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칼럼] 핵 안전판’이 사라진 ‘핵 경쟁시대’가 우리 안보에 미치는 영향
지구상 마지막의 핵 안전판이 사라졌다.
2026년 2월 5일을 기해 미국과 러시아 간 핵군축을 위한 ‘신전략무기감축조약(뉴스타트)’이 종료됐다. 1972년 미국과 당시 소련이 ‘제1차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1)’을 통해 핵군축을 시작한 지 50여년 만에 핵무기 보유량에 대한 제한이 없어졌다.
세계는 이제 공개적으로 핵무기 경쟁을 하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해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한 언론사의 헤드라인은 “지구 종말까지 85초 남았다”라고 경고했다. 이것은 미국의 과학 학술지인 ‘원자력과학자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에 참여한 시카고대학 과학자들이 핵무기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매년 발표해 온 ‘지구멸망까지 남은 시간’에 대한 경고다. 학술지에 의하면 미국과 소련(러시아)이 1991년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에 서명한 탈냉전 직후의 핵무기 보유량을 고려했을 때 ‘지구멸망까지 남은 시간’은 17분이었으나 이후 핵무기의 증가로 점점 짧아지다가 지난 2월 5일 조약이 종료됨에 따라 85초로 당겨졌다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러시아)의 핵무기 제한의 여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와 공산진영의 중심국인 미국과 소련은 지난 50여 년 동안 전략무기를 제한하거나 감축하는 협정을 체결하고 유지해 왔다. 그 이유는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이 지구상의 핵 위협 제거라는 이상 실현을 위한 결단이라기보다, 자신들의 생존과 안보에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더구나 양국은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는 핵 군비 경쟁을 지탱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국과 소련(러시아)이 전략무기의 제한과 감축에 대해 협정한 과정은 다음과 같다.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로 핵전쟁의 문턱까지 갔던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를 제한하는 규칙이 필요했다. 이로 인해 양국은 1972년 ‘제1차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1, Strategic Arms Limitation Treaty)’과 ‘탄도탄요격미사일(ABM, Anti-Ballistic Missile) 제한협정’을 체결했다. 이후 한때 7만 발을 넘겼던 양국의 핵탄두 감축이 본격화된 것은 냉전 말기인 1980년대다. 1987년 미국과 소련은 중거리핵전력(INF, 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인 사거리 500~5500km의 미사일을 전면 폐기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1991년에는 양국이 각기 핵탄두를 대규모로 폐기하여 6천 발 이내로 제한하기로 합의한 ‘제1차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 1)’에 서명했으며, 1994년 12월에 발효되었다.
한편, 2010년 4월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START 1’를 계승하기 위한 새 조약 ‘뉴스타트(New START, New 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에 서명했다. 이것은 양국의 전략 핵탄두 수를 제한하고, 상호 현장 사찰을 통해 이를 투명하게 감시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뉴스타트는 2011년 2월 5일 발효됐는데, 미국과 러시아의 배치 가능한 핵탄두 수를 각기 1550발로 제한했다. 동시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잠수함,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폭격기 등 핵무기 운반시스템의 수도 700개로 제한했다. 이와 병행하여 연간 18회의 핵시설 현장 사찰과 연 2회 무기 및 시설 정보 교환에 대한 조항도 포함되었다. 뉴스타트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유일한 핵군축 조약이었다. 이후 뉴스타트는 2021년 2월에 연장되었고 5년씩 더 연장할 수 있었으나, 2026년 2월 5일의 협정 만료일까지 합의되지 못함으로써 자동 종료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뉴스타트’는 왜 연장되지 못했을까?
1990년대 이후 탈냉전 시대가 되자 국제사회는 유일 패권국가인 미국이 주도하게 되었다. 미국은 2002년에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협정’을 일방적으로 탈퇴했고, 이에 반발한 러시아는 신형 핵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2019년 미국의 트럼프 1기 정부는 중거리미사일 보유를 금지한 ‘중거리핵전력(INF)폐기조약’을 파기했다.
