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칼럼]어머님의 미소
엊그제 새벽에 눈을 뜨고 자리에 누운 채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다 갑자기 어머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을 떠나신 지 40년도 더 된 어머님의 얼굴이! 그리운 마음이 간절하여 올해 여든 일곱이 된 이 아들의 노안이 눈물에 젖었습니다.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실 때 나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박사 학위를 한답시고 미국에 가 있던 60년대의 일이었습니다. 장례식이 다 끝난 뒤에야 누님이 내게 그 슬픈 소식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시절에는 공부가 다 끝나기 전에는 집에 한 번 와볼 수도 없는 가난한 세월이었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돌아앉아 혼자서 통곡한 그 일이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합니다.
어머님의 임종은 외아들인 내가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병고에 시달려 수척하신 어머님이 마지막 숨을 길게 몰아쉬실 때까지 나는 나의 어머님을 내 품에 안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어머님에게는 맏아들이 있으셨는데 이른바 ‘대동아전쟁’ 막판에 일본군에 끌려가 소련과 만주의 국경선 어디에서 목숨을 잃었고 유골이 조그만 상자에 들어 집에 돌아왔지만 어머님은 살아서 다시 돌아올 수는 없는 그 아들을 날마다 기다리며 사셨습니다.
내 품에 안겨 목숨이 다 끊어진 어머님의 얼굴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습니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미소였습니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바로 그 엷은 미소가 아니겠는가 가끔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그 믿음 하나로 가난과 역경과 시련을 다 이기고 삶을 승리로 마감하신 나의 어머님의 얼굴에 스치고 지나간 한 줄기 빛은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나에게 일러주는 듯 하였습니다.
『해는 지고 저녁 별 반짝이는데
날 부르는 맑은 음성 들려오누나
나 바다 향해 머나먼 길 떠날 적에는
속세의 신음소리 없기 바라네
황혼에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
그 뒤에 밀려오는 어두움이여
떠나가는 내 배의 닻을 올릴 때
이별의 슬픔일랑 없기 바라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파도는 나를 멀리 싣고 갈찌나
나 주님 뵈오리 직접 뵈오리
하늘나라 그 항구에 다다랐을 때』
이것이 유명한 영국 시인 테니슨(Alfred Lord Tennyson)의 사세가(辭世歌)입니다.
김동길(www.kimdonggill.com) ‘자유의 파수꾼’
- 관련기사보기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