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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체험 수기⑱] 씩씩이

Written by. 지준교   입력 : 2017-09-08 오후 4: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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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자원 병역이행 병사 군생활 수기」 ‘질병치료’ 부문 최우수 당선작이며, 자원입대한 병사들의 계급은 체험수기 응모 당시의 계급임(편집자 주)

 “씩씩아, 남자는 힘이 좋아야해 운동 열심히 해라.” 내가 어렸을 적에 나를 항상 씩씩이라 부르셨던 아버지는 남자가 힘이 있어야 사랑하는 가족도 소중한 내 몸도 지킬 수 있다며 운동을 강조하셨다. 매일 아침마다 부대로 뛰어서 출근을 하거나 수영장을 가셨던 아버지는 평생 꿈이었던 육군 항공조종사로 군 복무 중 큰 사고로 전역 한 지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 날의 일은 나에게도 큰 사건이었다. 육군 준위로 군 복무를 하고 계셨던 아버지는 늘 일찍 일어나 아침 4시가 되면 출근 준비를 하셨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어머니의 배웅 소리를 들으며 몇 번씩 잠에서 깬 기억이 난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버지는 그렇게 출근을 하시고 보이지 않았다. 어렸던 나는 그러한 상황이 당연한 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부터 전화기가 바쁘게 울리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적이 있었다. 거실로 나갔더니 전화를 받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는데 얼마 뒤에 얼굴이 하얘져서 다급하게 나가는 것을 보고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었다. 걱정 속에서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왔을 때도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반나절이 훨씬 지나고 나서야 아버지가 훈련 중 척추를 다쳐 하반신을 전혀 못 움직이는 상태라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는 아버지 병간호를 하러 병원에서 생활하셨고 나와 여동생은 친척들의 손에 맡겨졌다. 엄격하게 우리를 관리하셨던 아버지가 안 계신 상황에서 나는 점점 편한 것만 골라서 하려고 했고. 우리 남매를 마냥 좋게 해주고 싶었던 친척분 들은 먹고 싶을 때 먹고 놀고 싶을 때 놀게 해주셨다. 엄격했던 부모님을 벗어나 편안한 생활을 하니 성적은 점점 떨어졌고 한 달 만에 살이 20kg이나 불어났다.
 
 아마 그때부터 난 뚱뚱한 사람의 인생을 살았던 것 같다. 맞는 옷이 없어 항상 큰 치수를 찾고 누가 봐도 뚱뚱하다는 이미지가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 사고가 있고 난 후 아버지를 본 것은 한 달 뒤였다. 건강했던 아버지는 병상에 무기력하게 누워있었고 통나무처럼 굵었던 팔뚝은 많이 얇아져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보였다. 화장실조차 편하게 갈 수 없어 수염이 듬성듬성 난 아버지는 내가 알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약해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숙연해졌던 우리 남매는 막상 눈으로 본 아버지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누워있는 아버지에게 괜찮냐는 말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멀뚱멀뚱하게 서 있었는데 “우리 씩씩이 왜 이렇게 살이 쪘어?” 라고 웃으며 묻는 아버지의 질문이 적막을 깼다. 살이 쪘다고 많이 혼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아서 당황도 했었고 무섭기만 했던 아버지가 다정하게 말을 거니 낯설기도 했었다.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고 병문안 시간이 마무리되어 갈 때쯤 우리 남매는 아버지가 얘기 중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 병실은 슬픈 분위기가 되었고 우리 가족 다 같이 힘내자면서 손을 잡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에 아버지는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의사들이 식물인간 판정을 내렸었는데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하던 터라 몸 상태가 좋았었고 하늘이 도와 기적처럼 회복이 시작되었다.

 또 아버지는 15년 가까이 군 복무를 하셨던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유공자 자격을 인정받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 국군수도병원으로 병실을 옮기고 그 후 1년 정도 투병생활을 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다. 집으로 오신 아버지는 어머니가 일을 나가시는 바람에 성적이 떨어진 우리 남매의 교육을 맡게 되었다.

 예상 못 했던 사고로 예정보다 빠르게 전역을 했던 탓에 아버지는 우리에게 기대를 거는 마음이 커졌고 조금 더 엄격하게 하며, 우리가 힘들어하면 다그치기에 바쁘셨다. 병원에 있을 때 참 보고 싶었던 아버지였는데 점점 더 우리를 힘들게 하고 억압하려고 하니 아버지가 미워졌다.

