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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㉕] 사회복무는 꿈을 싣고

Written by. 김규민   입력 : 2017-09-23 오후 2:2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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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 공모에서 당선된 글임.(편집자 주)

무엇을 위해서?

 붉은 거리를 수놓은 단풍나무의 행렬이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해 자신의 손에 꽉 쥐고 있는 낙엽을 내어주고 겨울 준비를 할 무렵 저는 학점으로 빼곡하게 표기된 성적표를 받아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걱정했던 학점과 다르게 나온 결과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매번 이렇게 방학을 맞이하는 저는 대학가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대학생입니다.

 간호학을 전공하고 있는 저는 나름 준수한 성적으로 공부하고 있지만 이 대학생활이 마냥 행복하진 않습니다. 호기로운 각오와 뜻을 품고 있는 멋진 학생들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그 학생들과 같은 멋진 동기부여나 결심은 없습니다.

 그저 간호사로서 자리잡고 있는 친누나들을 따라 간호사가 되고 싶기도 하였고 당장 안정적으로 먹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현대 사회에 간호사는 높은 취업률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선택한 직업이니 원대한 꿈이나 뜻이 없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제 꿈의 본질이 아닌 단순히 앞으로 살아갈 생계를 위해 별 수 없이 하고 있었던 대학 공부였기 때문에 앞서 2년간 학업 공부를 하는 내내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그렇기에 준수한 학점에도 불구하고 크게 뿌듯하거나 보람찬 마음 또한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그 당시 지칠대로 지쳐버린 저에게 사회복무는 그저 2년동안 사회에서 편하게 근무할 수 있는 일종의 휴식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모교와의 두 번째 만남

 숨 가뿐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앞으로 2년동안 몸담을 근무지를 통보받게 되었습니다. 훈련소에 있을 때 학교에서 어떤 일들을 맡아 하면서 근무하게 될지에 대해 설명 들었던 터라 큰 고민이나 생각없이 통보지를 받아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제 이름 석자 옆에 무심하게 적혀있는 학교 이름은 다름 아닌 제가 어린 시절 친구들과 6년 동안 함께한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제가 졸업했던 초등학교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10년간 무한히 공전하는 시곗바늘처럼 쉼 없이, 어떻게 지나가는지조차 모르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잊혀지고 있던 모교의 모습이 다시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고 사진으로만 추억했던 모교와 재회하게 된다는 설렘과 곧 만나게 될 어린 후배들 앞에서 2년간 마주해야 할 모범적인 선배가 되어야 한다는 걱정이 공존하는 마음은 곧 싱숭생숭한 발걸음이 되어 어느새 저를 학교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에 왔을 때 교문 앞에서 저도 모르게 망설이고 말았습니다. 어렸을 적 그저 철없이 뛰어 놀기에 바빴던 학교 운동장에 큰 책임을 부여받은 사람으로서 당당히 들어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담당 선생님의 반가운 손짓은 어느새 저를 가르키고 있었고 그렇게 무언가에 홀리듯 따라 들어가게 된 교정은 익숙한 듯 낯선 환경이었습니다.

 학생 수가 확연하게 줄어서 한 학급에 다섯 내지 여섯명의 학생들이 넓은 교실 안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고 그렇게 가족처럼 아기자기하게 이어진 교실들 끝자락에는 저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있는 학습도움반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기합이 잔뜩 들어간 채 향한 학습 도움반에는 총 세명의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중 두명은 자신들의 학급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기에 비교적 큰 문제가 없어 일정 시간마다 도움반으로 공부를 하러오는 시간제 형식을 취하고 있었고, 나머지 한명은 지적장애 1급의 중증장애로서 도움반에 항상 상주하며 집중적으로 관리를 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바로 이 아이와 같이 생활하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설명을 듣고 저는 2년간 같이 지내게 될 제 첫 번째 후배이기도 한 아이와 인사라도 하며 면식을 가지고 싶었으나 제 마음과는 달리 그 아이는 지적장애를 포함한 복합적인 중증 장애를 앓고 있어 섭식, 배변은 물론 기본적인 발성마저 불가능한 상태라는 사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제 뇌리를 스치는 소리없는 아우성이 온 신경으로 전해져 절망감의 형태로 내뿜어져 나왔습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기 힘들었고 그 아이가 원하지 않는 결과물을 가져오면 도망가거나 거부하는 반응을 보여 곤란했던 경험도 있었습니다. 초반의 이 경험들은 저에게 있어 장애에 대한 두려움까지 형성되게 하였습니다.

 모교와의 두 번째 만남은 반가웠지만 장애를 앓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후배와의 첫 만남은 안타까움과 슬픈 감정이 섞인 표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토록 어려움을 겪는 제 첫 번째 후배인 이 아이를 위해 과연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큰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편견을 허문 진심의 힘

 아이의 먹성을 대변하듯 물밀려 나오는 용변을 치우거나 수저 사용을 전혀 하지 못해 인도 사람처럼 손으로 섭식을 하는 아이의 식사 보조, 야외활동 도중 혹시 모를 돌발상황에 대처하여 신경을 항상 곤두세우고 임하는 이 일들은 결코 능동적으로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중 특히 용변 처리를 하는 일이 기억에 많이 남을 정도로 까다로웠습니다.

