북한과 광복 70주년을 공동으로 기념 하겠다”는 정신 나간 헛소리가 정부부처의 보고에서 버젓이 나오는가 하면, 통일부라는 데선 과거에 김상률에게 8번 씩이나 방북허가를 내주었고 그를 ‘통일교육원’인지 하는 곳의 강사로 초청하기도 했다. 교수시절, 반미(反美), 반(反)제국주의 책깨나 냈다는 김상률 교문수석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이번 테러로 범인과 그 ‘동지’들은 선전전에서 상당한 이득을 보았다. ‘한국이 마치 반미 운동이 판을 치는 나라’인 양 전 세계에 선전했으니 말이다. 미국 국민정서 일각에서도 ‘저런 나라와 왜 동맹을 하느냐?’는 반감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건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범인을 호송차에 가두어 이동시키지 않고 기자들에게 성명이라도 발표하라는 듯 공개한 경찰은 도대체 무슨 의도로 그렇게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이게 이 나라 관군(官軍)의 실태다. 어차피 또 의병(義兵)이 나서야 한다는 뜻인가?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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