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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병 지원입영 롤 모델 수기집-9〕마음을 닦고 정신을 조이고 미래를 기름치자

Written by. 황보선   입력 : 2014-01-23 오전 9: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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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청장 박창명)이 2013년 육·해·공군 및 해병대에서 현역병 복무를 마친 예비역을 대상으로 지원입영 복무 후 취업 또는 학업에 도움이 된 사례를 모은 ‘현역병 지원입영 롤 모델 수기집’ 『내청춘에 충성2013』에 실린 글임.(편집자 주)

  인생에 있어서 가장 황금기라 불리는 10대 후반, 20대 초반. 이 시기는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남은 평생이 좌우될 정도로 아주 중요한 시기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 많은 젊은이들이 끓어오르는 피를 주체하지 못하고 탈선과 잘못된 일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 나 또한 끓어오르는 피를 이기지 못하고 집 밖으로만 나가돌던 시기. 20살! 돋보이고 싶다는 생각에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잠잘 때 외에는 항상 집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여행을 다니며 배회하고 허송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나에게도 입영이라는 피해갈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오고 말았다. 2년이라는 시간을 한 구역에서 있으면 탈영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끔 영외를 나갈 수 있는 운전병으로 지원할 생각을 하였다. 더불어 ‘제대 후 사회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라도 배워오자’라는 생각에 운전병을 지원하였다.

 운전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군 입대를 하면 자대 배치와 동시에 나의 차가 주어지고, 운전을 하며 영외를 다닐 걸로 생각하였던 나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군용 차량 한 대가 영외로 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절차와 점검이 필요했다. 아침 일과가 시작되면 나 자신뿐만 아니라 차량도 잠을 깨워주어야 한다. 일명 차량 일조점호, 그리고 차량이 아픈 곳은 없는지 매일매일 점검을 하는 일일정비에서부터 1주일 마다 하는 주간정비, 1달마다 하는 월간정비, 그리고 반년정비, 연간정비까지 많은 정비를 거치고 나서야 차량은 운행될 수 있었고,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노력이 필요한 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부대에는 4.2인치 포탄을 싣는 특이한 차량도 있었다. 이 차량은 5/4톤 운전면허로는 운전을 할 수가 없었으며 운용하기 위해서는 전용 면허가 필요했다. 나는 5/4톤 운전병 주특기를 부여받았기 때문에 이 면허를 따기 위해서 많은 K-532 선임들과 수송부 수송관, 정비관들의 많은 도움을 받아, 2005년 비 오던 어느 날 자운대까지 내려가서 시험을 보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합격하게 되었다. 잘했다고 자운대에서 정비관님이 사주시던 자장면을 먹으며 ‘아! 나도 노력하면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성취감에 가슴 뿌듯했다.

 사회에서는 항상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만 상대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하고만 어울리게 될 것이고,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실업계 고등학생들과 어울리게 되는 일이 많을 것이다. 대학생이라면 공대생은 공대생과 어울리는 일이 잦을 것이고, 인문대 학생은 인문대 학생들과만 주로 어울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군대에서는 우리나라 각지 사람들이 다 모여 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을 겪어보며 미래의 사회생활을 사전에 겪어보고 그에 대한 대응방법을 익힐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경북 포항에서 온 선임이 있었다. 성격은 불 같았고, 관심사는 몸만들기여서 매일 운동하며 보충제를 챙겨먹던 기억이 난다.

 나는 학생 때 몸만들기에는 관심이 없어서 뼈만 앙상하고 키만 큰 전형적인 ‘마른 홀쭉이’였는데 그 선임과 같이 운동을 하며 전우애도 쌓게 되었고, 몸도 아주 튼튼하게 변하기도 하였다. 제대 후에도 꾸준히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씩 운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계기도 그 선임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운전병이었지만 나는 포병들과 함께 야간 초병근무도 섰는데 야간 근무를 서며 하늘에 떠있는 달과 별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여태까지 내가 살아왔던 기억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가?

 입대하기 전 집에서는 부모님이 해주시는 따뜻한 밥, 퍼먹기만 하면 되고, 졸리면 자고 놀고 싶으면 놀러나가고 하던 것이 얼마나 호강스럽게 내가 살았는지 군 생활을 하며 많이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제대 후에는 여태까지 부모님 속 썩인 것들 꼭 호강시켜드려야겠다는 생각만으로 2년을 버텼던 것 같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2년간의 군 생활에 면회도 한 번 못 오셨던 부모님은 아직도 ‘아들 군 생활 하는 곳에 못 가본 것이 한이 된다’고 하신다.

 군 제대 후에는 내가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그리고 올바른 사람이 되었는지를 친구들, 그리고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돈 때문에 등록금 걱정을 하시지 않도록 제대 후 복학을 하고 나서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였다. 가장 먼저 도서관에 가서 자리를 잡고, 가장 늦게 도서관에서 별을 보며 나오며 기도를 하였다.

 꼭 성공하게 해달라고, 부모님이 항상 나를 보며 웃을 수 있게 해달라고. 그 결과 꿈은 이루어졌다. 4년 전액 장학생, 그리고 학과 수석 졸업, 게다가 기대도 하지 않았던 공대 수석 졸업생 타이틀까지... 뉴스에서는 연일 전 세계 경기가 불황이고, 청년 실업률은 하늘 높이 치솟는다며 기사를 쏟아냈지만 군 복무를 하며 나의 마음을 닦고 나의 정신을 조이고 제대 후 나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기름 친 덕분에 나는 우리나라에서 내놓으라는 대기업에 연이어 합격 할 수 있었고, 골라서 입사를 할 수 있는 행운도 쥘 수 있었다.

 지금도 나라를 위해 군복무하고 계시는, 그리고 군 복무를 앞둔 후배 여러분!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집에 계신 부모님과 친구 그리고 여자 친구를 생각하며 열심히 복무 하셔서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인재가 되어주십시오.(Konas)

황보선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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