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作權 이양 재협상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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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은 전시작전통제권(戰時作戰統制權, 이하 전작권)을 2012년 4월 17일 한국군에 전환하고 한미연합사령부(이하 연합사)를 해체하기로 2007년 2월 23일(미국시각) 미국에서 개최된 양국 국방장관회담에서 합의했다.
‘전작권’은 2006년 8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의 조기환수(단독행사)의지 표명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자기나라 군대에 대한 전작권을 갖지 않은 유일한 나라”라고 말했다.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환수의지를 재확인하면서 “전작권 환수는 나라의 주권을 바로 세우는 일”, “국군통수권에 관한 헌법정신에도 맞지 않는 비정상적인 상태를 바로 잡는 일”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잘못된 표현이라고 전문가들이 설명했다.
필자가 여러 경로로 확인한 결과, 국방부·합참·연합사와 같은 상급부서에 근무해 보지 않은 상당수 현역군인들도 작전통제권(평시·전시)에 따른 지휘/통제체계가 갖는 깊은 역사적 의미와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한다.
필자의 국방부/합참/연합사 근무경험에 의하면 한·미동맹, 작전통제권과 전시 작전계획 기획을 동시에 한 사람만 알 수 있는 업무이다. 그래서 자연히 이 업무를 취급하는 사람이 고급장성 일부와 국방부 정책부서와 합참 군사전략 부서로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국군장병의 대부분과 국민은 ‘전작권이 무엇인지’, ‘연합사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앞으로 우리 안보에 공백은 없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모르고 있다. 전문가의 의견을 하루 이틀 듣고 공부한다고 해서 이해할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특수한 분야이다보니 사계전문가도 거의 없다. 한미간 합의가 있을 때 하루 이틀 언론에 사실 수준으로 보도된 후 바로 없어진다. 일간지에 간혹 사설이 한두 번 실리는 정도다. 설득력 있는 토론도 없다. 여론수렴을 위한 공청회도 없다. 이렇게 되어 우리 국민은 자연스럽게 ‘전작권’ 문제에서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전작권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깊은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는 작년 10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 합의를 거쳐, 국내외 반대의견과 북한 핵문제를 무시한채 일사천리로 처리하고 말았다. 일사천리의 배경에는 소위 '자주파'들이 주장해온 ‘군사자주권’ 논리와 자주국방의 청사진이라는 ‘국방개혁 2020’에 대한 자신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군사자주권과 자주국방을 반대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에 군 원로들이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이 문제는 국가의 존망과 직결되어 있다. 한반도에서 그동안 불안하나마 '전쟁없는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연합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 세계가 ‘연합사’를 가장 완벽한 ‘동맹 군사체제’라고 격찬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전면도발을 감행한다면 한미연합사체제에 의해 미국의 즉각적인 자동 참전이 이뤄지고 대량보복에 의해 북한정권이 괴멸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미연합방위체제가 존재하는 한 전쟁도발을 감히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한국전쟁 이후 변함없이 ‘연합사·유엔사 해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앞으로 전작권이 이양되고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미국은 ‘자동·즉각 참전’에서 ‘지원’으로 역할이 변경되게 된다. 대북 억제력이 당연히 약해진다. 대량살상무기로 중무장한 북한정권은 전쟁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북한의 오판에 의한 한반도 전쟁 발발 개연성이 더 높아진 것이다. 연평해전·서해교전과 같은 소규모 전투도 바로 전쟁으로 쉽게 비화될 수 있다.
80 고령의 한국전쟁 영웅인 백선엽 장군이나 김성은 전 국방장관 등이 왜 뙤약볕을 마다하고 거리로 나가 ‘전작권 단독행사 반대, 연합사 해체 반대’를 외쳐댔는지를 우리 국민은 명확히 알아야만 한다. ‘전작권’과 ‘한·미 혈맹’은 한국전쟁에서 북한과 싸워 조국을 구해본 경험자만이 그 중요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안보 전문집단인 성우회·재향군인회·3군사관학교 총동창회 등 227개 시민단체에서 하나같이 안보를 우려하면서 전작권 이양에 반대하고 있다. 250만 국민이 이미 반대서명에 동참했고 지금도 서명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이 정부 초기의 국방장관·외무부장관·청와대 국방보좌관·합참의장·3군 참모총장·연합사부사령관·해병대사령관도 모두 동참하고 있다.
