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병 롤 모델 수기집〕유령과 감자
본 내용은 병무청(청장 김일생)이 2012년 8월 육·해·공군 및 해병대 등 현역병을 대상으로 지원입영 복무 후 취업 또는 학업에 도움이 된 사례를 모은 ‘현역병 지원입영 롤 모델 수기집’ 『내청춘에 충성』에 실린 내용임. 이번 수기집은 실제 사례를 통해 현역병 모집제도의 장점을 소개하고, 입영대상자 스스로 복무 할 군과 복무분야를 선택해서 지원 입영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편집자 주)
나는 공군 병 559기 01군번 서상원 예비역 병장이다. 벌써 제대 한지 10년이 다 되어 간다. 지금은 과연 몇 기수가 이 더운 여름날 땡볕 아래 훈련을 받고 있을지 궁금하다.
제목을 보면 과연 어떤 의미 일까 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아 하!!”하고 나름 뜻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공군에서의 유령은 F-4D 팬텀 전투기를 뜻하고, 감자는 전투기에 장착하는 미사일이나 폭탄을 뜻하는 군대에서의 은어이다.
유령과 감자!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6.25 당시부터 팬텀기는 우리나라의 주력 전투기로 많은 공을 세운 놈이다. 감자란 말은 내가 공군에서 받은 특기이다. 지인의 소개로 병무청에서 이런 공모전을 한다기에 인생을 조금 더 살아온 선배로서, 앞으로 공군에 많은 젊은이들이 지원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나의 사례를 소개 해본다.
제대 한지 10년이 되어가는 마당에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니 그때의 기억이 새롭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여 입가에 잔웃음이 나온다. Role Model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사람이지만 육군보다 4개월 긴 군 생활을 하는데도 선택하게 된 이유와 이로 인한 현재 인생에서의 도움은 무시 못 할 정도로 크다고 느끼는 바를 이야기 해 군 복무를 앞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몇자 적어본다.
사실 공군에 지원하게 된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전공에 따른 분야별 지원이 가능하고, 둘째, 대도시 주변 특히, 고향이 대구이다 보니 집 가까운 곳에 대한 동경. 마지막으로 정기적으로 주어지는 특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두 번째, 세 번째 이유 같은 경우는 군대에 입대하게 되는 모든 젊은 청년들이 갖는 막연한 바람 이겠고 나는 첫 번째,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보고자 한다.
처음에 나는 대학교 전공이 전자공학과라 전자, 통신 특기를 받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특기는 항공기 무기 정비특기!!! 아무것도 모르는 훈련병 시절 공군에 입대해서 비행기는 못 타볼지언정 전투기 근처에서 일 할 수 있다는 희망에 마냥 신났던 기억이 난다.
활주로에서 참새나 쫓고 이글루 안에서 청소만 한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젊은 나이에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기대에 잔뜩 기뻤던 기간이었다. 아무튼, 6주간의 훈련병 기간이 지난 후 기대하던 자대 배치를 받았다. 그것도 내가 원하는 대구 전투비행단으로... 물론 line이라 부르는 활주로에서 주 업무를 수행하는 중대에 지원도 했다.
처음 보는 항공기 이글루와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전투기를 보고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었다.
내가 처음 맡은 업무는 전투기 비행 훈련 전, 여러 가지의 미사일과 폭탄을 주어진 훈련임무에 따라 설치하는 것이었다. 물론 계급이 이병인지라 잔심부름이 주된 업무였다. 그동안 온실과 같은 집에서 부모님께 의지하고 살아온 인생에서 일정한 규율과 계급이 지배하는 군 생활은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전공과는 상관없이 난생 처음 보는 공구를 이용하여 무거운 것을 들고 설치하는 일이 대부분이라 어려움도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군 생활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될수록 몰랐던 공구들이 손에 익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내손으로 설치된 미사일이나 폭탄을 달고 활주로를 달려 창공을 가르는 전투기를 볼 때는 뿌듯한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현장 작업에 익숙할 때쯤 행정 업무로 보직 전환을 하게 되었다. 하루마다 항공 스케줄에 따른 작업자 및 업무 배분 지시를 하는 진행병이라 부르는 업무였다. 수시 때때로 변하는 항공 스케줄에 따라 각기 작업도 바뀌고 그것에 일일이 대응하여야 했으므로 하루 업무 시간 동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업무였다.
게다가 작업자 별로 공평하게 업무를 배분하여 지시를 해야 하는 일로 사람들과의 관계도 상당히 중요 했었다. 몸 보다는 머리로 업무를 수행하여야 하고 이로 인해서 육체적 보단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았다. 아이러니 하지만 나는 이 덕분에 육체적, 정신적 업무를 사회생활 전 미리 경험 할 수 있었다. 그때는 그렇게 시간이 더디 가고 까마득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30개월의 군 생활 동안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경험을 남들 보다 할 수 있어서 무척이나 뜻깊은 시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현재 나는 STX이라는 조선업 관련 회사에서 대리로 근무하고 있다. 맡은 업무는 제조업에서 이루어지는 생산 현장에서의 전체 관리 업무를 맡고있다. 오히려 대학교 전공 보다는 군 생활의 경험이 더욱더 많이 도움 되는 업무다.
업종도 기계 쪽이다 보니 공구를 사용하고 무언가를 조립하고 완성하는 곳이다. 군대에서 수행한 업무와 중첩되는 부분이 많아 처음 취업했을 때 업무 적응 하는데도 상당한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군대에서 처음 경험한 조직 내에서의 생활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소위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사람보고 인간되려면 멀었다는 표현이 몸소 느껴지는 부분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나 또한 군 입대가 인생에서의 쓸모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이 땅에서 떳떳이 살아가고 땀흘린 만큼 잘 살 수 있고 안전하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은 나를 포함한 이 땅의 젊은이들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때문이란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젊은 시절의 값진 군대 경험이 우리 나라 경제와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군대에서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말이 있다. 20대 초의 귀중한 2년이라 는 시간동안 내 인생에서의 값진 경험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멋진 대한 민국 남성이 아닐까? 글을 써 내려가면서 아련히 떠오르는 10년 전 기억들이 새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이 시간 이 더위에도 전·후방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군 장병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Konas)
서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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