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기획/특집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2016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⑦〕행복을 나르는 우리 친구

Written by. 김영현   입력 : 2016-09-05 오후 1:24:58
공유:
소셜댓글 : 0
twitter facebook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6년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 ‘입선’ 글임. (편집자 주)

 코엑스(COEX), 무역센터(WTC), 즐비한 초고층 빌딩들, 그 외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본사가 밀집한 이 곳. 가히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삼성역의 사회복무요원으로 배정받았다

 막막한 게 사실이었다. 역무실은 내 인생 23년 동안 한 번도 발을 디뎌본 적 없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천만 시민의 발이 되어주는 서울메트로가, 내 일상의 당연한 한 부분으로만 존재하고 있었지 지하철 사회복무요원이나 역무원이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얼마나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인식이 180도 달라졌다. 근무지 특성상 야간근무가 존재하는 우리는 밤낮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그 예로 역무실에 방문하는 민원인의 민원(유실물 찾기, 교통카드 에러, T-머니 서비스)을 척척 해결하고, 승객의 안전을 위해 승강장, 게이트, 역사(驛舍) 시설물들을 매일 점검하고, CCTV 감시, 응급환자 대처, 시각장애인 안내, 휠체어 리프트 케어 등등, 사회복무요원이 단지 2년의 대체복무를 위해 그저 복무기간을 허송세월 보내는 잉여자원이 아닌, 해당 복무기관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구성원으로서의 큰 역할을 맡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과 재난·안전·관리 분야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자긍심, 복무기관에 대한 소속감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지하철 사회복무요원은 야간근무가 있다. 모든 열차가 운행 종료될 때에 우리 역에는 주박열차(삼성역이 종착역인 열차)가 도착하는데, 새벽 한 시가 조금 넘는 이 시간에는 열차 내에 남아있는 승객들을 안전하게 밖으로 귀가시키는 업무를 한다. 때는 초겨울은 되었을 작년 어느 날. 그 날도 나는 주박열차를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순찰하고 역무실에 복귀했다. 유독 취객들이 많고 헤어진 남녀가 싸우는 둥 아비규환의 날 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역무실에는 역무원들 이외에 이제 갓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내 또래의 아이가 앉아있었다. ‘이 친구는 아직 안 나갔네?’라고 생각했을 무렵 이 친구의 말투가 어눌하고 행동이 유치원생으로 보였다. 지적장애우 승객이 우리 역 주박열차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역무원들과 나는 “집이 어디니? 어디서 왔어?” 몇 가지를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OO교회에 가야 한다는 대답과 함께 연신 울먹이는 친구의 모습뿐 이였다. ‘교회가 집일까?’ 그때 친구가 메고 있는 가방이 보였고, “미안해, 형이 가방 좀 볼게.” 가방을 조심스레 뒤적이니 OO교회라는 공책과 몇 개의 연락처들이 보였다.

 희망을 품고 교회에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부모님 연락처로 보이는 번호로 걸어보아도 받지 않으셨다. ‘아뿔싸…’ 침착하자. “부역장님, 어떻게 할까요?” “일단 112에 신고하고 영현 씨가 잘 달래고 있어 봐” 그날따라 유독 취객들도 많았던 탓에 이 친구는 전적으로 내가 맡게 되었다. 일단 경찰에 인계를 위해 신고를 하였고 이제 이 친구를 달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친구야, 형이 집에 데려다줄 게 얌전히 있자!” 나는 사회복무요원이기 이전에 사범대학에 재학 중인 예비교사이다. 과거에 특수학생 지도에 관한 수많은 이론을 책으로 공부했다.

 그렇다. 책으로 ‘만’ 공부했다. 현재는 실전이다. 친구를 달래기 위해 이리 저리 여러 방법을 강구했다. “뭐 좋아해? 가위바위보 할까?”, “뚝! 여기는 얌전히 있어야 돼. 곧 집에 갈 거야” 선생님 마냥 다그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여러 방법 끝에 친구는 울음을 그치고 이내 웃으며 내 손을 꼭 잡은 채 놓아주질 않았다. “형아 쉬아.” “그래 형이랑 가자.” 말을 하면서도 옆에 수화기는 어디서 애타게 기다리고 계실 어머님께 걸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보호자분 되십니까? 삼성역 사회복무요원 김영현입니다.

