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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통일의 배경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

Written by. 김학성   입력 : 2014-08-13 오전 10: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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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통일은 우리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기반으로 평화적 과정을 거쳐 성취된 통일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우리 정부나 사회에서는 독일사례에서 미래 한반도 통일을 위한 교훈 내지 시사점을 찾는데 관심이 많다.

 문제는 독일사례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이 상이하며 심지어 대립적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과거 서독사회 내에서도 분단관리 및 통일문제를 둘러싼 정책적 갈등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통일의 원인이 단선적이 아닌 다선적 인과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해석의 여지가 큰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해석은 실제보다 더 부풀려지는 경향이 많다. 특히 우리의 상황에 비추어 아전인수격으로 독일사례를 해석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우리 사회의 남남갈등하에서 독일사례는 각 사회세력이 자신의 대북·통일정책적 구상이 타당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려는 증거자료로 자주 활용되곤 하기 때문이다.

 사실 통일 이전부터 서독의 독일정책(분단관리 및 통일정책)은 우리 정부에게 중요한 모델로 간주되었으며, 우리의 대북·통일정책 입안과정에서 항상 참조 되었다. 1969년 국토통일원의 창설을 비롯하여 기능주의적 대북접근, 북방정책, 남북기본합의서, 햇볕정책 등 적지 않은 정책들이 서독사례를 원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소기의 성과를 별로 거두지 못했다. 그 원인은 양 지역의 분단 상황에 대한 정확한 비교연구 없이 단지 성공적이라고 평가되는 구체적 사례만을 편의적·형식적으로 모방한 탓이었다.

 독일과 한반도의 차이를 고려하면, 독일에서 성공했던 정책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적절한 시사점을 얻기 위해서는 독일 사례의 창조적 활용이 필수적이다. 이 맥락에서 한반도와 독일의 분단문제에서 상이성과 유사성을 구별하고, 유사성을 기반으로 시사점을 모색해 보는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양 지역은 분단상황 측면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분단구조에서는 비슷한 점이 존재한다. 즉 공통적으로 국내환경, 분단국관계, 국제환경이라는 세 차원이 서로 밀접하게 엮인 분단구조를 갖는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세 차원별로 독일통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요인을 살펴본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나 시사점을 보다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독일통일을 이끌었던 서독의 국내 환경적 배경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시민민주주의 정착 및 발전을 통한 갈등해소문화 확립이며, 둘째, 경제력 강화를 통한 통일기반 조성이고, 마지막으로 분단 및 통일에 대한 서독국민들의 현실적인 시각 덕분이다.

 국내환경 요인을 자세하게 설명하면, 서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비민주적인 절대관료국가적 전통을 극복하고 서구민주주의 제도와 문화를 정착시킴으로써 정치사회적 갈등의 민주적·평화적 해결 역량을 증대했다.

 특히 탈민족주의적 정치교육은 사회세력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매우 폭넓게 펼쳐질 수 있는 결과를 낳았다. 그 덕분으로 1960년대 말 정치적 갈등을 초래했던 브란트의 신동방정책이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됨으로써 정책성과가 지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민주주의 정착과 발전 못지않게 서독의 급속한 경제 성장은 정치사회적 안정에 기여했다. 사회적 시장경제체제의 도입으로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 성장을 지향함으로써 자본주의체제에 내재하는 사회적 갈등을 완화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서독의 경제발전은 동서독 관계 및 국제환경 차원의 배경 요인이기도 했다.

 즉 서독의 경제력은 동독 정권이 동서독 관계에 매력을 느끼게 한 주요 요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서방동맹국들에 대해서는 나찌의 이미지를 탈색하여 신뢰회복을 가능케 했다. 나아가 1980년대 중반 이후 소련의 개혁정치와 더불어 고르바초프는 서독의 경제지원에 주목하게 되었고, 이는 독일통일을 소련이 동의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정치사회 및 경제적 기반위에 현실적인 독일정책이 성립되고 추진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특히 1961년 베를린 장벽이 구축되자, 서독사회는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통일의 당위성이 현실적으로 당장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후 서독은 현실성 없는 통일요구보다 “분단 상황을 인내할 수 있게 만드는 여건의 조성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인내심을 가지고 중·장기적인 시각으로 통일을 향한 조건을 하나씩 만들어 가는 현실적 태도를 취했다.

