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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⑥ <장려상> "역경, 뒤집어 경력"

"마침표인줄 알았던 사회복무요원, 나에겐 쉼표, 그리고 느낌표로 만들 것"
Written by. 신치호   입력 : 2018-10-02 오후 2:5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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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과정 분임장, 53사단 최우수훈련병, 사회복무요원 대표자, 리더과정 학생장... 이 모든걸 관통하는 한가지의 공통점은 바로 나, 사회복무요원이다. 소집해제를 이제 곧 앞두고 있는 나에게 이 많은 화려한(?) 수식어들이 붙기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나의 정체성 고민부터 시작해서 나를 되돌아보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 그리고 건강한 사회인으로서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되기까지. 나에게 있어 사회복무요원 생활은 내 안에 내재되어 잠재력을 증폭시켜준 촉매제'나 다름없다.

만 서른

 다가오는 내년 1월, 소집해제하게 될 때의 내 나이다. 현재 난 내가 복무하고 있는 기관의 최고참이자 최고령 사회복무요원이다. 군사교육소집을 위해 훈련소를 갔을 때도 그랬고, 소양교육을 들으러 사회복무연수센터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우사인 볼트의 100m 달리기 기록만큼이나 쉽게 깨질 수 없는 숫자이긴 한 것 같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보다 어린친구들은 의아해한다. 저렇게 나이 많은 아재(?)가 왜 우리랑 같이 있는 거지?

 정확히 15년. 내가 겨우 만 12살이 되었을 무렵, 유학을 위해 한국을 떠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뉴질랜드에서 중.고등학교를 거쳐 호주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기나긴 유학생활을 했었던 나는 나홀로 외국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각종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우며 훗날 그곳에서 정착하며 살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름 열심히 지내고 있었다. 물론 나에게 불시 도착한 연락 한 통이 오기 전까지는...

호주 약사와 영주권을 뒤로한 채...

 호주 퀸즐랜드 주에 소재한 약학대학원을 다니며 약국에서 학생약사로 일도 함께 병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나에게 더 이상 군입대를 위해 더 이상의 해외체류가 힘들다는 연락이 왔다. "두두두둥~ˮ 누가 틀지도 않았는데 베토벤 교향곡 운명'이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당연히 이행해야하는 군복무지만, 그 당시에는 약2년간 생기게 될 긴 공백이 마치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처럼 크나큰 딜레마로 느껴졌다. 더군다나 그때 나는 일하고 있던 호주약국에서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졸업과 동시에 인턴약사 자리와 보스약사가 서포팅 해주는 영주권까지 오퍼를 받은 상태였다. 물론 적지 않은 나이와 비영어권에서의 생활이 남길 긴 공백이 내 이력에 끼칠 영향도 무시하지 못했다.

 솔직히 여러 가지 편법으로 영주권을 취득하고 군입대를 안 할 수도 있었고, 실제로 그런 유혹도 있었다. 이때 부끄럽게도 많은 고민을 했지만 끝에 내렸던 결론은 누가 봐도 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었고,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이자 나의 뿌리인 가족들과 내 나라'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현역에서 4급으로

 아무래도 전공을 살리게 된다면 더욱 뜻깊은 군생활이 될 것 같다는 판단하에 나는 육군 약제병으로 지원한 후, 입영일을 받고 그 전까지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주에서 운전하다 생긴 접촉사고 후 계속 악화되던 허리통증으로 찾은 병원에서 나는 또 한 번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진단명 ○○○○○'. 그렇게 한 순간에 바뀌어버린 병역판정검사 4급 판정. 그렇게 등급이 매겨진 나는 어미 잃은 송아지 마냥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 내 계획에는 전혀 없던 시나리오였기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내 전공과는 무관한 곳에서 근무를 하게 될 거고, 흔히 사람들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일을 하게 될 거란 사실에 나는 매우 낙담해 있었다. 그러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처럼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부딪혀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부산 동래교육지원청

 처음 근무지 배정을 받았을 때 나의 솔직한 심정은 교육청에서 할 일이 그렇게 많으려나' 싶었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속한 행정지원과는 교육지원청의 중추로서 여러 핵심적인 사안들을 다루며 업무량도 월등히 높은 편에 속했다. 근무를 시작하고 초창기에 내가 한동안 맡았던 일은 청사 주차관리, 행사보조 그리고 그 외 잡다한 사무보조 정도였다. 그러다 이러한 간단한 업무들이 손에 익고, 내가 속한 팀, 과, 그리고 교육지원청의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반적으로 감이 대충 오기 시작했다.

