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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③〕저는 사회복무요원입니다

사회복무를 통해 바뀌어 가는 나의 삶
Written by. 이환희   입력 : 2016-09-04 오전 10: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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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6년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 ‘우수상’ 글임. (편집자 주)

 저는 어려서부터 몸이 아주 왜소했습니다. 신체검사에서 4급을 받은 것도 체중미달 때문이었습니다. 깡마른 외모 때문에 모든 일에 자신이 없었고 초등학교 때는 덩치 큰 아이들에게 무시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왜소한 체구 때문에 잘하는 운동 하나 없었고, 음악이나 미술 쪽으로도 그다지 특별한 재능이 없었습니다. 머리도 좋지 않은 편이라 고등학교예전에 봉사를 다니던 유치원에서 만난 친구를 경희학교에서 다시 봤을 때 휠체어를 타고 다니던 그 친구는 혼자 힘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저 친구가 스스로 걷게 될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지 한참을 생각해 봤습니다.

 고등학교 때 성적은 항상 바닥이었고 대학도 요즘 젊은 세대가 말하는 ‘지잡대’(지방에 소재하는 잡스러운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진학하고 난 이후부터 갑자기 아버지의 회사가 어려워지기 시작 했습니다. 집안 사정이 어렵다 보니 부모님으로부터의 지원은 거의 기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매달 방세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학교 동기들은 쉬러 가는 공강 시간에 밥도 못 먹은 채로 교내근로를 하러 가야 했고 학교가 끝나고 나서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었습니다. 몸이 왜소한 탓에 일거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간신히 구한 일을 나가면 현장 아저씨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거기에다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나쁜 머리를 가지고 장학금까지 받아야 했으므로 일을 마친 후에도 힘든 몸을 이끌고 새벽까지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하루에 3~4시간 정도만 쪽잠을 자고 학교에 가야할 정도로 바쁜 일상을 살아 왔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한 덕분인지 높은 학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보이는 것은 나같이 ‘지잡대’에 다니는 학생은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괜찮은 회사에 원서조차 내밀어 보지 못하는 현실이었습니다.

 이렇게 몸도 마음도 피로에 절어 만성피로와 편두통만 얻은 채로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남은 방세를 메꾸기 위해 건설 현장을 전전하다가 2016년 2월 15일 도망치듯이 훈련소를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경주지역 특수학교인 경희학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제가 근무지를 경희학교로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많은 만류가 있었습니다. 행정보조 일을 하는 기관으로 가게 되면 편한 일을 할 수 있고 특히나 특수교육기관은 일이 힘들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가 경희학교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방학 때 처음으로 가본 제대로 된 봉사활동 때문이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는데, 친구 어머님이 하시는 통합 어린이집에 봉사활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봉사시간을 핑계로 설렁설렁 시간만 때우던 이전의 봉사와는 달리 처음으로 제대로 된 봉사활동 이라는 것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봉사를 하면서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고 기왕에 해야 되는 2년 동안의 사회복무 라면 ‘다른 곳보다는 일이 힘들지라도 내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근무지를 선택하자’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경희학교에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총 5명의 지원자를 뽑는 경희학교는 다행히 다른 기관에 비하여 경쟁률이 낮았고 저는 바로 경희학교로 배치될 수 있었습니다.

 힘들었던 4주간의 훈련소 생활을 마친 후, 그간 쌓인 피로를 잠시 푼 뒤 설레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습니다. 솔직히 그때까지도 경희학교가 특수학교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고, 어디에 있는 어떤 학교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긴장된 마음으로 첫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출근 하자마자 사회복무요원을 담당하는 선생님으로부터 간략한 교육을 받은 후 바로 학급으로 배정되어 근무를 시작하였습니다.

