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인터넷을 달궜던 대사관녀(女)에 이어 또 다시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중국 심양(瀋陽)영사관 직원의 불친절에 항의하기 위해 납북어부 최욱일씨(67)의 가족이 5일 오전 10시 외교통상부를 항의방문했다.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머물고 있는 납북어부 최욱일씨의 아내 양정자씨(66)는 이날 외교통상부 아태국장을 항의방문한 후 가진 기자설명회를 통해 "우리가 중국에 간다고 통보하고 현지에서 공관에 연락을 하려고 해도 전화를 안받을 때는 언제고, 남편의 탈북사실이 신문과 방송에 보도 되니까 이제와서 '그러면 북한에 있는 최욱일씨 가족들이 위험해진다'고 말하느냐"며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원망했다.

▲납북어부 최욱일씨의 아내 양신자씨(좌)와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회장(우)이 외교통상부 항의방문을 마치고 정부종합청사를 떠나고 있다. 양신자씨는 이날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도 울음을 참지 못했다. ⓒkonas.net

 감정에 복받쳐 오열하는 양정자씨를 대신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한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회장은 "최욱일씨 문제는 오늘 새벽 시간부로 내 손을 떠났다. 신변은 안전하며 이제부터는 모두 정부책임이 됐다"고 밝혔다. 최성용 회장은 또한 "쓸데없는 위원회 하나 없애고 대신 유관부처들이 모여 '납북자·국군포로 대책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노 대통령은 다른 이야기 그만하고 이런 이야기나 하라"며 정부의 납북자, 국군포로 대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외교통상부 아태국장과의 면담을 마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회장. 탁자 위의 서류가 최욱일씨와 만나는 일정 등을 적어 관련부처에 보낸 공문철이다. 그러나 통일부에서는 언론보도 후 전화를 걸어 '왜 우리에게 연락하지 않았냐'며 양씨를 책망했다. ⓒkonas.net

 이번 일은 납북어부 최욱일씨의 아내 양정자씨와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회장이 지난 12월 30일 중국에 숨어있던 최욱일씨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됐다. 최욱일씨는 1975년 오징어잡이 어선 '천왕호'의 사무장으로 일하던 중 동해 상에서 북한 경비정에 납북됐다. 그후 31년 동안 가족들은 최씨의 생사도 모른채 그를 기다리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최씨가 탈북해 현재 중국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당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양신자씨를 대신해 최성용 회장이 나서 통일부, 외교통상부 등에 일정과 장소, 기타 필요한 사항을 작성해 공문으로 발송했었다. 이에 대해 정부에서 아무런 답변이 없어 이들은 '정부에서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려니'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양정자씨는 남편 최씨를 만난 후 중국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 연락을 시도했지만 묵묵무답이었다. 30일과 31일이 쉬는 날인데다 1일은 새해 첫 날이라고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 우여곡절 끝에 담당자의 휴대전화로 연락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어떻게 내 휴대전화 번호 알아냈느냐'는 추궁 뿐이었다고 한다. 그 담당자라는 사람은 곧 연락을 주겠다고 말하곤 다시 전화를 안받았다고 한다.

 결국 양정자씨와 최성용 대표는 현재 사고로 건강이 악화된 최욱일씨를 중국에 혼자 남겨두고 귀국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지난 4일 최욱일씨의 사연이 언론에 공개되자 통일부 등 관계 당국은 급히 양씨에게 연락했다. 그러나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하기는커녕 '왜 우리에게는 연락을 안했느냐, 그렇게 언론에 공개하면 북에 있는 최욱일씨 가족이 위험해질 수 있다'며 책망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양씨는 억울하고 섭섭한 심정 때문에 쓰러졌다고. 이들은 결국 오늘 외교통상부를 항의방문하게 된 것이다. 

 현재 북한은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그러나 이런 외부적 문제 이외에 정부의 자세 또한 문제가 있었다. 바로 탈북자들과 납북자, 국군포로를 모두 묶어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같은 동포라는 점에서는 문제가 없겠지만 실질적인 우리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이는 일종의 책임방기라고 말할 수 있다.  

 최성용 회장은 "이번에 언론에도 공개가 되었지만 자꾸 이런 문제가 생긴다. 지난 번 정영일씨, 이재걸씨의 경우를 봐라. 북한에 끌려간 사람들이 어떻게 세금을 내나. 이렇게 영사들 교육이 안 되어 있다"며 정부와 외교공관원들의 의식부족이 심각한 수준임을 지적했다. 최 회장은 또 "자신들이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을 구해올 자신이 없으면 우리가 구해온 사람들이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것 아니냐. 중국 눈치 본다는 것은 중국 영토 내라서 그렇다 치지만 왜 북한 눈치를 보느냐"며 외교관들의 자세와 시각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이날 항의방문 취재를 위해 모인 기자들.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건 '우리' 정부 뿐인 모양이다. ⓒkonas.net

 최 회장은 "일본은 총리실 산하에 납치관련 위원회가 있다. 이 곳은 휴일이 없다. 납치된 사람이 탈출했는데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휴일을 챙길 수 있느냐는 거다. 그런데 우리 영사관, 공관은 어떤가? 토요일, 일요일, 휴일이라고 연락이 안되는 게 말이 되냐"며 "정부는 쓸데없는 무슨무슨 위원회 하나 없애고 그 비용으로 대통령 직속, 그게 안된다면 총리실 산하에라도 국방부, 국정원, 통일부, 외교부가 합동으로 납북자·국군포로 특별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이들의 한국 귀환이 빨라질 것"이라며 우리 정부가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 충고했다.

 양씨와 최 회장은 이날 모인 기자들을 향해 "언론 여러분들도 제발 도와달라, 그래야 납북자들과 국군포로들이 하루라도 빨리 귀국할 수 있다"며 도움을 호소했다.(konas)

 전경웅 코나스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