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은 북핵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라 '次惡'이다"
北核 6자회담이 중대 국면에 접어들었다. 북한과 직접 대화도 불사하겠다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10여 젼 전 빌 클린턴 미 민주당 행정부가 보여줬던 北·美간 蜜月관계가 재현돼 6자회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북한은 이미 부시 행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테러 지원국 지정 해제라는 오랜 숙원사업을 이뤄냈다.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10월 1∼3일 세 번째 訪北 길에 올라 북측 수석대표인 金桂冠 외무성 부상과 북한이 신고한 핵 프로그램에 대한 검증 조치들에 잠정 합의한 것이다.
明文化되지 않고 구두로만 된 합의 논란
이에 따른 상응조치로 미 국무부는 같은 달 11일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으로서는 대한항공(KAL) 여객기 폭파 사건으로 지난 1988년 미국에 의해 '테러에 가담했거나 지원한 나라' 명단에 포함된 지 20년만에 테러 지원국이라는 汚名의 꼬리표를 떼는 순간이었다.
미국의 '對北 敵對視 정책'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던 테러지원국 해제가 이뤄졌지만 핵 프로그램 검증을 위한 시료채취를 둘러싼 북·미간 합의가 명문화되지 않고 구두로만 이뤄진 것으로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일면서 6자회담 재개가 지연되자 결국 韓·美·日 정상이 11월 만나 6자회담을 12월 초 개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렇다면 2003년 8월 시작돼 올해로 5년을 넘긴 6자회담은 앞으로 순항할 것인가? 6자회담을 통해 궁극적으로 非核化가 이뤄지고 북·미 관계도 개선될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이 같은 질문에 누구도 속시원하게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지난 5년여간 6자회담이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 지켜봐 왔다면 그동안 넘어온 고비만큼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더 많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김정일 '건강이상설'과 미국의 정권교체, 이명박 정부의 新대북정책 소용돌이 속의 6자회담
그렇다면 6자회담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 참가국 중 하나인 우리나라는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 특히 북한 김정일의 '건강 異常설'과 8년 만의 미국 정권 교체, 한국의 새 정부 출범 후 남북 관계 재정립 등 적지 않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6자회담의 앞날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6자회담의 지난 몇 년간 우여곡절을 살펴보자. 지난 2005년 11월 제5차 1단계 회의 이후 북·미간 異見으로 1년 여간 空轉하던 6자회담은 이듬해 7월5일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10월9일 핵실험 등으로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북의 미사일발사·핵실험 등 벼랑끝 전술이 미·북 양자 주도의 파행을 이끌었다
북한과의 양자 협상을 거부하던 미국은 급한 마음에 2006년 10월말 베이징에서 북측과 전격 회동했으며 결국 2개월 뒤인 12월 6자회담이 13개월만에 가까스로 재개됐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이라는 '벼랑 끝 전술'이 미국을 양자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것이다.
이 때부터 6자회담은 북·미 주도의 파행적인 형태로 진행됐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對北 경제 지원뿐 아니라 미국의 대북 금융 제재와 테러 지원국 명단 삭제 등 각종 제재 해제를 우선시했기 때문에 나머지 5자는 이를 지렛대로 삼아야 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대표적인 대북 금융 제재인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자금 凍結 해제 문제를 둘러싸고 수개월에 걸친 줄다리기가 이어지다가 결국 2007년 1월 북·미간 베를린 합의가 이뤄졌고 이는 곧 다음 달 열린 6자회담에서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쇄·봉인(1단계), 불능화 신고(2단계)에 대한 상응조치로 중유 100만t 상당의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 및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 추진'이라는 '2·13합의'를 이끌어 냈다.
북한과 나머지 5자의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른 의무 이행을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명시한 2·13합의 도출로 참가국들은 한동안 들뜬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해 7월 한 달만에 끝난 핵시설 폐쇄·봉인 조치 이후 본격적 핵 폐기 과정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핵시설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 신고라는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재가동하는데 1년 이상 걸릴 정도로 핵시설을 못 쓰게 만든다'는 개념의 불능화는 6자회담에서 처음 도입된 것인 만큼 이행 자체가 쉽지 않았다. 참가국들은 2·13합의 이후 3월과 7월 회담을 2차례 더 열어 불능화 방법에 대해 머리를 맞댔다. 불능화와 함께 비핵화 2단계의 핵심인 핵 신고에 대해서는 내용이나 수위에 대한 이견이 첨예해 협상이 진전되지 못했다.
결국 그해 9월 북·미가 또 제네바에서 마주앉았다.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뿐 아니라 2002년 2차 北核 위기의 원인이었던「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Uranium Enrichment Program)」도 핵 신고에 포함시키는 문제를 비롯, 불능화와 신고완료 시점 등에 잠정 합의를 이뤄냈다.