 사춘기였던 나는 점점 더 삐뚤어졌고 급기야 아버지와 관계는 필요한 말이 아니면 대화를 나누지 않는 정도가 되었다. 그런 상황에 난 스트레스를 먹을 것으로 풀어 살은 점점 더 찌기 시작했고 그런 모습을 본 아버지는 화를 내셨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대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아버지와의 사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기숙 생활을 하며 대학교에 다녔는데 또 한 번 아버지의 억압과 규제에서 풀려났다는 생각에 나태한 생활을 계속했다. 결과적으로는 체중이 계속 불어나 120kg의 고도비만의 몸을 가지게 되었다.

 심각성을 못 느끼고 있을 때쯤에 입영통지서가 왔다. 26사단 신병교육대로 2월 16일에 입대를 하라는 통지서였다. 보통 또래들은 입대에 대해서 막막해하고 가기 싫어서 몸부림을 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군인이었기 때문에 군대에 가서 배울 수 있는 많은 것과 자기성찰을 할 수 있는 시간, 나라를 지키는 사람의 중요함을 항상 들으면서 컸다. 그래서 군대는 한 번 꼭 가봐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부감 없이 입대 결정을 할 수 있었다.

 입영일 날 부모님과 여자친구의 눈물을 뒤로하며 담담하게 거수경례를 하고 입대를 했다. 들어가서 며칠 뒤 훈련을 받기 전 현역적합 신체검사를 했는데 이게 웬일 현역 부적합 판정이 나와 버린 것이다. 병무청 신체검사를 받을 때는 3급이었지만 입대하기 전 살이 너무 쪄 BMI 지수가 너무 높게 나오는 바람에 현역 부적합 판정을 받아 일주일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훈련소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때는 참 지루하고 나가면 할 것이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그렇게 쫓겨나니 나 자신이 너무 창피했고 아무것도 못할 거 같은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찾아왔다. 병무청에 가서도 재검사를 하니 신체등급이 4급으로 나와 꼼짝없이 사회복무요원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말은 괜찮다고 하셨지만 군인 집안 장남이 살이 쪄서 현역 근무를 못하고 사회복지 근무를 하는 것을 좋아 하실리 없었다. 한 번은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아버지가 불러서 얘기를 하자고 했다. 나는 또 혼나겠구나 생각을 하며 거실로 따라 나갔는데 의외로 아버지가 자신의 힘들었던 시절을 얘기해주며 끝에 “씩씩아 네가 뭘 하든 응원하겠다”라는 말을 하셨다.

 거의 5년 만에 들은 씩씩이란 단어에 순간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중학교 시절 이후로 나는 아버지가 무서워 항상 피해 다니고 늘 부정적으로 바라봤었다. 대화는 항상 혼이 나거나 필요한 대화가 아니면 하지 않았었다. 그랬던 아버지가 먼저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었다. 씩씩이라는 단어에 잊고 있었던 추억들이 생각났고 강했던 아버지와 수척해진 아버지가 겹쳐서 보였다. 내 지난 과오가 생각나면서 아버지께 죄송한 감정이 들었다.

 말 한마디 하는 것은 10초도 걸리지 않지만 그 한마디에 누군가는 자신감을 얻을 수도 있고 가슴속에 비수가 되어 10년을 가고 평생을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철없던 시절 내가 했던 불평불만들을 아버지는 다 기억하고 계셨을 것이다. 몸을 다쳐 활동이 제한되어 꿈을 일찍 포기해야만 했던 자신의 삶을 경험 삼아 아들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했던 얘기가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전해져 점점 비뚤어져만 가는 아들을 보는 게 힘들었었고 속으로 고민을 많이 하셨을 거란 사실에 눈물이 났다.

 난 얘기를 듣고 방으로 들어가 인터넷으로 군 복무 신체등급 기준을 찾아보았다. 그 당시 나는 BMI 지수가 38이었다. 현역 등급인 3급은 33이하가 되어야 했는데 내 기준으로 살을 20kg 가량 빼야 하는 수치였다. 처음에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무작정 달리기를 했다. 하지만 무거운 몸을 감당 못한 내 발목과 무릎이 아프다며 심한 통증을 일으켰고 결국엔 난 일주일 동안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런 고민을 아버지에게 말을 하니 “옛날처럼 나랑 같이 아침에 등산을 가자”라고 하셨다. 처음엔 모든 게 힘들었다.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는 것부터 시작해서 동네 조그만 동산 올라가는 것도 숨이 벅차서 한참을 걸려 올라갔다. 정말 힘들어서 도저히 못 걸을 때에는 ‘이런 것도 해내지 못한다면 내가 나중에 무엇을 할 수 있겠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악착같이 매달렸다. 등산을 하며 아버지와의 관계도 많이 좋아졌다. 소소한 일상 얘기도 나누게 되었고 아버지도 인생의 선배로서 내게 조언을 해줄 때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 부자는 잠겨있던 관계의 자물쇠를 합을 맞추어 하나씩 풀어가고 있었다.