군 원로들은 2012년에 연합사가 해체되면 북한은 재래식 전력으로 남한공격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대량살상무기(핵·화학·생물·탄도탄)를 모두 갖추고 117만의 정규군도 모자라 770만의 예비전력을 구축하고 있는 군사강국이다. 먼저 조기경보 징후 없이 한국 내에 이미 침투해있는 수많은 고정간첩과 좌익분자로 하여금 고압송전선(산과 들판을 통과하는)을 공격하여 전기·수도· 교통과 통신을 일제히 차단시켜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동시에 땅굴과 인천 기습상륙을 통해 지상군을 투입하여 서울과 인천을 조기에 점령한다. 서울이 휴전선에서 20Km에 위치하고, 인천이 해주의 공기부양상륙정으로 1시간 거리 내에 있다. 기능이 완전 마비된 상태에서 하루 정도면 수도 서울은 적에게 넘어가고 전쟁은 끝난다. 우리가 건설한 통일로와 경의선은 적(敵)의 양호한 기동로로 활용될 것이다. 이것이 전쟁을 경험한 군원로들이 보는 북한의 남침 예상도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2012년까지 정보감시정찰(다목적 위성·공중조기경보통제기), 지휘통신(군 위성통신체계·C4I전력화), 정밀타격(이지스함·F-15K급 전투기 확보)분야 핵심전력을 집중 확보하여 억제력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문제는 경제성장률 둔화로 소요전력을 계획대로 확보할 수 있느냐이다. 설사 정밀장비를 도입한다고 바로 전투력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하드 웨어보다 소프트 웨어가 더 중요하다. 비교적 단순한 잠수함의 경우도 선진국의 실전경험에 의하면 보유 후 5년이 지나야 함정 운용이 자유롭고, 14년이 지나야 실제전투력이 발휘된다고 가르친다.
그동안 한국은 연합사의 전쟁억제력만 믿고 국가전쟁 수행에 투자를 소홀히 했다. 아파트 근처에 방공호 하나 없고 가족용 방독면도 준비하지 않을 정도로 전쟁을 잊고 살고 있다. 작년에 북한이 탄도탄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해도 국민 모두 남의 나라 일로만 생각했다. 누가 이런 일에 민감하기라도 하면 우리 사회에서 바로 냉전세력이라며 ‘왕따’ 당하기 십상이다. 외국에 나가있는 가족과 친구가 오히려 걱정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요순시대 태평성대였다. 반면에 북한은 1960년대부터 ‘4대 군사노선’을 추진하여 전국토가 요새화되어 있고 주민이 상당기간 지하시설에서 생활이 가능하다. 예비군의 훈련기간도 길며 훈련수준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선군정치'다.
김장수 국방장관은 한반도 유사시 미 증원군에 대한 미 의회의 승인 문제와 관련, “미 증원전력 전개 90일 이내에는 미국 대통령 권한으로 전쟁을 치를 수가 있다”면서 “이러한 것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된다.”고 2월 26일 기자회견에서 특별히 강조했다. 하지만 연합사가 해체된 상태에서 미국의 증원전력에 우리의 안위를 맡긴다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2003년 이라크 戰에서 미국이 우리에게 전투병 파병을 간절히 요청했다. 우리는 장병들의 손실을 우려해 이를 거절했다. 대신에 비전투원(3,000여명)을 파병하는데도 국내의 반대여론 무마와 안전주둔지 물색으로 1년이 걸렸다. 그러면 역으로 미국이 수만 명의 병력손실이 예상되는 한반도 전쟁터에 수십만의 전투원을 파병하는데 어느 정도 걸리겠는가. 우리 아들·딸은 소중하여 혈맹인 미국을 위해 희생할 수 없고, 미국의 아들·딸은 한국을 위해 항시 희생할 준비를 하고 있단 말인가.
북한의 위협뿐만 아니라 주변국(중국·일본)이 가해오는 안보위협도 만만치 않다. 우리가 반미자주를 본격적으로 내세우기 시작한 2003년부터 중국은 ‘동북공정’을, 일본은 ‘독도영유권’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급기야 중국은 2006년 9월 명백한 우리의 영토인 이어도(해양과학기지)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과거 한미동맹이 견고할 때는 없었던 일이다. 그래도 연합사체제가 존속할 때까지는 걱정할 것이 없다. 그러나 해체이후에는 전적으로 우리 힘으로 지켜야 한다.
중국과 일본의 경제력이 우리보다 훨씬 크다. 군사력도 월등하다. 국방비는 중국이 7배, 일본이 3배 이상 크다.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주변국에서 우리를 평가할 때, 한국에는 진정한 군사력이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병력이 67만 명이고, 국산 전차·구축함과 F-15K 전투기가 있으나 원거리타격 대량살상무기와 타국에 투사할 수 있는 전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국은 한국이 아무리 ‘국방개혁 2020’을 자랑해도 위협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다. 종이호랑이 취급이다. 적어도 군사력의 일부(10~20만 명과 장비)를 안전하게 적(敵)의 영토에 상륙시킬 수 있어야 진정한 자주국방인 것이다. 이 정도의 군사력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경제력이 지금보다 6~8배 이상 커져야 한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설사 달성이 되더라도 중국·일본과 대적할 수준은 결코 아니다. 이제 우리는 북한·중국·일본의 위협에 포위된 사면초가의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다. 이와 같이 연합사체제는 북한의 위협이 완전히 소멸되거나 우리 주도로 통일한 후에도 필요하다. 주변국의 국력이 월등하고 한반도에 대해 오랜 세월 영토야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례에서 배워야 할 좋은 교훈도 있다. 1960년대 필리핀이, 그리고 1970년대에 월남이 우리와 같이 시도했다. 적(敵)이 있던 월남은 공산화 되었고, 적(敵)이 없던 필리핀은 중진국에서 후진국으로 전략했다.
