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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만세운동과 민족통합

기념사업회 학술심포지엄...“정치이념 초월해 독립운동 새 지평 열어”
Written by. 이숙경   입력 : 2019-06-10 오후 4: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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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주년을 맞은 6.10만세운동 기념일을 맞아 10일 낮 2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6.10만세운동과 민족통합'이란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6.10만세운동기념사업회가 서울시교육청과 공동으로 마련한 이번 심포지엄에는 김성민 국가보훈처 연구관이 '6.10만세운동 연구의 성과와 과제', 장규식 중앙대 교수가 '1920년대 전반 학생운동 단체의 변천', 그리고 장석흥 국민대 교수가 '6.10만세운동의 계승과 민족대당촉성운동'이란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했다.

 김성민 국가보훈처 연구관은 발표에서 "6·10만세운동 추진 주체의 연대 과정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2회 6.10만세운동 기념 학술심포지엄에서 김성민 국가보훈처 연구관이 발표하고 있다. ⓒkonas.net

 

 김 연구관은 "6·10 만세운동은 1920년대 후반 민족운동사에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며 "국내외 민족협동전선운동, 학생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 각 부문에 미친 영향이 실증적으로 연구되면 6·10 만세운동의 민족운동사적 위상이 더욱 분명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규식 중앙대 교수는 ‘1920년대 전반의 학생운동 단체의 변천’을 다룬 글에서 "3.1운동을 통해 학생들은 주체적 역량을 강화하며 민족의식과 사회적 책임을 새삼 자각하게 되었고 일반인들 또한 그 같은 학생들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3.1운동 과정에서 학생들은 거족적인 독립운동의 도화선을 놓고 만세시위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전령 역할을 했다며 “1920년 5월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들을 망라해 출범한 조선학생대회가 그 첫 열매였다”고 분석했다.

 특히 “1925년 9월 발족한 조선학생과학연구회는 6.10만세운동을 주도하며 1920년대 후반 학생계를 이끌어 간 대표적인 학생 사상단체였다”며 “6·10 만세운동은 1920년대 전반 학생운동의 총결산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장석흥 국민대 교수는 “6.10만세운동은 주체의 복합성과 다양성을 특징으로 한다”며, “국내외 다양한 주체들이 정치이념을 초월해 만세운동을 준비함으로써 독립운동의 새 지평을 열어 나갔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6.10만세운동은 독립운동계의 통합이 요구되던 시기에 그것의 실천적 방안으로서 계획.추진되었으며 1920년대 후반 독립운동의 발전에 기폭제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6.10만세운동은 조선 왕조 마지막 임금 순종의 장례일인 1926년 6월 10일에 일어났으며, 학계에서는 3.1운동. 광주학생운동과 더불어 3대 만세운동으로 평가하고 있다.(konas)

코나스 이숙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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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읍사무국장(heng6114)   

    튼튼한 국방력 만이 우리나라를 온전히 지킬수 있다.

    2019-06-11 오전 9: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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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8.21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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