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기획/특집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2016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㉙〕복무지 밖에서 찾은 자부심

Written by. 임정섭   입력 : 2016-09-11 오후 8:07:52
공유:
소셜댓글 : 0
twitter facebook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6년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 ‘입선’ 글임. (편집자 주)

 지난, 2015년 7월 국방의 의무를 시작하기엔 다른 이들에 비해 조금 늦은 나이인 23살, 저는 생전 처음 받은 소집통지서를 말없이, 한참동안 보고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무공훈장을 받으신 군 간부 출신의 할아버지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을 이을 장교가 나와야 한다며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저희 집안의 아버지들은 각각 방위, 면제, 현역병사로 복무하셨고, 저희 사촌형 역시 현역병사로 복무하셨습니다. 저는 자연스레 초등학교 때는 막연하게 R.O.T.C에 지원하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후에 대학교에서 대기과학과에 진학한 저는 공군에 지원하여 기상장교로 복무하겠다는 당차고 야무진 꿈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운동을 하다가 다친 어깨가 문제가 되어 스무 살 신체검사 당시 4급 보충역 판정을 받고 가족들과 저는 그 꿈을 포기하기로 하였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4급 판정을 받은 저를 부러워했지만 저는 그 당시엔 제가 생각한 군복무의 방향과 많이 달라졌기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대학동기들이 군대를 갈 때도 차일피일 미루며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만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재학생입영원을 신청하였습니다. 1년 반이란 시간이 지나 훈련소를 다녀왔고 저는 대전광역시 서부교육지원청 소속 배울 초등학교에 행정지원 담당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직접 근무를 시작하기 전까지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인식은 부끄러운 것이었으며, 자부심을 가지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어떤 지인들은 제가 4급 판정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똥방위’라는 등의 비하발언을 하며 무시했고, 몇몇 여자동기들은 ‘나중에 사회복무요원 출신이란 것을 알면 결혼도 제대로 못하고 취업도 제대로 안 된다.’는 등의 무시를 은연중에 보여 기분이 나빴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 고정관념 때문에 처음 학교에 배정받고 복무하면서도 자부심을 갖고 일하지 못했으며, 그냥 내가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24개월이 최대한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 모든 태도와 마음가짐을 한번에 뒤엎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출근을 하지 않는 4월 16일 토요일 오후, 저는 오랜만에 여자친구도 보고 학교 친구들도 만나기 위해 부산행 KTX에 몸을 실었습니다. 오랜만에 내려가는 길이라 마음도 설레었고 창밖에 펼쳐지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풍경들도 신선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앞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제 앞좌석에 앉아있는 어떤 남성이 맞은편 좌석에 앉아있는 20대 여성을 지속적으로 무음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잠시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혹시 딸을 멀리서 찍고 있는 아버지는 아닐까?’라고 생각되어 확인을 할 때까지 상황을 지켜보려 했습니다. 심증으로는 모르는 사이의 여성을 몰래 촬영한다고 생각했으나, 혹여 딸을 찍고 있는 아버지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제발 아는 척을 했으면 좋겠다. 제발 기차를 내릴 때 아버지! 하며 같이 내렸으면 좋겠다...’라며 속으로 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 남성은 6번 정도의 촬영을 하고 인터넷에 그 사진을 올리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가 되었고 저는 계속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결국 기차는 부산에 도착했고 저는 미리 나가 그 다음의 일을 관찰해 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바랐던 방향과는 달리 그 두 사람은 아는 사이가 아닌 것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릿속에선 수백 번의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마음속에서 두 가지 생각이 맞서며 싸웠습니다. ‘저 여성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라는 마음과 ‘내 일이 아니니 그냥 지나가는 것이 낫다.’ 이 두가지 생각이 계속 머리를 돌고 심장은 더욱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성에게 이 일을 알렸다가 혹여나 내가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고 혹은 내가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오히려 나한테 물의를 일으켰다 하여 큰 해가 되지는 않을까? 그냥 지나갈까? 고민하였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제 마음을 굳게 먹게 한 것은 ‘난 사회복무요원이기 때문에 불의를 보면 나서야 한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제 여동생, 여자친구, 어머니 또 우리학교의 수많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범죄여부와 상관없이 이 여성에게 알리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진을 찍은 것은 사실이며 그 것이 성추행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사자가 기분이 나쁘면 최소한 지워달라고 요청할 수는 있으니까 말입니다.

 병무청 소양교육 일주일간 과정에서 ‘사회복무요원’이라는 명칭의 의미에 대해 배웠습니다. 현역 군인들은 군대에 복무하여 나라를 지키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사회에서 복무하며 나라를 지키는 것이기에, 사회의 약자를 보호하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의무가 있다.

 이것이 곧 사회복무요원이란 이름의 의미이니 자부심을 갖고 일하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당시에 교육 받았을 때는 ‘그런가 보다.’라며 넘겼지만, 그 상황에서 갑자기 그 말씀이 뇌리를 스쳤고, 오히려 나는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내 몸을 사리며 남 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더 먼저 나서고 더 먼저 뛰어드는 사람이 되는 게 옳은 것이구나!’라고 결심한 뒤 행동에 옮겼습니다.