 하루는 그 친구가 야외 활동을 하다가 갑자기 제게로 와서 제 손을 끌며 배를 부여잡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직감했습니다. ‘이 친구 대변이 급하구나!’ 하지만 화장실은 족히 50미터는 떨어져 있었습니다. 점점 더 큰 힘으로 저를 끌어당기는 그 급박한 상황에서 생각 할 틈 없이 아이를 안고 화장실로 최대한 빠르게 뛰어 갔습니다.

 하지만 화장실에 도착한 뒤에는 이미 사건이 터지고 난 직후였습니다. 이는 제가 야외활동 전 화장실을 미리 보내지 않았던 실수로 인해 비롯된 상황이었고 이런 상황이 처음이었던 저는 그 자리에서 석고상처럼 굳어버렸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릿속에 담당 선생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한창 바쁘실 선생님 모습에 차마 바로 연락을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상황을 빨리 해결해야했던 저는 눈을 질끈 감으며 도움이 필요하다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선생님은 연락을 받으시자마자 곧장 옷을 챙겨서 달려와 주셨고 충고와 잔소리 대신 “그 누구도 하기 힘든 굳은 일 한다며 고생이 많아요”라고 따뜻한 걱정과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온정과 진심은 저에게 큰 귀감이 되었고 앞으로는 선생님이 저에게 보여주셨던 모습처럼 진정으로 아이에게 다가가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피하려고만 했던 아이의 눈빛을 조용히 응시하고, 손짓, 발짓, 몸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비로소 아이의 어여쁜 미소가 보이고 힘찬 손동작 하나하나에 피력되는 목소리보다 값진 그의 몸짓이 온기를 타고 전해져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저는 장애인에 대한 두려움이 눈 녹듯 사라지게 되었고 그것이 제가 가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법을 배운 지금은 그토록 어렵게만 느껴졌던 일들도 척척 해내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가끔 아이가 용변을 보지 않는 날이면 ‘오늘은 힘든 일을 하지 않겠구나’ 하는 마음 대신 오히려 ‘혹시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것일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먼저 듭니다. 이 소소한 변화들을 통해 사회복무를 하면서 제가 점진적인 성장과 변화를 이뤄가고 있음을 체감합니다.
 
 장애가 있는 것이 우리가 그들을 피해야 할 이유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먼저 그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그들이 가진 그 무엇보다 따스한 온기와 진심이 전해져 올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 그들의 마음만큼 따뜻한 그들의 웅장한 미래를 위해 발 벗고 나서서 함께 노력 할 것입니다.

지리산 정기로 뻗어가는 당찬 발걸음

 우리 학교에서는 한 학기에 한번씩 주말에 학생들과 그들의 부모님 그리고 모든 교직원들이 우리나라, 우리 고장의 자연을 체험하고 청렴을 다짐하는 의미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고된 평일 끝에 찾아오는 꿀과도 같은 주말이었기에 조금은 쉬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선생님들과 후배들이 모두 함께하는 중요한 자리였기에 저도 같이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등반해야 했던 산은 그 유명한 지리산 노고단 고개입니다. 비록 정리가 잘 되어있는 등산로였지만 몸과 마음이 미처 다 성장하지 못한 장애 아동에게 결코 단조로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평소 함께 걷는 운동을 많이 했으나 지리산 고개는 만만한 곳이 아니었는지 아이는 처음엔 잘 걷는 듯 보였지만 걸어 오를수록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더 높은 경사에 이내 심신이 지쳐 표정이 굳어졌고 걸음걸이마저 서서히 휘청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휴식이 필요하다 판단하였고 결국 가는 길에 아이를 멈춰 세우고 다독이면서 물을 주어 수분을 보충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숨을 돌리던 찰나 제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합니다. “쭉쭉 더 올라가! 잘 하고 있다!”, “조금만 더 힘내자!” 그것은 바로 짧았던 휴식시간의 정적을 깨는 격려의 목소리였습니다.

