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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㉕ <입선> 할아버지가 내게 남겨주신 것들

"노인복지관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Written by. 김민기   입력 : 2018-10-18 오전 10:2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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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할머니 저 왔어요! 충성!ˮ

 훈련소를 나와 방긋 웃으며 들어선 할아버지 댁. 할아버지는 조금 편찮으셔서 침대에 누워계셨고, 할머니는 우리 강아지 왔냐며 내 엉덩이를 토닥거리시며 반겨주셨다. "훈련은 잘 받고? 열중쉬어… 뒤로 돌아… 제식도 하고ˮ 6・25 참전용사이신 할아버지가 물어왔다. 참전용사 모자를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두고 매일 청소하실 만큼, 자랑스러워하셨던 우리 할아버지가 기분 좋게 웃으셨다. "그럼요. 제식훈련도 잘 받고, 사격도 했죠. 그리고 행군도 무사히 끝냈어요.ˮ 밖에 나와서 뵙는 할아버지 얼굴이 너무 좋아서인가 나는 할아버지가 편찮으신지 바로 깨닫지 못했다. 천천히 살펴보니 말씀하시는 도중에 할아버지는 연거푸 눈을 깜빡이시며 졸고 계셨다. 자세히 보니, 할아버지 눈이 뿌옇고 목소리도 좋지 못하셨다. 내가 훈련소를 나와서 할아버지댁을 들린 게 천만다행으로, 그 날 할아버지는 병원 응급실로 가셨다.

 멋있게 보여주기 위해 입고 온 군복도 벗지 못하고, 베레모를 쓴 채 나는 온종일 울었다. 할아버지가 위암 수술을 받으신 지 6개월, 급하게 도착한 병원에서는 이미 온몸으로 암이 퍼져서 손을 쓸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한 달을 우리 곁에 더 계시다가, 하늘의 별이 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손자가 훈련소에서 나오는 걸 보기 위해 기다리셨을지 모르겠다. 무사히 잘 나오도록 매일 기도하시며. 그런데 정말 우연히도, 내가 복무하고 있는 곳은 우리 할아버지가 공부하러 다니셨던 노인복지관이다. 이따금 할아버지와 닮은 어르신들을 보면 가슴 한편이 묵묵히 젖어 오기도 한다. 이곳에서 나는 할아버지의 흔적을 조금씩 찾아 기억하고, 추억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복무에 임하고
있다. 할아버지, 효도 못 했던 만큼 어르신들께 더 효도할게요. 사랑해요.'

이야기에 앞서

 어느덧 근무한지 일 년 가까이. 시간은 언제나 나보다 한 걸음씩 더 빠르다. 나는 그동안 많은 것들을 배웠다. 사람을 떠나보내는 법, 타인을 배려하는 법, 내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법…. 그중 가장 큰 배움은 아마도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아닐까. 전과는 달리 작고 사소한 것들에 행복을 느끼며 전보다 자주 지인들에게 전화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낸다. 집안의 첫째로서 뭔가 이뤄야한다는 부담감도 크고, 전부 포기해 버리고 싶었을 때 도피처로 삼은 병역의무가 날 바꿔준 것 같다. 덕분에 좋은 복무기관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나의 좋은 점들을 알아갈 수 있었다. 앞으로 남은 일 년,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비록 누군가에게는 우스운 얘깃거릴 수 있겠지만, 나에겐 너무 소중한 시간이다.

삶에서 나오는 지혜

 우스운 얘기지만, 돌이켜보면 난 정말 쉽게 포기해온 것이 많았다. 인간관계, 학업, 아르바이트까지 조금만 어긋나면 내 쪽에서 먼저 그만둬 버렸다. 그런 점 때문에 학교를 휴학하게 되었고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해서 항상 합리화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감명 받았던 이야기가 있다. 할아버지를 여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이야기다. 내가 한 어머님께, 어르신은 살면서 후회하는 일, 없으세요'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어머님은 덤덤한 표정으로 내게 말씀하셨다. "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대로 살아지면 참 좋겠지만….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나, 별 수 없지. 난 젊은 나이에 얼굴도 모르고 결혼했고, 그 남편을 전쟁 때 잃었다. 지금은 결혼한 걸 후회하지 않지만, 그 때는 얼굴도 모르고 결혼시킨 부모를 원망했고, 홀로 남기고 떠나버린 남편을 원망했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자식 일곱을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다.

