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기획/특집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2016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②〕Two Years of Service, Lifetime of Inspiration

사회복무에서 나의 미래와 자긍심을 얻다
Written by. 김재우   입력 : 2016-09-02 오후 2:41:12
공유:
소셜댓글 : 0
twitter facebook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6년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 ‘우수상’ 글임. (편집자 주)

 저는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3년을 제외하곤 미국과 필리핀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생활이나 문화가 많이 낯설고 서툽니다. 고등학교 때 운동 중 사고로 다쳐서 신체검사에서 4급 사회복무요원 배정을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인턴으로 연구를 하다 보니 벌써 26살이 되었고 그만큼 군복무를 남들보다 늦게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과연 복무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과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들과 다른 점이 많은 만큼 한국에서의 사회복무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복무를 하면서 제가 얼마나 중요한, 많은 것을 얻었는지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처음 근무를 시작했을 때는 일이 별로 재미없었습니다. 짐 옮기는 일, 서류 정리, 복사업무 등 지루한 작업들밖에 없었습니다. “사회복무요원이니까 단순 업무만 시키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일을 하기 싫을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복무 자체에 대한 불만이었고, 지루하다는 것은 사실 핑계였나 봅니다. 보잘 것 없는 일을 한다는 사회복무요원 가치에 대한 편견이 남들로 부터가 아닌 저 자신으로 부터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던 그 순간이 제 복무생활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잘못된 사회복무요원의 이미지에 굳이 저 자신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동시에 2년의 복무기간 동안, 복지관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게 주어진 일에, 그 아무리 소소한 일이 어도, 제 정성이 묻어있다고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그런 존재. 그때부터는 제게 주어지는 일은 그게 무엇이든 정확하고 신속하게 마무리하였습니다.

 간단한 복사작업부터 복잡한 엑셀 작업까지 눈치껏 척척 알아서 배워가는 습관을 기르며 반복적인 일은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찾았고, 작업이 일찍 끝나면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께 직접 찾아가 도움을 건네며 선생님들과도 친해졌습니다. 곧 복지관 선생님들이 저를 자주 찾고 필요로 하게 되었고, 업무의 폭이 넓어지면서 저의 다른 능력들도 발휘할 기회가 늘어났습니다.

 복지관에는 실버대학 수업이 많습니다. 영어수업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영어 기초문법교실부터 팝송교실까지 다양한 수업들이 있지만 아쉽게도 원어민에게 배우는 수업은 없었습니다. 영어를 잘 할뿐만 아니라 여러 외국문화에 익숙한 저였기에 저만의 독특한 수업을 할 수 있을거라고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이런 야무진 생각으로 수업을 시작했으나, 영어를 한국말로 가르친 경험이 거의 없어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습니다. 한국말을 더듬어가면서 겨우 마친 첫 한 시간의 수업은 너무 길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저를 군인이 아닌 선생님으로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눈빛이 힘이 되어 복지관의 다른 영어수업들을 찾아가며 준비를 했습니다. 다른 반에서는 다루지 않는 회화용어들, 회화 연습, 그리고 외국문화 등을 바탕으로 저만의 교육내용을 구성해가며 자신감을 쌓았고, 저만의 노하우를 터득했습니다.

 저는 수업시간 때는 최대한 영어로 수업합니다. 그리고 듣기/말하기 연습을 위해서 영어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어르신들께 미국과 필리핀의 문화와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해드리면 저에게는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때문에 수업 중에 제가 어르신들에게 가르치는 양보다 오히려 제가 배우는 양이 더 많은 채 수업을 마치는 때도 종종 있습니다. 한국과 필리핀, 미국의 문화 차이를 이야기하면서 웃고 놀라고 신기해하는 매 순간들이 수업시간을 값지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수업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20개월, 처음에는 많이 어려워했던 어르신 들이 복도에서 저와 마주치면 자신 있게 영어로 인사를 하고 대화를 청합니다. 처음에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던 저도 이제 편하게 수업을 진행하고 입담도 많이 늘었다고들 합니다.

 이 수업을 통해서 저와 어르신들이 서로를 도와가며 발전할 수 있어서 더더욱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변화와 성장을 매일 느끼고 볼 수 있어서 저 자신, 그리고 제 일에 대한 자부심이 안 생길수가 없었습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의 신뢰를 얻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외근업무에 같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외근업무 중에 독거노인들께 생필품, 옷, 쌀 등을 배달하는 업무가 많았습니다.