2022년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은 미국과 러시아 관계를 최악으로 몰고 갔다. 2023년 2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며 러시아의 전략 시설을 사찰하려 한다”며 조약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이후 러시아가 현장 사찰을 거부하면서 ‘뉴스타트’는 사실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런 대치 속에 러시아는 2025년 9월, 미국에 조약을 1년 더 연장하자고 제안했다. 우크라이나와의 장기소모전 속에서 군비 경쟁만은 피하겠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6년 1월 8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만료되면 만료되는 것 뿐이고, 나는 더 나은 합의를 할 것”이라며 연장 거부 의사를 밝혔다.
여기서 ‘더 나은 합의’란 중국을 겨냥한 말이었다. 미국은 새 군축조약을 체결한다면 급속히 핵탄두를 늘려가고 있는 중국도 참여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국의 부상에 대한 견제에 핵무기의 제한과 감축도 포함시키고자 했다. 이것의 시작은 신흥 중국이 미국 패권에 대한 도전으로 촉발된 미-중 패권경쟁이다. 미국이 신전략무기감축조약에 구속되어 있는 동안 중국은 자유롭게 핵 능력을 강화해 왔다는 점이다. 미 국방부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의 핵탄두는 2030년까지 1,000개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며 “중국이 몽골 국경 인근 격납고에 100기 이상의 고체연료 둥펑-31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배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지난 2월 6일, 중국이 2020년 6월 비밀리에 핵실험을 했다는 사실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1996년에 마지막으로 지하 핵실험을 한 이후 지금까지 실제 핵폭발을 수반하는 핵실험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중국은 미국 주장을 “사실무근”이라며 반박했고, 린젠 외교부 대변인은 뉴스타트 종결에 “국제사회가 우려하고 있다”며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의 핵군축 협상 참여 요구에 대해 “중국의 핵전력은 미국과 러시아가 동등한 규모가 아니어서, 지금 단계에서는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부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명분은 중국을 포함한 ‘삼자 협정’이었으나 이는 비현실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미국과학자연맹(FAS)에 따르면 2026년 2월 현재 러시아(5459기)와 미국(5177기)이 전 세계 핵탄두의 86%를 보유한 반면, 중국은 약 600기 수준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미국이 뉴스타트의 연장을 거부한 데는 중국을 핵군축협상에 불러들이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는 핵전력 현대화를 통한 미국의 핵 절대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구실이기도 하다.
트럼프 정권은 “힘이야말로 최대의 억지력”이라며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해 왔다. 그 힘의 정점이 핵전력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흘리면서 핵전력 강화 움직임을 보여 왔다. 두 나라는 핵감축조약으로 자국 핵무기 개발이 발목을 잡힌 상황에서 중국만 제한 없이 핵개발을 가속하고 있는 기존 군축체제를 파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이 참여한 삼자협정 요구는 미국의 핵무력을 더욱 현대화하고 압도적으로 재편하기 위한 시간 벌기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뉴스타트’의 종료가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냉전 이후 50여 년 동안 인류를 핵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던 최소한의 ‘제도적 안전판’이 사라졌다. 이제 국제 사회는 감시와 통제가 불가능한 핵무기 개발 경쟁의 시대로 진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권력의 견제 장치를 묻는 질문에 “내 도덕성이다. 나를 멈출 수 있는 건 그게 전부다. 나에게 국제법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강대국이 충돌할 때는 법이나 조약이 아니라 오직 국가의 힘만이 결정 요인이 되어야 한다는 트럼프의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도 뉴스타트 만료와 관련해 외교부 성명에서 “잠재적인 추가 위협에 맞서 단호한 군사기술 조처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힘으로써 핵무기 증강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중국은 현재 약 600발의 핵을 보유했지만 매우 빠른 증가 속도를 보이고 있으며, 영국, 프랑스 등 다른 핵보유국들 역시 군비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열려있다.
2020년대 중반의 세계 질서는 힘이 유일한 정의가 된 시대가 되었으며, 뉴스타트의 종료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지난 50년간 인류를 지탱해 온 것은 평화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함께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었다. 그동안 세계는 조약이라는 최소한의 규칙을 통해 서로를 감시하며 아슬아슬한 저울추의 균형을 맞춰왔었다. 하지만 이 안전핀마저 제거되면서, 이제 힘만이 국제 사회의 유일한 정의가 되어버렸다.
