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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단체 릴레이 탐방 리멤버 솔저스> 5. 50동우회

창군 멤버로 눈부신 전공… 나라의 안보 세우다
Written by. 국방일보   입력 : 2020-04-09 오전 10: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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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국방일보에서 게재하는 ‘참전단체 릴레이 탐방 리멤버 솔저스’ 기획 기사를 국방일보와 협조하에 시리즈로 전재한다.[편집자 주]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장교로 임관해 소대를 지휘하다 보니 적의 시야에 노출되고 적탄에 맞을 확률도 높았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내가 무너지면 부하들이, 그리고 우리가 무너지면 조국이 위험했다. 그렇기에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싸우고 또 싸웠다. 결국 우리는 수없는 전투 끝에 6·25전쟁에서 승리했다.’ (현지임관 출신 장교의 참전 수기 중) 임채무 기자
 
6·25전쟁 당시 현지임관한 장교 2600여 명 모여 창설
휴전 후에도 전후 복구 활약… 매년 추모행사·교육활동

 ▲ 1950년 7월부터 12월까지 현지임관한 2600여 명이 결성한 ‘50동우회’ 회원들이 국립서울현충원에 세워진 추념비 앞에서 추모행사를 가진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konas.net

  

6·25전쟁의 승리 뒤에는 이들이 있었다

 대한민국이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놓인 70년 전. 6·25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우수한 초급장교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 군은 부사관 중에서 유능한 이들을 현지임관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현지임관한 장교 대부분이 투철한 군인정신과 군 경험을 가졌다는 점은 이러한 선택을 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렇게 6·25전쟁 중 현지임관한 인원은 모두 4900여 명. 이 중 1950년 7월부터 12월까지 임관한 2600여 명이 결성한 단체가 바로 ‘50동우회’다.

 50동우회원들은 1946년 1월 15일 국군의 모체인 국방경비대 창설과 함께 대부분 이등병으로 입대한 이들이다. 또한, 2년 뒤인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정식으로 국군에 편입돼 활동했던 창군 멤버이기도 하다.

 이들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베티고지 전투의 영웅 김만술 대위, 철원지구 전투에서 중공군을 대파하고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김한준 대위를 비롯해 회원 모두가 화랑무공훈장 이상 받았을 만큼 6·25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최전선에서 소·중대장의 임무를 수행했던 만큼 희생도 클 수밖에 없었다. 이들 중 416명이 전사했고, 213명이 실종되는 등 임관 인원의 3분의 1인 900여 명이 중경상 이상의 아픔을 겪었다.

 휴전 이후에도 이들의 활약은 계속됐다. 생존자 대부분은 군에 남아 전후 복구와 부대 재정비, 전력증강 등 군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1500여 명이 영관장교로 진급해 대대장, 연대장, 참모장교를 지냈고 최갑석·김영동·이명구 소장 등 13명은 장군까지 진급했다.
   
군의 주역이었던 현지임관 장교

 50동우회는 1964년 5월 30일 창설됐다. 이들은 사관학교 등 정규과정을 거쳐 임관한 장교들과는 다르게 현지임관이라는 특수성을 가진 탓에 함께 모일 구심점이 약했다. 이에 최갑석 소장의 헌신적인 주도로 22명이 추진위원이 돼 조직을 발족하게 됐다.

 이후 이들은 군 발전은 물론 국가안보를 위해 많은 활동을 펼쳐나갔다. 대외적으로는 주로 대한민국 재향군인회나 영관장교 연합회 등 예비역 단체들과 함께 나라의 안보를 세우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한, 국민의 안보의식을 제고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활동도 추진했다.

 내부적으로는 전투에서 장렬히 산화한 전우들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위훈을 기리기 위한 추모사업을 벌였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1971년 국립서울현충원에 세운 전사·실종 전우들을 위한 추념비. 생존자들이 십시일반 모은 7500여만 원으로 세운 뜻깊은 탑이다. 50동우회원들은 이곳에서 매년 8월 30일 추모행사를 갖고 있다.

 이외에도 6·25전쟁 당시 전사를 수집해 책으로 발간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1946년 창군 시기부터 1983년까지 37년간에 걸쳐 이등병에서 장군까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군으로 복무하면서 얻은 소중한 지식과 경험을 후배 장병들에게 고스란히 남겨주기 위해 제작한 참전수기집 『국군의 뿌리, 창군·참전용사들』이 그 결과물 중 하나다. 50동우회는 회원들이 낸 회비로 4500부를 발간해, 이를 군에 배포했다. 이 책에는 우리 국군의 뿌리인 국방경비대 창설부터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후 정식 국군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상세히 기록된 것은 물론 6·25전쟁 당시 지휘관(자)으로 참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던 소중한 경험과 체험담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인터뷰] 서 갑 성 (예비역 대령) 50동우회장

 “우리나라가 어떻게 해서 자유를 누리게 됐는지, 참전용사들이 조국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꼭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서갑성(94·예비역 대령) 50동우회장의 목소리는 깊게 파인 얼굴의 주름만큼이나 지난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했다. 서 회장은 일등상사로 근무 중 1950년 9월 4일 소위로 현지임관해 육군5사단 27연대 소대장을 시작으로 가평, 춘천, 화천지구전투 등에 참전했고 강원도 고성지구 전투에서 적이 쏜 총탄에 파편상을 입은 역전의 용사다. 휴전 이후에도 군에 남아 군 발전에 이바지했고, 지난 1973년 대령으로 전역했다.

 서 회장은 “50동우회 동료를 비롯해 수많은 참전용사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땅에는 전쟁은 없어야 하고, 반드시 사전에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주역은 바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라고 덧붙였다.

“자부심 하나로 뛰어든 전장… 자유 지켜냈다”
남은 동료 30여 명...사실상 활동 중단, 대한민국 지켜낸 우리 기억해주길

 서 회장의 말 속에는 뼈가 있다. 서 회장에 따르면 50동우회는 지난해 연말 임시총회를 통해 사실상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그는 “해마다 10여 명의 회원이 세상을 뜨고 있다”며 “많던 전우 중 이제는 30명 정도만 생존해 있고, 그마저도 대부분 와병 중이라 실제 거동이 가능한 인원은 5명도 채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어떻게 자유를 얻게 됐는지, 참전용사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기억해달라는 그의 말은 한 시대를 살았던 참전용사가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간절한 부탁이자, 앞으로 대한민국을 지켜나갈 이들에게 주는 마지막 충고 같은 것이었다.

 “다들 죽을 자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자부심 하나로 장교로서 사선에 뛰어들었고, 대한민국을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7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제 몇 년 후가 되면 50동우회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 모릅니다. 노병의 말을 기억해주길 부디 당부드립니다.”

임채무기자 < lims86@dema.mil.kr >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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