 서독과 달리 동독의 국내 환경은 처음부터 안정적이지 못했다. 무엇보다 동독 정권은 탄생 초기부터 정권의 정통성을 소련(軍)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 체결 이후 동독 정권이 동독사회 내 서독의 영향력 확대를 두려워했음에도 불구하고 점진적·전향적으로 서독과 교류협력을 확대·발전시키는데 합의한 배경에는 소련(軍)의 동독정권 보호(브레즈네프 독트린)를 믿었기 때문이다.

 동독 정권이 동독 주민의 서독여행 및 이주를 허용했던 이유도 그와 무관치 않다. 즉 소련이 지원하는 정권안보를 확신했기 때문에 동독 정권은 주민의 서독여행 및 이주를 내부적인 불만을 관리하려는 정치사회적 ‘통풍구’로 활용했다.

 그러나 동독 정권이 소련의 개혁정책에 저항하면서 그 통풍구를 제한하자 동독주민들은 대규모 탈출을 감행했고, 이는 동독 정권의 생존 기반을 와해시켰다.

 동서독 관계 차원에서 통일의 배경 요인들 중 핵심은 현실적인 분단관리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대부터 서독 정부는 ‘통일정책’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대신에 분단의 평화적 관리에 주력했다. 대표적으로 브란트의 신동방정책을 들 수 있다.

 ‘접근을 통한 변화’로 압축되는 분단관리정책은 “독일의 분단을 자유지향적 토대위에 평화적 방법으로 극복할 것을 목표로 하며, 이러한 목표가 성취되지 못하는 동안에는 (동서독을 포함하는) 독일인들이 분단의 결과를 인내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있다”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삼았다.

 분단관리정책은 동서독기본조약체결(1972)을 통하여 기반을 다짐으로써 대동독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가능케 했다. 대동독 경제 지원이나 인적교류 확대 저액을 추진한 서독의 기본적 의도는 “예측할 수 없는 먼 장래에 이루어질 통일 때까지 최소한의 민족적 동질성 유지와 정치적·경제적으로 동독주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창출” 하는데 있었다.

 이러한 서독의 애초 의도와 달리 동서독 교류의 확대는 마침내 동독 정권의 내적 붕괴의 계기로 작용하게 되는 역사적 아이러니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양 차원의 배경요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제환경 요인이다. 패전과 냉전으로 형성된 독일분단의 국제정치적 성격 탓에 독일의 통일은 국제정치적 해결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만큼 분단 극복을 위해서는 외교정책의 비중은 클 수밖에 없었다.

 분단 시기동안 서독 정부는 직접적으로 통일을 겨냥하기보다는 모든 외교목표를 조화롭게 실현시킴으로써 통일의 정신적·물질적 여건을 마련하려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따라서 내용상 다차원적이고, 각 목표를 포괄하는 복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한 ‘통일외교’ 라기보다 보다 광범한 의미에서 분단관리 외교정책 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서독은 국제 환경에 재빠르게 적응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잘 활용하는 외교정책을 추진했다. 물론 서독은 미·소의 대결 및 협력 구조를 벗어날 수는 없었으나, 그 틀 속에서 주어진 활동공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했다.

 이상에서 보듯이 서독의 성공적 분단관리와 통일은 여러 요인들이 상호 작용한 결과이다. 특히 세 차원의 분단구조(국내환경, 동서독관계, 국제환경)에서 동조화가 이루어짐으로써 1970년대 이후 정책적 성과가 가능했다. 분단구조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한반도의 경우에도 세 차원에서의 동조화는 통일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서독은 언제 통일이 이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통합의 방법에 대해 전혀 준비를 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넓은 의미에서 통일을 준비하지 않았던 것을 결코 아니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의 분단극복을 목표로 현재의 현상유지를 인정하는 대가를 치르면서 통일을 향한 기반을 점진적으로 구축해 왔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소련의 개혁과 동구공산권의 붕괴가 동독주민의 통일 요구로 바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와 관련, 만약 한반도에서 1980년대 말 독일과 유사한 상황이 당장 전개된다면 북한주민들도 동독 주민들과 똑같은 선택을 하게 될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는 당장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지?

 향후 한반도 통일이 반드시 독일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독일 사례를 보면서 통일문제에 어떠한 접근태도가 필요할 것인지 확인할 수는 있다. 일차적으로 언제 실현될지는 모르지만 통일 이후를 생각하는 통일준비의 중요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경우에 독일 사례는 타산지석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이것 못지않게 중요하고 현실적인 과제가 있다. 무엇보다 인내심과 거시적 시각을 가지고 통일을 향한 조건들을 하나씩이라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김학성 (충남대 평화안보대학원 교수)

* 출처 : 월간 자유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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