 내가 맡은 업무들을 기본적으로 어려움 없이 쳐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기자 자신감이 붙었고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스스로 일을 찾아 나섰고, 가끔씩 주임님들이 도움요청을 하실 때마다 최선을 다해 도와드렸다. 그 결과, 나는 주임님들 사이에서 조금씩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의 존재감은 하루하루 커져가기 시작했다. 더불어 나도 매일 아침 눈 떠서 출근하는 길이 즐거워졌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한국에서 어느 한 조직에 정식으로 소속되어 사회생활을 경험 해보는 게 이번 사회복무요원으로서가 나에겐 처음이다. 겉으로는 영락없는 한국인이지만 어릴 때부터 오랜 시간동안 해외에서 자라온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외국문화나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소한 것들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면에서 적응하기가 꽤나 힘들었다. 개개인이 중심이 되어 보다 본인 의사표현이 적극적이었던 외국과는 달리 한 팀으로서의 공동체 문화, 단체생활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때때로는 대다수를 위한 희생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며 내 자신이 좀 더 성숙한 사람으로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초반에는 교육지원청으로 오는 민원전화나 민원인분들도 상대하기 버거웠지만, 지금은 주임님들께서 완전 능글맞다' 하시며 한국인 다 되었다(?)'는 농담까지 내게 하시는걸 보면 이제 한국사회에도 꽤나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직원보다 나이 많은 나, 필요로 하는 사람 되기까지

 교육지원청에는 나와 나이가 같거나 어린 주임님들이 몇몇 계신다. 요즘 어마무시한 경쟁률을 자랑하는 공무원 시험을 합격해서 일하고 계시는 그 분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처음에는 호칭부터 괜히 뭔가 어색하기도 했고,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신분이 다른 내 자신을 보며 나중에는 혼자 이상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존감까지 낮아진 듯했다. 나이가 많다는 것만이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처음에는 내 스스로에게 독이었다. 하지만 나는 떳떳한 내 자신이 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었고, 난 더 이상 움츠러들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여태 내가 겪어온 다양한 경험을 장점으로 십분 발휘해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외국에서 몸소 체험했던 선진교육사례를 교육공무원분들과 교사분들께 전해드렸고, 많은 분들께서 해외 교육시스템에 관심이 많으셨다. 실제로도 몇몇 사항은 실무적으로 채택하신 것도 있었다. 간접적으로나마 내가 고국에 뭔가 기여한 것 같아 괜한 뿌듯함이 밀려왔다. 또한, 외국인 강사들이 올 때면 통번역을 도맡아 도와드리고 업무상 영어가 필요로 하는 직원분들도 도와드리곤 한다. 지금도 내 직통전화기는 바삐 울린다. 허나 나에겐 기분 좋은 벨소리다. 내가 누군가에게, 어디에선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소리니까.

최우수훈련병, 대표자, 그리고 학생장
 
 감사하게도 나의 소중한 경험은 교육지원청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군사교육소집을 위해 다녀온 53사단 신병훈련소에서 나는 어린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나 자신과의 싸움을 위해서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 그 결과 최우수훈련병이란 뿌듯한 결과까지 덤으로 얻었다.
이어서 운 좋게도 소양교육을 위해 다녀온 사회복무연수센터에서 분임장, 사회복무요원 대표자로 임명되어 리더교육을 위해 다시 방문했을 때는 학생장으로 뽑히며 나는 색다른 경험과 리더십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서로 형, 동생하며 의지하는 소중한 인연들도 생겼다.

역경, 뒤집어 경력

 역경: 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국립국어원에 정의된 역경의 사전적 의미다. 내가 군입대 통보를 받은 후 지금까지의 여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고 평범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로마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했던 말이다. 같은 돌이라고 해도 그 돌을 걸림돌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다음 여정을 위한 디딤돌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난 내가 사회복무요원으로서 일하게 된 것에 정말 감사한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 같은 시간을 선물 해주었고, 나의 정체성과 내가 개인적으로 좀 더 보다 나은 사람으로 성장 할 수 있게끔 발판을 마련해주는 계기도 되었다.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만났고, 작년에는 의료통역사 시험에 도전하여 합격하는 등 학업적인 측면에서도 끈을 계속 놓지 않게끔 내게 기회를 주었다. 마치 나에게 마침표가 될 줄 알았던 사회복무요원 생활은 쉼표가 되어 돌아왔고, 이제 나는 그걸 느낌표로 만들어 보려한다.

 위에서 말한 역경'을 거꾸로 읽어보면 경력'이 된다. 나에게 있어 24개월간의 사회복무요원 생활은 비록 내 이력서에서는 한 줄로 끝이 날테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는 그 어느 순간 못지않게 빛나고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경력이 되어 남아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어준 사회복무요원 경력'과 함께 이제 30대로서 새롭게 맞이할 나의 흥미진진한 인생 후반전'을 생각하면서 내 심장은 또 두근두근 조용히 요동치고 있다.(konas)

부산광역시 동래교육지원청 신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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