 선생님들, 부모님, 먼저 올라가고 있던 그의 친구들, 그리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까지 그 누구 한명도 빠지지 않고 작지만 당찬 아이의 힘찬 발걸음을 위해 기꺼이 응원을 보내주고 있었습니다. 격려의 목소리에 힘을 얻었는지 그는 이내 다시 벌떡 일어서 정상을 향한 활기찬 도약을 시작했습니다. 정상이 다가올수록 시원한 바람이 그 아이의 도전을 응원하기라도 하듯 신나게 불어왔습니다. 이윽고 정렬해 있던 나뭇길이 탁 트이기 시작한 정점에 들어서자 아름다운 경치가 두 눈에 또렷하게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결국 우리는 모두 정상의 고지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그는 결코 외롭거나 힘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장애를 앓는 친구를 위해 같이 올라와주고 응원해준 든든한 그의 친구들이자 저의 자랑스러운 후배들, 그리고 그의 도전을 응원해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정복한 정상의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지리산 자락의 뿌듯한 정기의 향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이 등반의 여정을 돌이켜 보면 마치 제가 1년이 넘는 시간동안 몸담았던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 막연하고 까마득한 두려움의 안개가 눈 앞에 서려 앞으로 올라가야 할 길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의 파도가 몰려오지만 거친 파도가 지난 뒤 고개를 드는 찬란한 지평선의 모습처럼 힘든 여정을 헤쳐 올라갈수록 들려오는 아름다운 수풀림의 속삭임과 같은 선생님들의 응원과 후배들의 노력하는 모습의 힘에 이끌려 어느새 저를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정상의 고지를 향해 당당한 발걸음을 내딛는 저는 머지않아 밟게 될 정상에서 그 어떠한 삼라만상과도 견줄만한 황홀경을 내려보게 되리라 믿습니다. 또한 그토록 아름다운 경치가 미래에 있을 제 모습의 표상이 될 것이라 굳게 다짐하고 더 넓은 곳으로 힘찬 발걸음을 뗄 것이라 확신합니다.

후배들의 선생님, 선배의 길잡이

 모두 아시다시피 저는 이 학교의 사회복무요원입니다. 두 번 말하면 입이 아플만한 명백한 사실이지만 감사하게도 제 모교의 모든 후배들과 선생님들은 저를 지칭하여 ‘선생님’이라 부릅니다. 사실 학교에서 영향력 있는 정규직 교직원이나 행정직 직원도 아닌 저는 그저 학교에 ‘그리 길지 않은 2년동안 잠깐 있다 갈 사람으로만 생각되겠지’ 했지만 그것은 곧 혼자만의 큰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제가 처음 이 학교에 왔던 그날부터 학교에 있는 모든 식구들이 저를 어엿한 학교의 일원으로 여겨주셨습니다.

 이 작은 학교에 큰 힘을 불어넣어주고 있는 제 후배들도 제가 그들 곁을 지나갈 때 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라며 꼭 인사를 합니다. 그 기특한 모습을 보면 가끔 제가 이 학교를 다녔던 시절의 생각이 떠오르곤 합니다. 당시에 저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지 않았고 친구와 심하게 장난을 치거나 자주 싸우기도 하였던 그저 철부지 소년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랬던 제 모습과는 달리 제 후배들은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 친구를 기꺼이 나서서 도와주는 모범을 보여주고 학교에서 진행하는 꿈 말하기 대회, 어울림 마당 행사와 같은 중요한 프로그램이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자랑스러운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자신의 재능과 끼를 마음껏 발산하여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제가 마냥 ‘철 없이 놀기만 했을 때’였던 ‘그들의 아름다운 지금’을 보면 저는 제 스스로를 반성하며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제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주는 이토록 자랑스럽고 어여쁜 후배들을 본받아 훗날 이들에게 당당하고 멋진 선배로 인정받고 후배들이 나아가게 될 길을 빛내기 위해 노력하는 선배가 되리라 다짐합니다.

꿈을 일깨워 준 사회복무

 사회복무를 만나기 전 약 22년의 시간동안 저는 남이 가는 곳을 그저 따라 움직일 뿐인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오로지 남들처럼 공부하고, 남들이 가는 대학교에 들어가고, 좋은 곳에 취업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간호학 공부를 하며 취업을 위한 전쟁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저를 보았고 그런 저에게 사회복무는 마음 한 켠에 설치된 탈출구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사회복무는 마치 저에게 “너는 할 수 있어!”라고 외치듯 많은 소중한 인연들과 자신감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사회복무를 시작한지 1년이 넘은 지금 제 마음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22년간 ‘해야만 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저는 ‘하고자 하는’ 삶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달았습니다. 오로지 취업을 위해 해야만 했던 간호학 공부도 제가 모교에서 사회복무를 하며 돌보고 있는 제 후배와 같이 장애로 인해 큰 어려움을 앓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버팀목이 되고자 하는 큰 꿈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힘을 전하고 성실하게 봉사하는 해바라기 같은 간호사로 성장하기 위해 헌신의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이제 제 나이 스물 셋,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저는 제가 살아갈 무궁무진한 인생에서 아직 따스한 봄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1년여의 사회복무를 하며 만난 선생님들과 제 어여쁜 후배들은 꽃 피우지 못한 제가 머물고 있는 메마른 봄에 필요했던 씨앗과 거름, 그리고 든든한 양분이 되어주었습니다.

 벌써부터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앞으로 남은 8개월의 시간동안 저는 이 소중한 씨앗을 꽃피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름답게 개화하게 될 이 꽃들을 필요로 하는 많은 이들에게 당당히 전해줄 수 있는 멋진 사회복무요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굳은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남은 복무에 열심히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회복무를 하면서 이 소중한 꿈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 자랑스러운 제 모교인 진성초등학교, 그리고 그곳에서 항상 노력하시는 선생님들과 제 후배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김규민 / 진주교육지원청 진성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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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8.21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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