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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교훈과 전쟁 재발 가능성

“국가안보 최우선 과제는 전쟁 억제”
Written by. 김성만   입력 : 2015-06-25 오후 4:4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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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발발 제65주년 기념행사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에도 불구하고 오늘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국가보훈처는 이날 오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튼튼한 안보의 길, 하나 된 통일의 길’이라는 주제로 중앙기념식을 거행했다. 6·25참전용사와 참전국 주한외교사절, 정부 주요인사, 시민, 군 장병 등 3천여 명이 참석했다. 전국 시·도·군·구별로 6·25전쟁 지방행사가 지역단체장과 주민, 학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실시됐다. 각급 학교에서도 6·25전쟁 바로 알기 특별교육이 진행됐고 지하철역 등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6·25특별사진전도 개최됐다.

 당시 한국군은 전투력이 열세함에도 불구하고 준비를 소홀히 해 북괴군(북한군)의 전쟁도발을 자초(自招)했다. 한국군은 초전에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무너져 수도서울을 3일 만에 북괴군에게 내주고 남으로 패주(敗走)했다. 세계 전사(戰史)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수도를 함락당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 달 만에 국토의 90%를 적(敵)에게 점령당했다. 한국은 미국 등 우방국의 즉각적인 파병으로 국가소멸 직전에 회생했다. 한국군과 유엔군(21개국)은 유엔군사령부(다국적 연합군사령부)를 조직하여 낙동강 전선에서 공세작전을 전개할 수 있었다. 전쟁의 원칙(군사작전의 원칙)과 전사(戰史)의 교훈에 따라 작전통제를 단일화하여 전투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6·25전쟁(1950.6.25~1953.7.27)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그러면 지금 한국의 안보상황은 어떠한가? 국내·외 군사전문가들은 6·25이후 최악의 안보위기를 맞고 있다고 평가한다. 우리 국방부장관과 합참의장도 수시로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은 핵무기 사용까지 위협하고 있다. 전쟁 재발이 우려된다. 그 이유는 당시와 지금의 안보상황이 흡사하기 때문이다.

 ① 남·북한 군사력의 불균형이다.

 당시 북괴군(19.8만 명)은 한국군(10.5만 명)의 1.8배이고 곡사포 6배, 대전차포 4배, 장갑차 2배, 함정 1.5배, 항공기 9.6배로 우세했다. 한국군에는 없는 전차를 242대, 전투기·전폭기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지금 북한군은 현역 120만여 명, 예비군 770만여 명으로 세계 3위의 병력 규모이며 5위의 군사력이다. 우리에 비해 규모와 수효 면에서 1.9배의 정규군과 2.5배의 예비전력을, 전차 1.8배, 야포 1.5배, 다련장/방사포 27배, 지대지 유도무기 1.6배, 전투함 3.9배, 상륙함 26배, 잠수함 7배, 전투임무기 2배, 공중기동기 6.6배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가 우세한 것은 헬기(2.3배)와 장갑차(1.08배)다. 우리 軍 재래식 전력은 북한군의 80% 수준이다. 북한은 한국군에는 없는 대량살상무기(핵·화학·생물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탄도미사일도 1천여 기를 갖고 있다.(2014 국방백서 자료 참조, 2015.1.6 발간)

 ② 우리 軍 수뇌부의 안보 정세에 대한 오판이다.

 과거 軍 수뇌부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명령만 내려주시면 바로 북진하여 아침은 서울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을 신의주에서 먹겠습니다.” 그런데 전방부대의 병사가 휴대한 실탄은 카빈소총 15발과 M1소총 8발이 전부였다.

 지금 우리 軍 수뇌부는 대북 억제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2014년 3월 6일에 발표한 ‘2014-30 국방개혁기본계획’에 감군(減軍)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상비 병력은 현재 63만3천명에서 2022년까지 52만2천으로 줄어든다. 예비군은 320만 명에서 150만으로 감축된다. 예비군 부대의 개인무장은 카빈소총이 약 40%다. 국방부는 2015년 5월 22일 발간한 국방비 홍보 책자를 통해 예비군 부대에 K-2소총을 2018년부터 보급을 시작하고 2030년에 완료한다고 밝혔다.

 ③ 한국 내부에 종북세력(從北勢力)이 있다.

 대한민국은 1945년 해방이후 한동안 심한 사상의 갈등을 경험했다.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혼재(混在)했다. 국내에 우후죽순식으로 결성된 단체들은 좌(左)와 우(右)로 편을 갈라 서로 싸웠다. 민간 폭동과 군부대 반란도 있었다. 군은 숙군(肅軍)을 해야 했다.

 국정원은 현재 북한의 대남공작 조직 225국과 정찰총국 출신 간첩을 포함한 국내 종북세력 (핵심분자)을 2만여 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성호 前 국정원장은 2014년 4월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초·재선의원 모임인 혁신연대모임 특강에서 종북세력이 법원과 검찰은 물론 언론기관에까지 침투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김 前 원장은 “북한은 남남갈등을 일으켜 통일을 하겠다는 전략”이라며 “그래서 국회에도 진출을 좀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④ 한미군사동맹의 약화다.

 1945년에 남한에 진주했던 미군은 1949년에 모두 철수했다. 미국은 1950년 1월 12일 애치슨-라인을 설정했다.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에서 한국이 제외된 것이다. 북한은 5개월 후 한국을 전면 공격했다.

 우리 군은 주한미군의 전·평시 한반도방어 10대 임무기능을 2004년~2008년간 모두 인수했다.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이 약화되었다. 주한미군 약 1만 명이 2005~2007년에 철수했다. 현 병력은 2만8천여 명이다. 그리고 한미연합군사령부(6·25의 유엔사와 같은 기구)를 ‘전작권 전환’이란 미명 아래 2007년 2월부터 해체하고 있다. 2013년 4월 기준 해체진도가 70%다. 우리 국방부는 전환을 2022년경 완료한다는 방침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미연합사까지 해체되면 주한미군 전면철수를 우려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쟁 재발 가능성이 6·25전쟁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안보의 최우선 과제는 전쟁 억제에 두어야 한다. 우리 군은 더 이상 말로만 경고하지 말고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 하루 속히 대북(對北)군사력 불균형을 해소하고 약화된 한미연합 작전체제를 복원하여 전쟁억제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감군을 중단하고 국방비를 증액(GDP 2.5%⟶ 3.5%)해야 한다. 한미연합사 해체(전작권 전환) 계획을 폐기하고 주한미군의 주둔명분을 제공해야 한다.

 전·평시 연합작전에 필수조직인 한미연합사를 해체하는 것은 전쟁재발 초대행위에 해당한다.

 그리고 정부는 현 안보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고 국론통일에 힘써야 한다. 국민은 이번 기회에 6·25전쟁의 교훈을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Konas)

김성만 예비역해군중장(재향군인회 자문위원, 前 해군작전사령관)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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