 저는 곧바로 여성분에게 말을 걸어 “저. 혹시 저 남성분을 아십니까?” 여쭈며 기차에서 남성이 사진을 찍던 정황에 대해 차분히 설명해 드렸습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여성분께서 순간 온몸을 떠시며 공포에 빠져 있었고, 그 남성에게 다가가 사진을 보여 달라고 요구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남성이 오히려 “이거 남의 휴대폰을 보여 달라 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 아니오?” 라며 저희에게 큰소리로 따졌습니다. 저 역시 법에 관한 상식이 많지 않고 또 남성이 더 큰소리를 치는 상황이라 남성에게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되시면 경찰관을 불러서 이 일을 해결하시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묻자 그 남성이 제 팔을 치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이었지만 당황도 잠시, 빠른 속도로 쫓아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고, 그 남성은 도망을 치기위해 저를 밀치고 휴대폰 사진을 지우기에 우선 휴대폰을 확보하며 계속 몸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제가 해결할 수는 없는 부분이기에 곤란해 하던 중 다시 생각난 것이 훈련소와 병무청 소양교육당시에 구급법 시간에 배운 것이었습니다. 인명을 살리는 순간은 아니었지만, 신고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던 것이 바로 특정인을 지목하여 신고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남성을 잡고 있는 동시에 앞에 계신 아주머니 두 분을 지목하여 “앞에 계신 모자 쓴 아주머니, 철도 경찰을 불러주시고 분홍 잠바를 입은 아주머니는 역무원을 불러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렸고, 곧이어 빠르게 출동해 주신 철도경찰 분들에게 안내를 받아 서에 갔습니다. 아쉬운건지 다행인건지 그분이 촬영한 사진들은 특정 신체부위만을 촬영한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사진을 찍었기에 여성분이 원하는 처벌은 불가하여 삭제와 사과로 사건을 마무리 짓기로 하였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제가 그 남성을 경찰관에게 넘기는걸 지켜보고 계시던 시민들이 저를 칭찬해 주시고 대견하다 말씀해 주셨고, 무엇보다 피해 여성분이 몇 번이나 제게 고맙다고 말해 주셨을 때 안심과 동시에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또 경찰서에서 나올 때 철도경찰 분께서 ‘좋은 일한 거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한 거다.’라고 말씀해주셔서 제 행동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일화로 제 주변 친구들과 여자친구 역시 저를 굉장히 멋있다며 치켜세워 줬으며, 부모님도 굉장히 대견스럽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만약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지 않았다면, 정의가 실현되는데 일조했다는 뿌듯함과 사명감을 느낄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저도 남일 생각하듯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일을 그 짧은 시간동안 들었던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 덕분에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회를 지키는 일원으로서 그 누구보다 더 앞장서서 사회에 기여해야한다.’라는 생각이 그때 나의 행동의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또 단순히 사명감과 패기만으로 행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복무요원 소양교육 구급법 시간에 배운 신고요령을 익혔기 때문에 좀 더 안전하고, 신속히 대처 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런 교육들을 받지 못했다면 긴 시간 동안 역내에서 씨름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그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도 장담 못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회복무요원이었기에, 그에 상응하는 교육을 받았기에 내 삶의 마음가짐을 바꾼 정의로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전의 저는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나를 대할 때 자부심도 없었으며, 장교지원도 못해봤다는 생각에 올 초에 임관하는 친구들을 보며 부러워 하고 많이 힘들어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의 제 마음의 변화는 매우 큽니다. 첫 번째 변화는 학교에서도 미소보단 무표정으로 있던 일이 더 많았던 저는 이제 미소도 많이 짓고 학교에서 청소하시는 분들과 장애인 고용사업으로 오신 분들께 먼저 커피도 권하고 항상 저를 가르쳐주시는 주사님과 즐겁게 일하며 활기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변화는 병원, 모임 등 외부에서 직업을 물어볼 때 무시를 당할까봐 휴학생이라 얼버무리곤 했는데 이젠 항상 당당하게 사회복무요원이라 밝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오히려 많은 분들이 격려해 주시고 “고생이 많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 무료하다는 핑계로 퇴근하면 친구를 만나거나 잠을 자던 제가 자신감을 갖고 나니 매일 운동을 하고, 복학준비를 위해 퇴근 후에는 도서관을 찾아 영어와 전공 관련공부를 하며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있습니다.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자부심은 복무기관 내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저처럼 외부에서 발생한 상황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퇴근이후, 복무기관 밖에서도 사회복무요원이란 생각을 잊지 않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들을 많은 이들이 경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konas)

임정섭(대전광역시 서부교육지원청, 배울초등학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인쇄하기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19.3.19 화요일
핫클릭 뉴스
포토뉴스 더보기
깜짝뉴스 더보기
외교부, 차세대 전자여권 디자인 확정
2020년부터 발급될 예정인 차세대 전자여권의 디자인이 17일 심의..
세상사는 이야기 더보기
아빠, 아빠! 세영이 먹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