이제 세상에서 핵전쟁을 막고 있는 것은 핵무기를 사용하면 쌍방 모두 공멸한다는 ‘상호확증파괴(MAD, Mutually Assured Destruction)’의 공포뿐이다. 만일 어느 한쪽이 핵 선제공격을 통해 상대를 절멸시키고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순간 핵전쟁은 언제든 터질 수 있다. 특히 AI시대에는 그런 정밀한 계산을 통한 승리의 환상이 촉발할 핵전쟁 가능성이 더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핵군비 경쟁이 무서운 것은 상대적 핵 우위를 서로 다투는 것보다 상대에게 뒤지면 멸망할 수 있다는 공포로 지지 않으려는 경쟁이 끝없이 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다.
‘뉴스타트’ 종료에 따른 북핵 위협과 한국의 대응은?
그렇다면 뉴스타트의 종료가 한반도 안보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강대국들이 스스로 핵무기 경쟁의 빗장을 풀어버린 상황에서 북한의 핵보유를 제재할 국제법적 명분도 약화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을 취한 지 오래되었고, 미국의 주요 안보문서에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단어도 사라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50발에서 최대 150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 북한으로 인해 다음과 같은 위협이 증가할 것이다.
첫째, 북한의 핵 개발 전략이 가속화될 것이다. 미·러 핵무기 제한 상징이 사라지면서 북핵 비핵화 협상의 가능성은 물 건너간 셈이다. 세계적인 핵 군비 경쟁의 재개는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가 최후의 안전판’이라는 주장을 강화하고 핵탄두 보유량을 급격히 증가시킬 것이며, 한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전략무기 개발에 더욱 집중하게 할 것이다.
둘째, 한반도 안보에 미치는 위협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미·러 간 핵무기 투명성이 사라지면서 한반도 주변의 핵 위협 예측이 불가능해지는 ‘깜깜이’ 핵 경쟁 시대가 될 전망이다. 또한 러시아의 핵 기술과 군사적 지원이 북한에 유입될 가능성이 높아져 한반도는 더 큰 군사적 긴장에 노출될 것이다.
이러한 ‘핵 무한경쟁 시대’로의 진입에 대응하는 한국의 대응은 무엇일까? 한국은 다음과 같이 기존의 대북 억제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강대국 간 핵 경쟁 환경에 맞는 새로운 안보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첫째, 한미동맹에 기반한 핵 억제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의 확장억제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NCG를 통해 핵 위기 시 공동 대응 계획을 구체화하고, 정보 공유와 상시적인 미 전략자산인 핵잠수함, 폭격기 등의 한반도 순환 배치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북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여 한국형 3축 체계를 최신화하고 탐지 및 요격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둘째, 안보 자율성과 자체 대응 능력의 강화이다. 한국은 중국, 러시아의 핵 확장과 북한의 핵 위협이 일상화되는 상황에서, 미국에만 의존하지 않고 핵 추진 잠수함 개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역량 고도화 등 자체적인 방위 능력을 강화하는 ‘플랜 B’ 차원의 자체적인 방위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특히 자체적인 핵 잠재력에 대한 기술적 준비를 갖춰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셋째, 외교적 대응으로 다자적 핵군축 프레임워크를 추진하는 것이다. 뉴스타트 종료로 형성되는 다자적 핵군축 대화에 북한의 참여를 유도하여, ‘북한 핵무기의 양적, 질적 ‘동결’을 목표로 하는 현실적 군축 협상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또한 북·중·러 밀착으로 수반될 북러 해상훈련, 북한의 핵능력 강화 지원 등에 대해 외교적 압박과 관여를 병행하고, 국제사회를 통한 균열을 시도해야 한다.
21세기 세계는 ‘힘에 의한 평화’의 시대를 맞아 핵의 안전핀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비핵국가인 한국은 북한의 핵 위협에 직면하였고, 핵을 보유한 군사적 강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인접하여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대비해야 한다. 이에 대한 결론으로 뉴스타트 만료 후 우리는 1차적으로 ‘확장억제 강화’라는 동맹차원의 대응과 장기적으로는 ‘자체적인 국방 자율성 확보’라는 2차적 대응을 동시적이고도 시급하게 요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konas)
박동순 : 한성대 국방과학대학원 안보정책학과장, 정치학박사, 향군 안보교수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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