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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독립운동가 한인애국단에서 활약한 안경근·이덕주·최흥식 선생

일본군 고위 관료 처단 위해 군사교육과 의열투쟁 주도
Written by. 이숙경   입력 : 2022-05-31 오전 9:5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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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는 일제강점기 한인애국단에서 일본군 고위 관료 처단을 위해 군사교육과 의열투쟁을 주도한 안경근·이덕주·최흥식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 안경근·이덕주·최흥식 선생 관련 자료. [국가보훈처 제공] ⓒkonas.net

 

 한인애국단은 1920년대 중반 이후 일본군 주요 인물을 처단하기 위해 1931년 김구 선생 주도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결성된 단체다.

 안경근 선생은 안중근 선생의 4촌으로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나 1918년 국내에 가족 모두를 남겨두고 독립운동에 전념하기 위하여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했다. 

 선생은 1924년 중국 운남성 곤명의 운남강무학교를 졸업, 만주 정의부에 참가하고 황포군관학교 교관으로도 근무하면서 군사 인재를  양성했다. 1931년 한인애국단에서는 윤봉길의사 의거 이후 일제의 독립유공자 탄압을 피해 김구 선생 신변을 보호했다. 

 이덕주 선생은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나, 20세에 조국 독립을 위해  단신으로 상하이로 망명했다. 이후 대한교민단 산하 의경대, 상해한인독립운동청년동맹, 상해 한국독립당, 상해 한인청년당에 가입하여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던 중 1932년 3월, “조선총독을 처단해야 한다”는 김구 선생의 지령을 받고 황해도 신천에 도착했으나 의거를 준비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해주지방법원에서 ‘살인예비, 치안유지법, 총포 화약류취체령 위반’으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최흥식 선생은 1932년 5월 중국 대련에서 관동군 사령관과 남만주철도 총재를 처단하려다가 의거 준비 과정에서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여순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보훈처는 “이들 세 분의 선생은 한인애국단 소속으로 특수정보를 수집하여 의열투쟁을 지원했고, 본인의 안위보다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신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안경근 선생에게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이덕주 선생은 1990년, 최흥식 선생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추서했다.(konas)

코나스 이숙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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