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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병 롤 모델 수기집〕나는 테란의 SCV!

Written by. 이창수   입력 : 2013-01-30 오전 11: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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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2012년 8월 육·해·공군 및 해병대 등 현역병을 대상으로 지원입영 복무 후 취업 또는 학업에 도움이 된 사례를 모은 ‘현역병 지원입영 롤 모델 수기집’ 『내청춘에 충성』에 실린 내용임. 이번 수기집은 실제 사례를 통해 현역병 모집제도의 장점을 소개하고, 입영대상자 스스로 복무 할 군과 복무분야를 선택해서 지원 입영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편집자 주)

 IMF가 있어 나라경제에 대한 어두운 평가가 있던 97년도 말 대학입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인문계고교 이공계 학생이던 나는 대학등록금을 감안하여 지역에 있는 국공립계 대학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대학은 현실적인 상황을 감안하여 선택하였지만, 전공은 내가 예전부터 공부해보고 싶던, 어쩌면 환상을 가지던 전공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래서 건축학도가 되기로 결심했다.

 98학번이 된 나는 지금 신입생들이 스펙을 쌓기 위해 토익이나 봉사활동, 기타 경력을 준비하는 것과 대조되게 친구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빠져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그냥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건축학과 내에 있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건축 답사도 다니고 학술대회도 준비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열심히 즐겁게 시간을 보내던 중 인식할 새도 없이 친구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그 많던 친구들이 어디로 간 것일까? 다들 한꺼번에 졸업을 한 건 아닐테고, 건축학과라 남학생 비율이 많았던 과에서 푸릇했던 나의 친구들이 줄어들고 능글거리는 예비역 선배들로 교체되어 있었다. 군 입대라는 핵심화두를 나는 놓치고 있던 것이었다.

 늦었지만 나도 2001년 11월 군에 입대하였다. 훈련소에서 점점 쌀쌀해지는 날씨와 군기에 눌려 바짝 얼어갈 때 기초훈련을 받고 군사특기와 관련하여 조사할 때가 있었다. 나는 건축학과의 특성을 살려 공병 특기로 지원하였고 병과교육을 공병학교에서 받았다.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 속 이론은 천천히 내 머릿속에 지우개가 살짝 살짝 지우고 있을 때였다. 솔직히 공병이 뭔지도 모르고 입대를 했다.

 공병은 ‘전쟁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특기라고 공병학교 교관이 항상 강조했다. 전쟁이 발발한다면 총 잘 쏘고 최첨단 장비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하는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공병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느낀 것은 입대 전 게임으로 접했던 스타크래프트 테란족의 SCV와 같은 역할을 하는 중요임무라는 것이었다.

 빠르게 나아갈 수 있는 기동성을 마련할 수 있는 교량/부교설치라든지 파괴된 시설물의 구축으로 방어능력을 UP 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정리해 보자면 공병은 전시에 적이 이용할 만한 구조물을 폭파시키고, 장애물설치, 지뢰설치·제거, 교량·부교설치 등을 담당하며 실제로 전쟁 발발 초기에 전방에 투입되어 지뢰설치, 교량폭파 등 적의 진입을 지연시키고, 아군이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부표를 설치하며 전쟁이 종결되면 지뢰제거, 건설 등을 담당하는 것이 주 임무이다.

 우리나라 한반도 같이 수많은 하천과 산맥이 가로막힌 지형에서 공병의 역할은 중요할 것이다. 군기가 바짝 들어 교육을 받으면서 어느덧 나는 뭔가 내가 맡은 일이 중요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큰 사명감으로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넘쳐 오르는 정열을 군기로 잘 단도리를 쳐서 부동자세를 유지하던 그 때 자대배치를 받았다. 강원도 인제 옆 원통이었다. 정말 깊고 한번 가기 위해서는 꼬불꼬불하는 길을 지났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우선 공병대에서 막연하게 ‘공사를 한다면 삽질로 할까?’라는 무식한 생각을 하고 갔는데, 막상 업무설명을 듣고 실제로 내가 하던 업무는 공사감독병 이었다.