한국전쟁 직전에 우리 국방부는 자신감에 도취되어 이승만 대통령에게 명령만 내리면 국군이 진격하여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고 허풍을 떨었다. 정작 북한군이 남침하자 3일 만에 수도를 내어주고 말았다. 미국과 유엔군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국가소멸 직전에서 회생했다. 1970년대 최초로 ‘자주국방’을 제창하고 ‘방위세’를 신설한 박정희 대통령도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환경을 고려, 국가생존을 위해 1978년 ‘한미연합사’를 창설했다. 강력한 연합사체제하에서도 북한은 지금까지 ‘한반도 공산화’를 목표로 끊임없이 도발을 자행하고 있다.
1980년대 서해 NLL 도발사태와 간첩선 침투, 1993년 1차 핵위기,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1998년 탄도탄(대포동 1호) 발사, 동해 잠수정·남해 간첩선 침투, 1999년 연평해전이 있었다. 2000년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한 6·15 공동성명이 있은 후에도 변함없다. 2000년 서해5개 섬 통항구역 선포, 2001년 북한 상선 영해침범, 2002년 서해교전 및 2차 핵위기, 2004년 서해교전 도발함정(등산곶684) NLL 재침범, 2005년 핵보유 선언, 2005/2006년 NLL 재설정 요구, 2006년 탄도탄발사 무력시위, 핵실험으로 과거 어느 때 보다 그 도발양상이 격화되고 있다. 안보감각이 마비된 국민이 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은 뿐이다. 그러나 연합사는 묵묵히 그 역할을 다해왔다.
전작권 이양에 미국이 쉽게 합의한 배경은 이렇게 판단된다. 냉전이후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하락했고 2002년부터 반미감정이 극도로 고조된 상태에서 한국의 집요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미국은 한국으로부터 무거운 안보의 짐을 벗어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반도는 이라크와 달리 전쟁 수행 시 수많은 미국군인의 손실이 불가피한데 이것에서 해방되게 되어 퍽 다행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실체도 없는 ‘자주’를 추구하다가 국가존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영국·독일·이태리에 미군이 주둔해있고 ‘전작권’을 나토사령관(미국군)에게 주고 있다고 자주국가가 아니라고 말한 경우를 들은 적이 없다. 현대국가의 ‘자주’개념은 군사동맹을 하든, 동맹군이 주둔해있든, ‘전작권’을 누가 갖고있든지 관계없이 외국의 침략을 사전에 억제하여 국가를 안전하게 보존하는데 본질이 있는 것이다.
충정어린 군 원로들의 대통령과의 면담도 거절된 상태에서 정부와 안보단체 간 평행상태의 안보논란이 상당기간 지속되고 있다. 국가 경제사정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계속 어렵다. ‘국방개혁 2020’에 막대한 예산도 필요하다. 국민은 이런 와중에서 더욱 불안하다.
비생산적인 논쟁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국가이익에도 도움이 안 된다. 국회는 국민의 안보불안 해소를 위해 안보청문회를 조속히 개최할 필요가 있다. 북한 2차 핵위기(2002년 말)가 발생되어 국가안보가 어려울 때, 국방부는 2003년 군 복무기간을 ‘2개월 단축’하고 2004년에는 북한에 대한 ‘주적개념’도 없앴다. 더구나 2006년 7월 탄도탄 무력시위에 이어 10월 핵실험을 하는 엄중한 도발적 상황 하에서 10월에 ‘전작권’을 전격 합의했다. 2007년 2월에는 또 ‘군 복무기간 6개월 추가 단축하는 방안’을 발표하고 ‘전작권’ 전환시기까지 서둘러 못 박았다. 2월 21일의 ‘국회국방위 반대 결의안’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사유가 무엇인지도 밝혀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잘잘못을 분명히 따져야 한다.
국민이 안보의 감시자가 돼야 한다. 이 후에 로드맵(Road-Map)을 작성하든지 재협상을 해도 늦지 않다. 대한민국의 안보는 국민 모두에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konas)
김성만 (前 해군작전사령관, 예비역 해군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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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를 국민의 의사와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한채 서두르는 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이 아니다. 전작권 인수 준비가 완료 된후 검토해야 할일이므로 국민과 국가를 위해 반드시 전작권 이양문제는 재협상 해야 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3-07 오전 10:15:24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한다는 의도라면 전시작전권 환수를 재협상을 하여야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반대하는 것을 강해하는 의중이 무엇인지 알수가 없다. 진정 한미 연합사를 해체하고, 한미관계를 고착시키고 말 것인가?</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07-03-06 오전 9:43:19전작권 이양을 반대하는 미국과의 재협상은 외교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감정적으로 나올 게 아니라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 한국군이 자주국방 능력을 빨리 갖추도록 노력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보다 견고하게 유지해 나가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
2007-03-06 오전 8: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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