 난 후회 없다. 후회하고 있을 시간에 다른 일을 해라.ˮ 말씀을 하시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어머님. 어머님의 손을 보니, 그 손에는 세월이 가득했다. 짧게 닳아 없어진 엄지손톱, 손가락 마디마디 튀어나온 굳은살. 나는 그만 울컥해서, 속으로 눈물을 게워내며 한참을 생각했다. 나는 지나온 것들에 너무 얽매여 있지 않았었나. 그동안 이런 저런 핑계들로, 번지르르한 말들로 합리화 하며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 같았다. 그 이후로 공부를 다시 손에 잡고 지금도 놓지 않고 있다. 아직 미약하지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 시험에 합격하고, 토익에서 꽤나 훌륭한 성적을 받았다. 남부끄럽지 않게 큰 사람이 되겠다는 손자의 말을 할아버지가 잘 지켜봐 주셨으면 한다. 나는 꼭 큰 사람이 될 테니.

배움에는 정말로 때가 없다.

 할아버지께서는 항상 책을 가까이하셨다. 매일 한자를 외우셨고, 옥편 표지가 닳아서 다른 종이로 덧댈 때까지 보셨다. 중국어 테이프를 켜놓고 혼자 공부를, 또 영어 알파벳부터 기초회화까지. 내 키가 몽당연필만 할 때부터 할아버지의 공부하는 뒷모습을 참 많이 봤다. 그래서인지 수험생 시절에 공부하다 힘이 들 때면 할아버지 생각을 참 많이도 했었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있을 수 있었다. 그 크고 넓은 등을 가진 할아버지가 공부하러 다니셨던 복지관에, 나는 매일 출근한다. 복지관 2층에는 어르신들이 나와 공부하는 교실들이 많다. 배움터, 문화방, 정보화 교실…. 우리 할아버지도 여기서 공부하셨을 테지. 그리고 나는 바로 그 장소에서 어르신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드리고 있다. 나름 인기 강사로 수강생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세세한 것 하나부터 열까지. 컴퓨터를 처음 켜는 법, 마우스를 움직이는 법, 인터넷에서 좋아하시는 노래를 검색하는 방법까지.

 어르신들을 위해 수업을 준비하면서 많은 것을 깨닫는다. 매주 두 번 꼬박꼬박 나오셔서 메모지에 꼬불꼬불 글씨로 받아 적고, 잊어버리지 않게 계속 반복하시는 모습에서 우리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런 어르신들을 위해서 전문적으로 가르쳐드릴 순 없어도, 반복하며 이해할 수 있도록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매주 복습하고, 월말에 시험도 보고, 퀴즈를 풀며 지루하지 않게 애교도 부리고 사탕도 나눠드린다. 어르신들은 학교에 다니는 것 같다며 즐거워하신다. 만점은 아니어도, 반절만 맞아도, 아니 반절도 못 맞아도, 하나만 알아간다면 그걸로 충분하시다는 말씀을 하신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말들을 듣는다. 그래서 나는 복무를 끝마쳤을 때를 위해 수업자료를 PPT로 만들어 저장해두고 있다. 누가 와도 이 배움의 열정이 뜨거운 어르신들에게 좋은 교육으로 보답할 수 있도록.