 아버지와 등산을 한지 3개월이 되었을 때 나는 결국에 체중감량에 성공을 했고 병무청에 가서 당당하게 현역 등급을 받고 5월 2일에 논산훈련소로 두 번째 입대를 했다. 입영 심사대로 넘어가기 전 거수경례를 하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잘 가라며 손을 흔드는 것을 봤는데 울고 싶은 걸 참는다고 웃어 보이려다가 입은 웃고 있는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이상한 표정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줬던 기억이 난다.

 논산훈련소에 가서도 신체등급 심사를 했다. 이번에는 당당하게 현역 적합 판정을 받아서 안심한 상태로 대기하고 있는데 옆에 심하게 마르고 심하게 뚱뚱한 무리들이 보였다. 첫 번째 입대할 때의 나처럼 BMI 지수로 현역부적합 판정을 받은 친구들이었다. 3개월 전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반가운 기분도 들고 그 당시에 나의 기분을 떠올리며 그 친구들의 기분을 상상해보기도 했었다.

 잠시 뒤에 무리들이 조교의 인솔에 따라 버스를 타고 떠나갔고 나는 6주간의 교육훈련에 들어가게 되었다. 힘이 들때는 아버지와 같이 등산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내가 여기를 얼마나 힘들게 왔는데’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했다. 그렇게 좋은 성적으로 훈련을 수료했다. 수료할 때 부모님이 오셨다. 고작 한 달 남짓 못 봤을 뿐인데 느낌이 너무 달랐다.

 결국엔 내가 해냈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알고 날 흐뭇하게 바라봐 주시는 부모님의 눈빛이 예전에 나태한 인생을 살 때 날 보는 눈빛과는 너무 달랐다. 내가 첫 번째 입대에서 실패하고 힘들어할 때 만약 아버지가 나에게 먼저 말을 안 걸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지금 나는 여전히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못 벗어나 신세한탄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입대 한 지 13개월이 지났지만 자원입대를 한 것에 후회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자원입대했다는 사실에 전우들이 놀라며 대단하다고 하지만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켜낸 선배 전우들이 했던 일들을 하는 것뿐이니까.

 나중에는 지금 크고 있는 청년들이 우리 일을 대신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금 맡은 바 최선을 다 하는 게 휴전국가에서 지내고 있는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하기에, 체중감량을 해서 자원입대한 것이 해야만 하는 일이었지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대에 처음 배치받았을 때 나는 22년간 몸에 적응되었던 말투나 습관을 버리고 모르는 작업을 해야만 했기에 어려움이 많았었다.

 그렇게 선임병들과 간부들에게 혼나고 위로받으며 13개월이 지나갔다.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입대했지만 다를 거 없는 군 생활을 해왔다. 군에 있는 동안 부모님 말씀처럼 배운 것이 많다. 사람을 마주쳐야만 하는 군대 안에서 서툴렀던 인간관계에도 자신감이 생겼고 들어오는 후임들에게 모르는 것을 알려주며 나에 대한 책임감이 무엇인지 배웠다.

 군대는 대인기피증에 우울증 환자였던 고도비만 청년의 우울했던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혼자 이루어낸 결과는 절대로 아니다. 나는 밖에서 군대에 거부감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모든 일은 생각하기에 달렸으며 자신감을 가지고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자기 계발서에 나올 이 뻔한 말은 누구나 입으로는 할 수 있지만 행동으로는 누구나 할 수 없다. 목표를 이루는 순간이 얼마나 찬란한지 아는 사람으로서 당연하지만 실천하기 힘든 저 말을 꼭 기억하라고 전하고 싶다. 난 지금도 힘이 들면 살을 빼려고 노력했던 3개월과 훈련소에서 수료했을 때 날 바라보던 부모님의 눈빛을 떠올린다. 그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국직 합동부대 국군 심리전단 3중대본부 상병 지준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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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9.23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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