 아드님을 저희가 보호하고 있습니다. 경찰에 신고는 했습니다. 저희가 경찰에 잘 인계하겠습니다.” 어머님과 연락이 닿았다. 어머님은 감사하다 하셨고, 경찰에 인계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지적장애우 동생과 나는 금세 형 동생 사이가 되어있었다. ‘이제 곧 헤어질 시간이 오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 두 분이 오셨다. 아쉽지만 금세 정든 동생을 떠나보낸다.

 동생은 가지 않으려 바닥에 주저앉아 떼를 쓰고 차장님과 나에게 손을 뻗어 울었다. “형아…! 아저씨…!” 역이 떠나갈 듯 울며 멀어져서 갔고, 나와 차장님은 집에 가는 거라며 조심히 가라고 동생을 떠나보냈다.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네요. 차장님. 저리도 순수한 친구가 또 있을 까요…?” “추워지는 겨울에 가끔 오는 친구야…” 비록 한 시간 남짓한 만남이었지만, 마음 한 켠이 뭉클했다. 마치 잠깐에 동생과의 만남이 나의 조금은 얼어붙은 지하철 근무를 사르르 녹이는 따뜻한 초겨울의 햇살일 수도, 나의 지친 어깨에 내려앉은 초겨울의 눈꽃이라 생각했다. 이번 겨울에 다시 동생을 마주치게 된다면 먼저 반갑게 말을 걸고 싶다. “OO아 또 왔어? 오늘은 형이랑 뭐 하고 놀까?”

 내가 근무하는 삼성역은 지역 특성상 외국인 민원 또한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평소 영어 실력이라곤 수능영어에 맞춰진 문법 위주 영어 뿐이였다. 현장은 실전이다. 훈련소를 수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당시, 역무실에 근무하며 민원업무를 보기 시작했을 때는 외국인이 문을 열고 역무실에 들어오는 동시에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조용히 딴짓을 하기 일쑤였고, 역사 순회 중에 지도를 심각하게 들여다보는 곤경에 빠진 외국인을 그냥 지나치기도 했다.

 얼마 전이었을까? 발매기를 통해 낯선 외국인의 간절한 도움의 목소리가 들렸고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Just a Moment”를 외쳐놓곤 호출한 장소로 뛰어간다. ‘이번엔 또 어떤 문제로 내 회화 실력이 늘어날까…?’ 주인공은 젊은 외국인이었다. “Can I exchange money?” 표를 사려는데 이 친구는 달러뿐이었다. 달러를 환전할 은행을 찾기도, 직접 어느 정도 사비로 환전하기에도 모호한 상황이였다. 젊은 친구를 우선 역무실로 데려오곤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주말에 환전할 곳은 명동에 즐비한 가판대나 인천공항 은행이라는 답밖에 낼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친구는 당장 명동까지 갈 차비도 없을뿐더러 강남구 삼성동에서 명동까지는 택시로도 꽤 요금이 나올 것이다. 나로선 한참 실망스러운 오답을 내어 외국인 나그네에게 전해주려던 순간, ‘공항…? 우리 삼성역에도 도심공항이 있지 않았는가?’ ‘유레카!’ 곧바로 도심공항 환전을 검색해보았고 역시나 도심공항 은행을 통해 주말에도 환전할 수 있었다. 또한 코엑스몰에 위치한 7 LuckCasino 카지노를 통해도 환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도출해 냈고, 기쁜 마음으로 정답을 내어 외국인 나그네에게 손짓, 발짓 동원하여 전달해 주었다.

 애쓰는 한국 친구를 보니 감동한 듯 그 나그네는 연신 “Thank you. Bro.”라며 어깨를 두드려주었고 악수를 몇 번이나 했다. 소나기처럼 지나갔던 스쳐 간 대화를 통해 젊은 외국인 친구는 주말동안 멋진 여행을 계속 할 수 있게 되었다.

