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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㉑ <입선> 꿈을 향해 달리는 기관사

"어릴 적 꿈 이루게 된 강력한 전환점이 되다"
Written by. 최재원   입력 : 2018-10-16 오후 4: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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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시작

 경영학과에서 재학 중이던 나는 또래 친구들보다는 다소 늦은 나이인 24살에 군 복무를 대신하여 사회복무를 시작했다. 사회복무요원은 훈련소에서 군사교육소집을 받은 후 2년간 근무하게 될 복무지를 선택하게 되는데, 복무지 목록을 받았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지하철역에서 근무할 수 있는 서울교통공사였다.

 어릴 적부터 기차와 전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기차와 전철을 좋아했던 나는 자라면서도 이상하게 기차나 전철을 탈 때면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기차와 전철은 내게 특별한 설렘을 주었다. 그런 이유로 지하철역을 근무지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하철역은 근무 특성상 주・야 교대근무를 해야 하고,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대응해야하기 때문에 많이 힘들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다른 근무지도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결국 나의 선택은 지하철역이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는 것은 보통의 군 생활 보다 일이 편한 편이고 자유롭다고 생각했기에 한 번 하는 복무를 편한 것만 찾으며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조금 힘들더라도 내가 정말 원하는 곳에서 근무하는 것이 훨씬 의미 있는 복무생활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1지망으로 서울교통공사에 지원했고 그곳에 선발되었다.

 근무 첫날, 서비스 안전 센터에 가서 담당자 분과 면담을 하고 내가 근무하게 될 지하철역을 배정 받았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내가 근무하게 될 지하철역은 지하철역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바쁘다고 알려진 환승역이자 종점역인 부평구청역'이었다. 아직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걱정이 밀려 왔다. 일이 힘들 것이라는 것은 예상했기에 그 부분은 걱정되지 않았지만, 과연 내가 그곳에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컸다. 걱정의 반대편에는 앞으로 부평구청역에서 내가 겪게 될 일들에 대한 설렘도 있었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전철에서 근무하게 된다는 것은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걱정이 설렘보다 약간 큰 상태였다. 그렇게 걱정과 설렘을 안고 나의 근무지로 첫 출근을 했다. 그때까지 부평구청역'에서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새로운 만남

 새로운 만남은 설렘 반 걱정 반이었다. 근무지에 도착해보니 그 곳의 역무원분들과 사회복무요원 선임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그분들은 나를 가족처럼 편하게 대해 주셨고 덕분에 나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나의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지하철역의 고객들을 만나는 것은 달랐다. 환승역이다 보니 수많은 유동인구가 있었고 길을 물어보는 고객도 정말 많았다. 근무 초기에는 나도 그 지역의 주변지리가 낯설었기 때문에 고객들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해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상황이 몇 번 있다 보니 누군가 내게 질문을 하려고만 해도 겁이 났었다. 고객들을 대응하는 것에서는 내가 근무 전 했던 걱정이 그대로 일어나는 것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여 매일 지도를 보며 주변지리를 익히고, 근처의 주요건물들을 외웠다. 노력을 하니 안 되는 것은 없었다. 이후 나는 고객들의 질문에 친절하게 안내해드릴 수 있었고 행여나 내가 모르는 장소에 대한 질문을 받더라도 바로 검색을 해서 쉬운 길을 찾아 설명해드리며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더 이상 고객을 만나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오히려 매일 새로운 고객을 만난다는 것이 매일 내게 설렘으로 다가왔다.

따뜻한 겨울

 유난히도 추웠던 올해 1월, 하루하루 설렘을 안고 근무하던 나에게 인상 깊은 사건이 일어났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근무를 서고 있을 때 길을 잃고 헤매고 계신 한 어르신을 발견했다. 어르신께서는 날씨가 추웠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복만 입고 추위에 떨고 계셨다. 나는 그런 어르신이 걱정 되어 서둘러 어르신께 다가가 목적지를 여쭤봤지만 어르신의 대답을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 분은 지적장애가 있어서 말을 잘 못하시는 분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도움을 드려야하는 상황이었고, 나는 어떻게 도움을 드려야할지 고민하던 중 어르신께서 입고 계신 환자복에 적힌 병원 이름을 발견했다. 지혜를 발휘해서 병원의 이름을 검색해보고 병원에 전화를 해서 어르신에 대한 설명을 드렸다. 다행히 병원을 통해 어르신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어르신은 그날 새벽에 혼자서 병원을 나와서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고, 병원 측에서는 경찰에 실종으로 신고를 한 상태였다고 한다. 내가 그 실종된 어르신을 찾은 것이었다.