 공사감독병은 우리 부대에서 공사할 것이 있다면 파견되어 현장관리 감독을 하는 것이었다. 일개 병사가 현장감독이라고 하며 큰 걱정을 하였지만 공병장교의 명령으로 움직일 수 있기에 걱정은 잠시 뒤로 미룰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새로운 막사를 짓는다든지 해서 계약을 체결하여 공사시공을 맡게 된 민간업체가 시공을 맡을 때 현장의 자재사용, 작업진행상황, 근무자 상황 등을 관리하는 역할이었는데 교과서에서 보던 내용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실전을 그 당시 직접 배운 것이 사회생활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설계도면이 현실 속에서 구현되면서 실제 어떻게 눈앞에 나타나는지, 현실적 제약은 없는지, 시공방법의 장·단점 및 필요성 등을 현장에서 배우며 살아있는 지식을 얻었다.

 그리고 직접 만나는 민간인들이 건설업계 경력직이기에 살아있는 정보를 배우기도 했고 사회생활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부대에서 공사를 진행할 때도 있었지만, 부대 밖에서 도로를 내거나 확장하는 공사가 있을 때는 민간인들과 만날 기회도 있고 솔직히 부대 밖에만 나가도 다른 공기를 들여 마시는 기분이었다. 동료들에게는 미안했다고 지금 말하고 싶다.

 군부대에 지금 들어갈 수는 없지만 그 당시 부대 밖에서 공사가 진행되어 내가 관리했던 곳을 간다면 아련한 추억이 떠오를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고, 나는 내가 관리하던 시설물을 뒤로 하고 나올 수 있었다. 항상 공사감독만 하지는 않았다. 부대에 복귀 후에는 진행되는 사항에 대한 보고를 해야 했고 간부님의 지시 하에 서류작성도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같은 특기의 동료들과 우리는 군건설회사 직원들이라고 서로 농담으로 얘기한 기억이 난다.

 2012년 현재 육군 의무복무 기간이 21개월이라고 하는데, 부럽다고 해야 할까? 나는 26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2003년 1월 제대를 하게 되었다. 제대 후 복학을 한 후 일부 친구들이 학과 공부 적응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전공과 관련된 공병특기로 전역한 친구들은 이론과 실전을 적절히 결합시키고, 서로 했던 일이 비슷했던 공통점으로 많은 정보를 얻으며 서로 Win-Win 할 수도 있었다.

 졸업 후 취업을 할 때가 되었다. 다들 분주히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본인의 적성과 전공을 되돌아보고 전공과 다른 방면으로 직업선택을 우회하기도 하고 현실과 타협하여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도 몇 몇 있었다.

 그러나 군에서 예비단계의 건설회사 실무를 경험해 보고 나온 나는 직업적 선택의 걱정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빠른 결단을 할 수 있었다. 공사감독병을 하면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감리회사에 입사를 하였다. 군 경력을 반영하여 같은 직종으로 취업을 하여 입사 시 군 경력의 일부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감리는 시공에 있어서 설계대로, 시방서대로 시공되는지 감시하고 검측하는 것이 주 업무다. 흔히 설계, 시공업무에 대한 기초지식이 있어야 감리업무를 할 수 있다고 하는데, 군에서 예비과정을 거치고 왔기에 회사 면접을 볼 때도 나의 장점으로 부각시키는 소재가 되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스펙이라는 것을 학교 입학부터 준비한다고 들었다. 건축학과 학생으로 본인의 적성과 전공이 맞다고 생각되는 친구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학업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군 복무를 내 전공과 관련된 분야에 지원하여 입영한 후 군 복무를 한다면 나중에 관련 회사에 들어가서도 너무나 큰 도움이 될 거 라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싶다.

 군 생활을 무조건 수식으로 계산하여 평가할 수는 없지만 부가적으로 인정되는 군 경력 외에 그곳에서 배워 온 실전이 나에게는 시나브로 젖어들어 나의 자산이 되었다. 이왕 대한의 건아로서 의무를 다한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움직이기를 권하고 싶다.(Konas)

이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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