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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 정전협정 - 자유대한의 재탄생

Written by. 오제호   입력 : 2015-07-16 오전 10: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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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년 7월 27일은 ‘휴전조약’으로 익히 알려진 정전협정이 있었던 날이다. 사실 이는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 및 중공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라는 정식 명칭을 축약하여 지칭하는 것이다.

 사실 이 협정은 정전(停戰)이라는 명목과 달리, 실질은 종전(終戰) 혹은 그에 준하는 정도의 완전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본 협정은 현대사 최대의 시련을 극복하여 자유 대한의 첫 걸음을 내디딘 점에서 중차대한 상징성을 지닌다.

 37개월간의 전쟁을 멈추게 한 판문점에서의 정전협정은 정전회담이 개최된 1951년 7월 10일 이래 약 24개월 만에 UN·중공·북한의 대표가 서언·5조 63항의 전문·11조 26항의 부록으로 구성된 협정문에 서명함으로써 체결되었다.

 이로써 남북 사이에는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이 설치되었고, 협정 체제의 이행을 위한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시위원단이 결성되었다. 이렇게 성립된 정전협정의 체제는 60여년을 넘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2013년 3월 5일 北은 일방적으로 협정의 백지화를 선언했으나, 2014년 7월 27일 C. M. Scaparrotti 연합사령관은 정전협정을 유지하기 위한 연합사 임무의 불변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럼에도 본 협정은 정전(停戰)이라는 명칭이 사전 상으로 ‘교전 중 어떤 목적을 위해 한때 서로 교전을 중지함’을 가리키기 때문에 일시적·잠정적 전쟁의 멈춤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막대한 고통과 유혈을 초래한 한국충돌을 정지시키기 위하여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체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으로 협정조항의 제약과 통제를 받는데 동의한다’고 명시한 협정문 서언을 살펴보면, 명칭만으로 협정의 불완전성을 속단하는 것은 신중한 처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협정의 기한을 ‘한국충돌의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로 명시함으로써 종전에 가까운 완전한 전투행위 중단을 보장하려는 것이 정전협정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기 10세기 이래 최초로 경험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반영구적으로 그치게 했다는 점 자체로서 7·27 정전협정은 큰 의의를 지닌다. 또한 본 협정은 현실에 입각한 대북관·국가보위를 위한 물리력의 확충, 그를 정신적으로 뒷받침할 보훈체계의 구축 등 6·25전쟁을 통해 배운 교훈을 실현해 나가는 전기가 되기도 하였다.

 한편 본 협정이 대한민국의 안보와 발전의 근간이 되어 온 대미 맹방관계 수립에 결정적 역할을 한 점 또한 현대사에서 중요한 상징성을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이렇듯 7·27 정전협정은 정전이라는 명목에서 파생되는 불완전성과는 달리 그 실질은 대한민국의 평화를 종전에 준하는 수준으로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전쟁의 반영구적 종식과 대한민국의 이념 및 안보체계 구축의 계기가 된 점 등 협정의 의의는 결코 평가절하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건립 2년 만에 3년여의 전쟁을 통해 국가의 물질·정신적 기반을 모두 잃은 대한민국에 있어 정전(停戰)의 성립은 전쟁으로 인한 시련을 극복하고 자유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는 전기가 됨으로써, 사실상은 자유대한의 현대사를 새로이 비롯되게 하였다는 중차대한 상징성을 지닌다고 하겠다. (Konas)

오제호 (의정부보훈지청 선양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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