 짧은 에피소드지만 이 외에도 수많은 외국인들과의 스쳐간 이야기를 통해 마치 목을 축이듯 영어 울렁증이 달아나게 되었고, 사회복무를 통해 영어 회화 실력이 늘어날 수 있다는 놀라움의 연속뿐 이였다. 또한 지금의 나는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듯 역사(驛舍)를 방랑하는 외국인에게 먼저 다가가 안내한다. “May I help you?”

 안전! 이상 무! 2016년 대한민국의 키워드는 ‘안전’이라 할 수 있다. 승객 안전을 위해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밤낮으로 노력하는 지하철 사회복무요원이 있기에 오늘도 열차는 달린다. 실제로 승객의 안전을 위해 CCTV 감시나 승강장 순회 등 직접적으로 손에 닿는 거리에 위치한 안전과 직결되어있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응급상황’이 벌어졌을 때 대처 또한 중요하다.

 우리는 사회복무요원 소양교육을 통해 근무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응급상황에 대한 대처를 숙지한다. 특히 응급상황이 많으면 1주에 한 번꼴로 생기는 지하철 환경이기에 귀 기울여 숙지했고, 실제로 근무 시 발생하는 응급상황에서 사회복무요원의 영향은 지대하다.

 출퇴근길 우리는 닭장 속에 걸어 들어간다. 열차 내가 냉방장치가 가동되어 쾌적한 환경을 지향하고 있다지만, 앞뒤로 밀려오는 불쾌한 기운은 지우기 힘들다. 또한, 혼잡도가 상당하고 단기간의 늘어난 이산화탄소는 빈혈 환자를 발생시키기에 적임이다.

 두려웠다. 언제 어디서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근무지이고, 또 내게 맡은 역할이 솔직히 쇠고랑을 찬듯 무거웠고 막중했다.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선 담담해야 했다. 첫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의 날이 아직도 뇌리가 박혀 강렬히 기억한다.

 열차 내에 응급환자였다. 항상 역무원에게 교육받는 상황이기에 능숙하게 행동해야 한다. 재빠르게 승강장에 도착했고, 응급환자로 인해 정차되어 있는 열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너무 늦게 도착한 건 아닐까…?’ 그러나 환자 위치 전달에 혼선이 있어, 열차 객실을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외쳤다. ‘응급환자 어디 계세요?’, ‘응급환자 어딥니까?’ 이윽고, 다른 승객의 부축을 받으며 쓰러져 있는 환자를 발견했다.

 침착하게 교육받은 대로 행동했다. 119에 신고를 하고, 환자가 의식이 있는지. 현재 나의 1년 남짓 근무 기간 동안 의식이 없어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한 적은 없지만, 지하철에서의 CPR을 통해 골든타임 내에 고비를 넘긴 소식들을 빈번하게 접하기 때문에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안전 의식을 고취해야 하고, 한시의 끈도 놓칠 수 없다.

 다행히 이 환자분은 의식이 있었고, 자신의 지병이 부정맥 환자라 답답한 상황에 자주 쓰러지신다고 하셨다. 오히려 나보다 환자분이 더 담담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환자분께 물 한잔 드리고 119에 인계를 하여 상황은 마무리하였지만, 이를 계기로 내가 이 복무기관에 구성원으로서 큰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을 확신시켜준 상황이었다.

 이 외에도 마지막 열차가 지나간 뒤에는, 영업 종료를 위해 셔터를 내리기도 하고 혹시 남아있는 승객이 있는지 역사 순찰을 하기도 한다. 이후 당직 근무를 하고 이른 새벽 4:40분쯤이 되어 셔터를 올리고 아침근무 준비를 하다 보면 역사 내에 역사 방송이 들려온다.

 ‘행복을 나르는 우리 친구 서울메트로, 항상 우리 곁에 함께 해요 서울 메트로’ 이제 우리는 더 나아가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시점이 아닐까 하며 생각한다. ‘행복을 나르는 사회복무요원, 항상 우리 곁에 함께하는 사회복무요원…’(konas)

김영현 (서울메트로 삼성역)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인쇄하기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19.7.16 화요일
핫클릭 뉴스
포토뉴스 더보기
깜짝뉴스 더보기
외교부, 차세대 전자여권 디자인 확정
2020년부터 발급될 예정인 차세대 전자여권의 디자인이 17일 심의..
세상사는 이야기 더보기
아빠, 아빠! 세영이 먹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