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광복절 태극기 게양, 우리 집은 어땠나요?
지난 2월 9일 강원도 평창에서 개최한 제23회 평창 동계올림픽 입장 시 전 세계 93개 참가국 선수들은 언제나처럼 자국 상징 국기를 앞세우고 영하의 추운 날씨에 관계없이 흥겨운 춤사위와 함께 지구촌 최고의 축제인 올림픽 입장식에 참석했다. 찬사가 잇따랐다.
“역사상 국제평화 증진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한 대회”로 평가받는 평창 올림픽에서 세계 최강의 국력을 자랑하며 가장 많은 242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미국도,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과 인도도 성조기와 오성홍기 등을 앞세우고 입장했다. 참가국 중 동티모르, 에리트레아, 코소보 등 이름도 생소한 ‘나 홀로 선수단’이 참가한 초미니 국가도 단 하나의 국기아래 입장했다.
대한민국도 개최국이지만 하나의 기(旗)아래 뭉쳤다. 하지만 태극기는 없었다. 대신 이전까지 지속된 일촉즉발의 위기 국면이 급반전한 가운데 남북이 합의하고 국제사회의 지원과 인정아래 ‘하나의 민족’ 이란 명제 하 ‘한반도기’를 들고 남북 선수단이 한데 얼려 입장, 세계인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비록 입장식에서 대한민국 대표, 상징의 태극기는 볼 수 없었지만 이후 이어진 경기의 시상식 시상대 높이 올라선 태극기와 애국가를 들으며 우리 선수와 관중, 그리고 국민들은 모두 하나가 되기도 했다. 바로 우리의 국기, 태극기 아래서였다.
8월 15일은 제73주년 광복절이자 대한민국 정부수립 70주년을 기념하는 경축일이었다.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예년과는 또 다르게 진행된 행사의 국기게양식에서 독립운동가(하종진)의 후손(연예인, 박환희)이 나와 게양과 함께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낭독해 숙연함과 의미를 더하게 했다.
일제 36년의 잔혹한 식민통치 치하에서 파란만장한 순간을 겪으면서도 태극기는 민족과 함께 의연했다. 생살이 찢기고 모진 고문으로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도 독립선열의 ‘대한독립만세’ 외침과 태극기는 굽힘이 없었다.
아차산. 한번쯤은 보았을 법한 옛 고구려 선인들의 국토지킴 흔적이 깃들어 있는 광진구 아차산에 올라 그 시대의 보루들을 확인하다, 한강변에서 구리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언제나 등산객의 눈을 사로잡는 게 있다. 바로 구리시가 설치한 대형태극기가 바람을 타고 힘차게 펄럭이는 모습이다.
거기에 더해 구리시는 이번 광복절을 맞아 한강변 남구리 IC에 있는 높이 81.5m의 국기게양대에 13일부터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다. 8.15 광복절을 상징하는 81.5m의 높이로 건립한 게양대의 태극기다. 국민의 한사람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가슴 벅차고 생동하는 맥박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그런가 하면 6·25전쟁 남북분단의 현장 판문점으로 향하는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 게양된 태극기를 보는 느낌은 또 더 각별하다.
그러나 아직 우리 주위에는 경축일이나 현충일 등 국경일, 기념일에 태극기 게양이 소극적이거나 미온적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5일 아침, 필자는 필자가 사는 아파트의 태극기 게양실태를 확인해봤다. 전 날 공영방송에서도 광복절 날 태극기 게양을 독려하는 문자 방송이 있었고, 아파트 관리실에서도 여러 차례 권고 방송이 이어졌다. 서울 강동구의 16개동 2,938세대가 거주하는 이 아파트는 최저 24층에서 최고28층까지의 고층이다. 그런데 국기를 게양한 가구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전체 16개동 중 12개동을 오전 8시 20분부터 9시까지 둘러본 바에 의하면 가장 많이 게양한 동의 가호가 22가구, 대체적으로 일곱에서 아홉 가구 게양이 대부분이었다. 약 2000여 호 가구 중 116가구만이 태극기를 내걸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1개동은 전체가 한 가구도 게양이 안 돼 있어 1층을 면밀히 확인해 보니 태극기 게양대 홈 자체가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가하면 어떤 집엔 조기(弔旗)가 걸려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 곳 집에서는 필자가 바라보는 순간에 게양을 하고는 곧이어 게양한 태극기에 거수경례로 예(禮)를 표하는 정경도 목격하기도 했다.
‘국경일에 관한 법률’
제2조에 따르면 8월15일 광복절은 국경일로 태극기를 달아야 한다. 태극기 게양 방법은 ‘국경일 및 기념일’과 ‘조의를 표하는 날’로 구분되며, 광복절은 국경일이기에 ‘국경일 및 기념일’에 맞게 태극기를 걸어야 한다. 이에 깃봉과 깃면 사이를 떼지 않고 달아야 한다.
겨레와 함께 영욕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같이해 온 태극기. 1882년 8월 9일 박영효가 이끄는 조선의 사절단이 일본을 향하던 중 배 안에서 당시 조정이 대체적으로 정한 국기 도안 내용을 약간 고쳐 국기를 만들어 다음해인 1883년 3월 6일 왕명으로 태극과 4괘가 그려진 태극기를 국기로 정했다(국가기록원). 그리고 1949년 10월15일 오늘날의 국기제작법이 확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역사를 잊지 않고 간직해야할 소중한 태극기, 태극기 게양운동에 자발적 참여가 요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현오(수필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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