힐 차관보, 부시 친서들고 북한 찾아가기도
이를 바탕으로 9월말 열린 6자회담에서 불능화와 신고를 12월말까지 완료하고 이에 대한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 및 테러 지원국 해제도 동시에 추진키로 합의했다. 회담은 9월 30일 종료됐지만 합의문은 사흘이 지나 '10·3합의'로 발표됐다.
이 합의문에는 처음 보는 문구가 포함됐는데 '북한은 핵을 확산시키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북한의 UEP 개발 의혹에 이어 시리아와의 핵 협력설이 강하게 제기된 결과였다. 미국내 강경파들은 북한이 시리아에 핵시설 등을 지원했다며 비확산에 대한 약속을 공식 신고서로 받아내야 한다고 협상파를 압박했다.
북한은 11월부터 불능화 작업을 시작했지만 UEP와 핵협력에 대해서는 완강하게 부인했다. 10·3합의 이후 북한은 불능화와 경제·에너지 지원을 핵 신고와 테러지원국 해제를 '행동 대 행동'원칙에 따른 상호 의무 이행 패키지로 내세웠다.
북한의 불능화 작업에 따라 매월 중유 5만t이 지원됐지만 신고 문제는 UEP와 핵 협력이라는 장벽에 부딪쳐 해를 넘기게 됐다. 힐 차관보가 12월 조지 부시 대통령의 親書를 들고 방북한 것도 이를 설득해서 비핵화 2단계 마무리를 앞당겨 보려는 노력의 결과였다.
그러나 핵 신고가 지연되면서 북·미간 갈등은 더욱 고조됐다. 북한은 지난 1월 성명을 통해 '지난해 11월 미국 측에 UEP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우라늄 농축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 수입 알루미늄관을 건냈고 군사시설도 참관시켰다'며 핵신고 의무를 다 했다고 주장했다. 불능화 신고완료 시한이 넘어가고 북한이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불능화 속도까지 지연시키자 미국은 또 다시 북한과의 직접 담판에 나섰다.
지난 2월 베이징 회동에 이어 3월 제네바에서 만난 힐 차관보와 김계관 부상은 신고 수위와 테러 지원국 해제 여부를 긴밀히 협의했다. 이어 4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협상은 'UEP와 핵 협력에 대한 미국 측의 의견에 북측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비공개 합의문(confidential minute)을 도출해 냈다. 이 비밀문서는 플루토늄과 핵시설 등을 골자로 한 공식 신고서와 별개로 처리한다는 것이다.
2008년 처음 열린 회담(7월)에서도 원칙만 논의, 이견 못좁혀
북·미 싱가포르 합의 이후 핵 신고는 급물살을 탔다. 북측은 지난 5월 방북한 성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에게 1만8000여 쪽에 이르는 원자로 가동일지를 넘겼다. 이어 6월 26일 의장국인 중국 측에 공식 핵 신고서가 제출됐으며 부시 대통령도 이에 호응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기 위해 의회에 통보했다고 발표했다. 테러지원국 해제 착수가 발표되자 북한은 27일 전 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앞에서 영변 핵 시설 원자로 冷却탑을 폭파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20년 북핵 역사의 상징인 거대한 냉각탑이 2∼3초만에 무너져 내리자 북핵 외교가에서는 이를 환영하면서도 본격적인 비핵화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신중론이 대세를 이뤘다.
이 같은 신중론은 오래지 않아 맞아 떨어졌다. 핵신고는 이뤄졌지만 이제부터는 철저한 검증이 숙제였다. 미국측은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가 이뤄졌는지를 검증해야 한다며 북한을 압박했다. 미국 측은 지난해 10·3합의 때부터 신고와 검증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강조해온 만큼 테러지원국 해제 관련 의회 반대 시한인 45일 안에 핵신고 검증을 위한 합의를 시도했다. 올들어 지난 7월 처음 열린 6자회담에서도 참가국들은 검증 방안에 대한 합의를 추진했으나 원칙만 논의했을 뿐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당시 미국은 공식 신고서 외에 비공개 합의문에 담긴 UEP 등에 대해서도 검증해야 한다며 미신고시설 등에 대한 사찰과 시료(샘플) 채취 등을 요청했으나 북한은 이를 '강제 사찰'이라며 거부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역할에 대해서도 첨예하게 맞섰다.
오바마 행정부에 새로운 요구사항 내놓는 등 줄다리기를 이어갈 가능성도
결국 테러지원국 해제 시점인 8월 11일이 됐지만 미 국무부는 북측과 검증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며 공식 해제를 연기했다. 이에 북측은 미국 측이 약속을 어겼다고 비난하면서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바로 북측이 80%쯤 진행해 왔다고 주장하는 핵시설 불능화 작업을 중당하고원상복구에 착수한 것이다.
