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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칼럼] 호국보훈의 달에 돌아보는 '강뉴부대'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21-06-10 오전 8: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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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4월 12일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한 파병 출정식이 있었다. 돕고자 하는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 그들은 가족을 뒤로 한 채 이름도 모르는 나라를 위해 출정에 나섰다. 누구 한 명 강제로 향한 사람은 없이 100% 지원병으로 구성된 부대였다. 에티오피아는 유엔참전국 중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지상군을 파견한 나라다. 강뉴(Kagnew)는 6·25 전쟁에 참전한 에디오피아 군부대 이름이다. 당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유엔의 파병 요청을 받자 4개 정규사단 5만명 중 최정예부대인 황제 직속의 제1근위사단에서 지원자들로 보병 1개대대를 편성하고 '강뉴(Kagnew, 에티오피아어로 ‘초전박살’의미)부대'란 이름을 친히 하사했다. 셀라시에 황제는 출정식에서 장병들에게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란 특명을 내렸다.

 셀라시에 황제가 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1만㎞나 멀리 떨어진 한국에 최정예병을 보낸 것은 이탈리아에 나라를 빼앗겼던 뼈아픈 경험 때문이었다. 1935년 이탈리아의 침공을 받은 에티오피아는 국제연맹에 지원을 호소했으나 도와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그 날이 4월12일이었다. 이로 인해 27만 명이 죽고 나라를 빼앗기는 경험을 했던 황제는 “부당하게 침략당한 나라가 있다면 반드시 도와줘야 한다”는 신념으로 1951년 4월12일 강뉴부대 출정식을 가졌다. 이후 1956년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에티오피아는 5차례에 걸쳐 연인원 6,037명의 장병을 파병했다. 1941년 독립한 에티오피아는 힘없는 나라의 서러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기꺼이 대한민국을 도왔던 것이다.

 6·25전쟁 당시 강뉴부대에 관한 이야기는 전설과도 같다. 미군 수송선을 타고 지보티항을 출발한 강뉴부대 1진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1951년 5월 7일 부산에 도착, 미군 7사단 32연대에 배속돼 그해 9월 강원도 화천군 화천 적근산 전투, 이듬해 10월 '철의 삼각지' 공방전에서 단 한 차례도 고지를 내주지 않고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싸웠다. 전차 한 대도 없이 253전 253승을 기록했으며, 참전한 6,037명 중에 121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부상자를 냈지만 단 한 명의 포로도 없었다. 전사자의 시신은 모두 수습해 고국으로 돌아가 부산 유엔군 묘역에는 에티오피아군 병사의 무덤이 하나도 없다. 이들을 지휘했던 미 제7사단장 아더 트루도는 이들에 대해 유엔군에서 가장 용맹한 부대라고 극찬했다. 강뉴부대는 전장에서 용감했을 뿐만아니라 포성이 멈춘 뒤에도 1956년까지 남아 전후 복구를 도왔다. 1953년에는 자신들의 봉급을 모아 경기도 동두천 부대 안에 ‘보화원’(암하라어로 '하느님의 은혜' 의미)이라는 보육원을 세워 전쟁고아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잠을 잘 때는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 곁을 지켰다.

 황제근위병이란 멋진 자리를 버리고 만류하는 가족들을 뒤로한 채 죽음이 기다리는 땅으로 향한 형 Desta와 아우 Mekonen 형제가 6.25전쟁 당시 찍은 빛바랜 사진 뒤에는 암할릭어 친필로 그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한국의 상황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열악하였다. 생전 처음 겪는 눈은 신기하기도 하였으나 추위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모든 걸 버리고 떠난 전쟁터에서 형 Desta씨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그의 죽음은 자신의 조국을 위한 것도, 자신의 가족을 위한 것도 아닌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목숨 걸고 싸웠건만 6.25 참전용사들이 에티오피아로 돌아갔을 때는 조국의 상황이 나빠지고 있었다. 목축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에티오피아는 7년간 계속된 가뭄으로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80$가 채 되지 않았을 때 에티오피아는 국민소득 3000$가 넘었지만 가뭄으로 나라 경제가 기울기 시작했다. 게다가 1974년 군부 쿠데타로 인해 공산국가가 되자 참전용사들은 6·25전쟁 때 북한군과 싸웠다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영웅에서 반역자로 몰려 직장에서 쫓겨났으며 재산을 몰수당하고 말할 수 없는 고문과 핍박을 받았다. 그들의 후손들까지도 벗어나기 힘든 굴레에서 고통받았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어버린 에티오피아, 그 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사람들이 되었다. 사회주의 국가가 되자 한국과도 단교가 됐다. 올해 4월 기준 대다수가 90대 고령인 115명의 생존 참전용사와 가족들은 에티오피아 ‘코리안 빌리지’에서 비참하게 생활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가슴 아픈 역사를 알고 있을까? 당시 에티오피아는 소련의 위협을 받는 나라도, 미국과 이해관계가 있는 나라도, 반공 이데올로기가 있는 나라도 아니었다. 오로지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자발적으로 참전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풍요 이면에는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도움을 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기억속에서 그들은 잊혀져 가고 있지만, 그들은 한국을 기억하고 있다. 잊혀진 영웅들에게 잊지 않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6월 호국보훈의 달을 의미있게 보내는 방법이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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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jj24133(jjj24133)   

    동방의 작은나라를 위해 기꺼이 와준 그분들에게 다시한번 경외를 표합니다

    2021-06-15 오전 9:48:59
    찬성0반대0
  • jjj24133(jjj24133)   

    동방의 작은나라를 위해 기꺼이 와준 그분들에게 다시한번 경외를 표합니다

    2021-06-15 오전 9:37:00
    찬성0반대0
  • G-Crusader(crusader)   

    [@ 518은...[하층부]-혁명전술~!! + @ 615는...[상층부]-혁명전술~!!]...ㅎ 전 80년대초 중학교때~ 배운...[반공-교육]의 가르침으로, 스스로~ 이렇게 "진단"이 되엇습니다~!! 제가 뭐...의사는 아니지만...ㅎ P.S) 북한: "615는 김정일의 빛나는 업적이당~!!"ㅎ (전, 20년전부터~ "615-찬동-반역도들"과는...[절연]하고 살아왓던 이유임~!!ㅎ)

    2021-06-10 오전 9:10:22
    찬성0반대0
  • G-Crusader(crusader)   

    @ [반공]이...대뇌-피질에서...아주~ "말끔히" 지워진 애들만 살아 남앗더라고~~!!ㅎ 좌파10년을 거친후엔...ㅎ e.g.) "김정일은 통일의 동반자이다~!"ㅎ,"몽고-북한-남한이 연방제를해야~!"ㅎㅎ,"난 보수인데~ 615로 통일해야해~!"ㅎㅎㅎ...(박사/교수의 충격-종북발언들~!!ㅎ)

    2021-06-10 오전 9:07:18
    찬성0반대0
  • G-Crusader(crusader)   

    @ 이렇게...수많은 박수속에서~~ 아주~ [자발적인-적화]로 가는 등신-민국은...지구상에서는~ 첨잇는 일이다~~!!ㅎㅎㅎ

    2021-06-10 오전 9:03:24
    찬성0반대0
12
    2021.12.1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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