 그 마음이 전해져서인지, 얼마 전에 한 아버님이 자기 아들에게 처음으로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아무것도 몰라서 자식들과 손자들 앞에서 무안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내게 참 감사하다며 차를 한 잔 사주셨다. 컴퓨터를 계기로 자식들과 얘기를 할 수 있었고, 손자도 아버님이 컴퓨터를 배우는 게 대단하다고 좋아했다고 하셨다. 그런 아버님께 나도 감사 인사를 했다. 한창 농사일로 바쁘실 텐데, 꼬박꼬박 나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수업을 하면서 매일같이 살갗으로 느낀다. 배움에는 정말로 때가 없다.

마음으로 품은 손자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난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자랐다. 덕분에 깍듯하게 예절을 배울 수 있었고, 재롱이 많아 경로당 인기스타였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어르신들을 대할 때 거리낌 없이 다가간다. 어르신들을 만나면 살갑게 인사를 하고 밝게 웃으며 손을 덥석 잡아 이끌어드린다. 처음엔 당황하시는 어르신들도 물론 많지만, 이내 마음을 여신다. 어르신들은 젊은 청년이, 우리 손자 같은 아기가 참 예쁘다며 좋아하신다. 내 이름을 기억해주시는 어르신들이 점점 늘고, 휴가를 쓰고 자릴 비우면 나를 찾아 안부를 묻는 어르신들도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감사함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마음에 가득 차오른다.

 어느 날은 안내 데스크에 앉아서 업무를 보고 있을 때, 갑자기 어머님 한 분이 휘청거리며 들어오신 적이 있었다. 버스를 타러 가시다가 도저히 어지러워서 안 되겠다고 하셔서, 아, 이거 큰일 나겠구나.' 하며 사무실에 급히 알리고 혈압 측정기를 사용하실 수 있게 도와드렸다. 혈압이 상당히 높으셨고 식은땀을 많이 흘리셔서 물을 한 잔 드리고, 손을 꼭 잡고 의식을 잃지 않도록 계속 말을 걸었다. 어머님 전화로 아드님께 연락을 드리고, 구급차로 병원에 모시고 갈 때까지 짧은 찰나였지만 내가 빨리 대처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아찔했다. 지금은 무사히 건강을 회복하셔서 가끔 안부를 묻고, 인사를 건네는 그런 사이가 됐다.  사탕을 사시면 주머니에 가득 담아, 내게 건네주시는 그런 사이.

 그리고 또 한 번은 길에서 갑자기 넘어지시는 어르신을 보고 놀라 달려갔던 적이 있다. 혹여 크게 다치지 않으셨을까 걱정이 되어 헐레벌떡 가서 손을 잡고 몇 번을 되물었다. "어르신 괜찮으세요? 어지럽거나 머리 찧으신 곳은 없죠ˮ 연거푸 묻는 내 물음에 어르신은 괜찮은 듯 웃으며 답하셨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돌부리가 있는데 못 보고 걸려 넘어졌어. 늙으면 꼭 이렇게 바보짓을 하네. 고마워.ˮ 그래도 걱정이 돼서, 손을 잡아 부축해드리며 댁 앞까지 모셔다 드렸다.

 복지관 뒤에는 어르신들만 사시는 아파트가 있다. 홀로 남아 가족이 없으신 분도 계시고, 노인 연금으로 한 달을 생활하시는 분들이 태반이다. 복지관에 오시는 어르신들은 다들 한 가지씩,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신 분들이다. 그 사연들을 하나하나 이해하고 보듬어드릴 순 없지만, 비록 짧은 복무기간일지라도 정말 손자와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 드리고 싶다. 그래서 더 살갑게 다가가 먼저 도와드리게 되고, 그런 마음을 아시는지 어르신들의 예쁨을 받을 수 있나 보다. 진짜 손자가 될 순 없겠지만, 어르신들의 마음으로 품는 손자가 되어 드리고 싶다. 내 복무기간이 끝날 때까지, 아니 앞으로도 계속. 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모든 어르신의 막내 손자다.(konas)

김제노인종합복지관  김민기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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