북측이 핵시설을 감시하고 불능화를 진행하던 IAEA 요원과 미국측 불능화 팀의 핵시설 접근을 막고 재처리시설에 핵연료를 넣겠다고 위협하는 등 '살라미 전술'을 구사하자 나머지 5자는 겉으로는 차분하게 대응했지만 6자회담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후퇴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북측에 검증 협상에 나서라고 경고하던 힐 차관보는 10월 1일 訪北 길에 올랐다. 2박3일간의 협상 끝에 돌아온 그의 손에는 A4 용지 3장짜리 합의문이 들려 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여가 지난 11일 미국무부는 "북측과 신고시설에 대한 접근과 시료채취 등 과학적 절차 이용에 합의했다."고 밝히면서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를 발표했다. 북측도 이에 호응하며 불능화 작업을 재개하고 검증에 협력한다고 밝혔다.
북·미간 합의에 대해 한국 등 다른 참가국들은 "환영한다"면서도 아쉬움이 남은 표정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북·미간 도출한 합의문에는 핵 검증의 핵심 방법인 시료채취에 대한 명시 없이 과학적 절차를 이용하는데 합의한다고만 돼 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당시 북·미는 시료채취는 2단계이후 할 수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구두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측 대표단은 "비핵화 2단계가 진전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철저한 검증을 위해 검증 의정서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6자회담 우리측 수석대표인 김숙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향후 검증과정에서 IAEA(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며, 신고 시설에 대한 검증만으로 미흡할 경우 미신고 시설에 대한 검증도 추진해야 한다"며 "6자회담이 열리면 북·미간 합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필요하다면 보완해서 구체적 검증 의정서가 채택돼야 검증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일 건강이상설로 '포스트 김정일 체제' - 군부나 당이 권력을 쥐게 될 경우에 대한 대비도
이는 북·미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검증 조치들에 대한 구두합의가 이뤄졌지만 검증의정서 채택에 이어 검증이행계획서 작성, 실제 검증까지 지루한 공방전이 벌어질 것임을 예견케 한다. 특히 6자회담이 美 大選 이후로 늦춰지면서 북한이 직접 대화를 천명한 오바마 행정부에 새로운 요구사항을 내놓는 등 줄다리기를 이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의 입장과 대응방안은 무엇인가? 지난 6월 북한의 핵신고서 제출과 부시 대통령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 발표에 대해 "환영하지만 핵무기가 신고서에 누락된 것은 유감스럽다."고 밝혔던 한국 정부가 이번에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북·미간 검증과 테러지원국 해제 합의에 동의하게 된 것은 어떤 이유일까?
한 정부 소식통은 "미 정부가 부시 대통령의 임기 말 북한의 핵시설 복구 등 벼랑 끝 전술로 궁지에 몰리면서 마지막 승부수를 던져 최악의 결과를 막음과 동시에 외교적 성과를 보이려는 것으로 관측된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가장 긴밀히 협의하면서 전폭적인 지원을 요청했고 우리 정부도 한·미 공조의 중요성을 감안해 별다른 이견없이 동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외교부측의 보고를 받은 청와대도 "한·미 공조가 잘 이뤄져 6자회담이 진전하는 계기가 됐다."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추후 검증의 정서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져 철저한 검증이 이뤄져야 하고, 마지막 단게인 핵 폐기에 대한 로드맵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6자회담은 북핵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라 '次惡'(less evil). 그래도 代案없으니 끌고가야"
정부 한 관계자는 "한·미간 북핵 문제에 대한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2단계를 끝내고 3단계인 핵 폐기로 넘어갈 수 있도록 미 차기 정부와 손발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그동안 협상 과정에서 보였듯이 플루토늄 등 핵물질의 추가 생산과 핵확산을 막는 것을 목표로 삼는 반면 우리측은 핵무기 등 기존 핵물질을 모두 폐기해 한반도 비핵화를 이뤄야 통일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결국 6자회담이 성공하려면 서로의 목표를 잘 조화시켜 북한이 궁극적으로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틀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와 함께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설로 '포스트 김정일 체제'가 논의도면서 군부나 당이 권력을 쥐게 될 경우 핵을 더 놓지 않을 수도 있고 오히려 전략적으로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에 편입할 수도 있어 북한의 권력 체제 변화에 대한 대응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 한 당국자는 "6자회담은 북핵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라 '次惡'(less evil)이다. 그래도 다른 代案이 없으니 끌고가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그렇게도 원하던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되고 적어도 1년 이상 걸릴 핵 검증 작업을 앞둔 지금, 6자회담은 참가국들 간 어떻게 전략을 세우고 협상하느냐에 따라 최선이 될 수도 있고 최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를 둘러싼 북핵 문제가 우리의 안보환경과 '통일 한국'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는 만큼 한국이 더욱 주도적으로 나서 6자회담을 최선책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의 정권 교체로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의 對北정책 '엇박자'가 우려되는 만큼 어느때보다 한·미공조를 강화해 북한이 궁극적으로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어야할 것이다. 6자회담이 동북아 정세를 둘러싼 각 국의 공조와 남북, 북·미, 북·일 관계의 발전적 미래, 궁극적으로한반도 평화와동북아 평화·안보체제 구축의 발판이 될 것인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한국논단 1월호)
김미경(서울신문 정치부 기자)
- 2026.10.17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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