 곧바로 경찰에 연락을 했고 경찰분이 우리 역에 와서 그 어르신을 만났다. 경찰관께서는 나에게 정말 큰일을 했다고 칭찬을 해주셨고 나는 정말 뿌듯함을 느꼈다. 곧이어 어르신의 가족들도 도착했고 그 어르신은 다시 가족들과 무사히 재회 할 수 있었다. 어르신의 가족들은 다행이라며 눈물을 흘렸고 그 모습을 보며 나 또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가족들은 나에게 큰 감사함을 표현하셨고 나는 잊을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이번 겨울은 어느 때보다도 추웠지만, 나의 마음의 계절은 따뜻한 봄과 같았다.

 사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 나는 현역이 아닌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한다는 것이 조금 부끄럽게 여겨질 때도 있었다. 내가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맡은 임무 자체에 만족감을 가지고 있었고 일에 대한 사명감도 가지고 있었지만 주변에서는 사회복무요원이라고 하면 편하게 군 생활을 하고 온다고 비아냥거렸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비아냥거림에 대해 당당하게 나서서 내가 하고 있는 일도 현역들의 군 생활만큼이나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며 현역보다 몸은 편하고 자유로울 진 몰라도 내 마음가짐만큼은 그들에게 뒤처지지 않는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은 나의 잘못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일이 있은 이후로 내가 맡고 있는 임무에 대한 만족감과 사명감이 더욱 커져, 이제는 누가 사회복무요원에 대해 비아냥거려도 그 비아냥거림에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내 의견을 충분히 표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현역으로 군 복무를 하는 사람들 보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내가 자유롭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사회복무요원은 현역들보다 더 일상적인 상황에서 국민들이 도움을 요하는 부분에 대해 도움을 주고 있다. 사회복무요원도 이 사회가 돌아가는데 꼭 필요한 요소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 대해 나는 이 일을 계기로 더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고,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내 인식 자체도 바뀌었고, 앞으로 다른 사람들의 인식도 바꾸기 위해 더 헌신적인 태도로 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새로운 도전

 내가 근무하는 곳이 종점역이다보니 운행을 마치고 나오는 기관사님들을 하루에도 여러 번 만난다. 나는 기관사님들을 만날 때 마다 전철에 대한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고 그때마다 기관사님께서는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그러다 보니 기관사님들과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인생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하루는 기관사님께서 운행을 시작하기 전 나와 함께 입고 되어있는 전동차에 들어가서 기관사실을 보여주셨다. 내가 직접 기관사실에 들어가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기관사님께서 시동을 켰고, 전동차는 출발역을 향해 달려갔다. 그 순간 전동차 엔진의 울림이 내 마음까지 전해졌고, 그 울림은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기관사라는 어릴 적 꿈이 넘쳐 나오도록 만들었다. 전동차가 출발역까지 들어오는 데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꿈이 넘쳐 나오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전동차에서 내리며 기관사님께 "저도 멋진 기관사가 되겠습니다!ˮ라고 다짐을 말했고 기관사님께서도 나의 꿈을 응원해주셨다.

 기관사가 되기 위해서는 철도대학을 나와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5년 만에 수능교재를 다시 펼쳤다. 그 긴 시간동안 수능 제도는 많이 바뀌었고 오랜만에 수능공부를 하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 꿈이 더 강했기에 나는 더 독하게 공부를 했다. 퇴근하면 바로 도서관에 달려가서
문이 닫히는 11시까지 공부를 했고, 근무지 휴무 날에는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공부만 했다. 근무지에서도 쉬는 시간마다 단어를 암기하며 자투리 시간마저도 수능공부에 전념했다. 수능 전 날 직원들과 사회복무요원 동료들의 응원을 받고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시험을 치렀다. 채점결과 내가 지금까지 봤던 시험 중에서 점수가 가장 높았고, 철도대학에 합격하기에 충분한 점수였다. 두 달 뒤, 대학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고 그 순간 지금까지 느낄 수 없었던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다. 나의 다음 목표는 철도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후 서울교통공사에 기관사로 들어오는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한 이 모든 도전의 시작은 사회복무를 처음 시작할 때 서울교통공사를 희망 근무지 1지망으로 썼던 것이다. 편한 근무지를 찾지 않고 정말 내가 뜻이 있는 방향으로 선택한 일이 이런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그 때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을 시작으로 하여 난 잊고 지냈던 기관사라는 꿈을 찾았고 지금도 꿈을 이루기 위해 계속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사회복무요원의 가장 큰 장점은 선택할 수 있는 근무지가 다양한 방면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맞는 근무지가 있다면 그 곳에서 근무하면서 자신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고, 아직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진로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복무하고 있는 사회복무요원들이, 그리고 앞으로 복무하게 될 미래의 사회복무요원들이 사회복무요원의 이러한 장점을 알게 되고 활용한다면 사회복무를 하는 시간이 단지 군생활을 대신하는 것이고, 소중한 청춘을 허비하는 시간이 아닌 자신의 꿈을 향해 다가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운이 좋게도 사회복무요원의 이러한 장점을 알지 못했음에도 내게 맞는 근무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내 꿈을 향해 달려간다.(konas)

서울교통공사 최재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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