 어르신들께 주는 도움 그리고 돌아오는 따뜻한 감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저에게 과분한 보람을 느끼게 주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쌀가마를 들고 언덕위에 어르신들 집 달하던 날, 집밖에 먼지 쌓인 무언가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복지관에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선정해서 제공해 드리는 워커(성인용 보행기)였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기에 왜 안 쓰시는지 궁금했습니다. 외근업무를 나갈 때마다 유심히 관찰하고 어르신들께 여쭤보기도 했습니다.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쓰기 너무 어려워서 못 쓰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평지에는 유용한 워커지만, 해운대구 재송동처럼 언덕이 많은 곳에서는 쓰기 불편하다는 것 이었습니다. 어렵게 어르신들께 제공해드린 워커들이 도움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짐이 된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기계공학 전공인 저는 이 문제를 잊을 수 없었고, 워커디자인을 비롯한 거동불편에 대한 기술적인 해결책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귀국하기 전에 저는 미국에서 뇌졸중 재활 연구(post stroke rehabili-tation research)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정확한 연구 분야와는 살짝 다르지만, 뇌졸중 후유증으로 인한 거동불편과 그에 대한 재활연구는 몇 번 접한 분야였습니다.

 워커 사용에 대한 불편함을 목격한 이후에 집에 돌아와 시간 날 때마다 관련된 책과 논문들을 읽기 시작했고 신체학, 기계공학 등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습니다. 거동불편의 기술적 해결이라는 과제가 새롭고 신선한 동기로 부여되었고, 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아이디어를 연구하기 위해서 소집해제 후 박사과정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수 개월의 준비 끝에 박사과정 원서를 내게 되었고, 금년 3월에 미국의 미시건대학교 공과대학(University of Michigan)에서 4년 전액 장학금 (학비와 생활비)을 받고 박사과정에 합격했습니다. 커리어를 중단해놓고 군복무를 위해서 귀국한 저는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두 가지나 찾았습니다.

 남을 도우면서 생기는 자부심, 그리고 제가 즐기는 일로 인해 남을 도울 때 느끼는 열정. 모든 경험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주어진 책임에 대해서는 열심히 임하며 복무생활을 하다 보니 더 좋은 기회가 다가왔고,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을 때 더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보통의 한국 사람들과 다른 환경에서 지냈지만, 오늘의 저는 제 경험, 즉 그동안 제가 무엇을 하였고 그런 기회들을 통해 어떤 것을 배웠는지로 대부분 설명됩니다. 가능한 한 모든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사회에 도움을 줌으로서 비로소 제가 했던 경험들이 결실을 맺게 되고 그 최상의 결과는 제게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제게 사회복무는 정말 멋진 경험이었고 중요한 기회이자 저의 내면세계에서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요즘 복지관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께 많이 듣는 말입니다. “재우씨 소집해제 하지 마세요. 그냥 여기 계속 있어요.” 그러면, 저는 “그럴까요? 하긴 제가 소집해제하면 엑셀작업 누구한테 부탁하겠어요.”라고 농담 삼아 말합니다.

 복무 초반에는 전혀 생각할 수도 없었지만 소집해제를 앞둔 요즘은 마냥 기쁘지 만은 않습니다. 복무하면서 제가 태어난 나라에 대해서 잘 알게 됐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훨씬 더 당당하게 제 미래를 개척해 나가고 있기에, 복무를 끝내면 섭섭하기도 할 것입니다.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여러 경험을 받아들이고 좀 더 남을 도울 수 있는 기회들을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저는 저희 복지관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올 8월 저는 24개월의 사회복무를 끝마치고 소집해제하게 됩니다. 복무를 그만큼 열심히 했기에, 그만큼 보람 있게 해나갔기에, 소집해제를 앞두고 그다음 여정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22개월 동안 해운대 재송동 어진샘노인종합복지관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재우입니다. 그리고 소집해제 후 사회에 나가서도 영원한 사회복무요원일 것입니다.(konas)

김재우(어진샘노인종합복지관)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인쇄하기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19.7.20 토요일
핫클릭 뉴스
포토뉴스 더보기
깜짝뉴스 더보기
외교부, 차세대 전자여권 디자인 확정
2020년부터 발급될 예정인 차세대 전자여권의 디자인이 17일 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