 전에 봉사를 갔던 유치원에서도 나름 중증인 아이들을 맡았었는데 여기 학생들을 보니 깜짝 놀랄 정도로 심각한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배정된 반은 선생님들 사이 에서도 수업하는 것이 힘들다고 소문난 반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상태가 심한 학생들과 그동안 들어온 특수학교 사회복무가 힘들다는 소문 때문에 내가 잘 할 수 있을지에 걱정과 의구심이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주로 맡은 일은 배변처리가 어려운 학생들의 배변을 도와주거나 거동이 불편한 학생이 이동수업을 할 때 이동을 도와주고 뇌전증(간질)을 앓고 있는 학생이 발작을 일으킬 때를 대비하여 항상 옆에 같이 동행하여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학생들의 배변을 도와주는 일이 무척 비위가 상하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익숙해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손에 소변이나 대변이 조금 묻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의 강도가 세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학생들을 지켜보아야 하였으므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차츰 일에 적응이 되면서 부터는 긴장감 대신에 보람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장애가 없습니다. 몸이 좀 왜소하긴 하지만 그것이 장애는 아닙 니다. 그래서 그동안 장애란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생각해 볼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경희학교에서 사회복무를 하면서 지금까지 장애인을 그저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해 온 내 시각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불쌍한 사람들’ 이것이 그동안 내가 장애인에게 가져온 시각의 전부였습니다. 처음 근무를 시작했을 때는 학생들을 그저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장애인을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만 바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게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회 복무를 시작한 몇 달이 지난 지금 얻게 된 생각은 결국 장애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지적장애인들도 이곳에서의 교육으로 충분히 사회에 진출할 수 있고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문제는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었습니다. 또, 복무를 하면서 장애인들의 생활을 직접 보고 경험하다 보니 아직도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앞으로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의 인권이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사회의 인식도 바뀔 수 있도록 다양한 사회적 활동에 동참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에서 사회복무요원이라 하면 일단 ‘공익요원’이라는 말과 함께 부정적인 인식과 심하면 거의 경멸에 가까운 시선으로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회복무요원 근무지에서 직원들이 사회복무요원을 지칭할 때 ‘어이, 공익’ 혹은 ‘어이, 아무개군’이라 하기도 하고, 간혹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심하게는 ‘어이, 똥방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저는 평소에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이러한 것을 알고 있었기에 처음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을 때는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복무를 시작하니 그런 걱정은 기우(杞憂)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복무하는 곳은 학교라서 그런지 우리 사회복무요원들에게도 모두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앞서 소개했듯 저는 정말 평범하다 못해 보잘 것 없는 대학생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고등학생이었고, 가끔씩 교수님을 실수로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도 있는, 일방적으로 수업을 듣기만 하는 것이 익숙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선생님이란 소리를 듣게 되니 어색하기도 하고 그 호칭의 무게감이 부담스럽게 다가오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비록 진짜 교사가 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아이들을 위해 서 일하고 교육의 현장에서 일한다는 사실에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듯 했습니다. 비록 내 의지가 아니라 국가의 부름이라는 명목 하에 타의로 이 학교에 온 것이지만, 고작 십오만 원 정도밖에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면서도 저를 이토록 열심히 일하게 하는 원동력은 애국심이나 사회공익을 위한 헌신 같은 것이 아닌 그저 “선생님”이라는 이 한마디가 아닌가 싶습니다. 나를 선생님이라 불러 주는 이 아이들을 위해서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훈련소에서는 그렇게 안 가던 시간이 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된 이후 쏜살같이 흘러 벌써 제가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한 지도 석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저와 비슷한 시기에 현역으로 입대한 친구들이 하나 둘 백일휴가를 나오는 것을 보니 저도 군대로 치자면 이등병에서 일병으로 넘어가는 시기쯤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아직 복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지만 그동안 많은 일을 경험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항상 매사에 비관적이었고 바쁜 일상의 피로감에 절어있던 제 자신도 복무를 하면서 점점 긍정적인 변화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비록 대학 1학년 때의 힘들었던 삶의 후유증으로 얻은 만성피로와 편두통은 여전히 저를 괴롭히고 있지만,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다는 증거이자 훈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적으로 많은 성숙을 하고 육체적으로도 그동안 저에게 가장 큰걸림돌이 되었던 왜소한 몸이라는 콤플렉스도 사회복무요원만의 장점인 퇴근 후 시간을 이용해 꾸준한 운동으로 극복할 예정입니다. 그래서,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육체를 가진 건장한 대한민국의 남자로 태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앞으로 남은 2년간의 사회복무요원의 생활은 저의 이 인생 마라톤에서 시원한 바람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복무를 마치게 되는 2년 후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보람찬 사회복무가 되도록 더욱 최선을 다하겠습니다.(konas)

이환희(경주경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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