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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에서 비롯된 ‘한미동맹’ - ‘한강의 기적’을 낳다

Written by. 오제호   입력 : 2015-07-20 오후 2: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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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동맹이라 함은 통상 ‘북한의 남침과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대한민국과 미국 간에 체결된 1953년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기초로 하여 형성된 동맹을 말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7·27 정전협정 체제의 공고화를 위해 체결된 것으로, 올해로써 62년간의 한반도 안위와 경제발전의 기반이 되어 온 한미동맹의 시초로 볼 수 있다. 즉 정전협정의 체결과 맞물려 성립된 한미의 맹방관계는 괄목상대의 번영을 이룩한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근간인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은 6·25 전쟁 이전부터 미국과의 장기적 차원의 호혜관계를 발전시키고자 했으나, 미국은 대한민국과 같은 약소국과는 군사동맹을 맺은 전례 없음을 이유로 동맹의 체결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6·25의 종결 후 공산주의 팽창의 저지선으로서의 남한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6·18 반공포로 석방으로 남한이 정전협상을 전복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한미동맹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즉 자유진영의 최전선에서 공산진영 팽창의 저지선 역할을 할 국가의 필요성과, 협정체제 유지 및 장기적 국가발전을 강력히 지원해줄 우방국에의 필요성이 7·27 정전협정의 과정을 통해 수렴된 것이 한미동맹 체결에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이에 유사시 호혜적 방위수단의 강구와 準자동개입 조치를 골자로 하는 조약문이 정전협정 기간 중 기초되어 정전협정 직후인 1953년 8월 8일 가조인되었다. 이후 한미합의의사록·한미행정협정 등이 체결되고, 한미연합사령부가 설치되는 등 한미동맹은 굳건히 유지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일 한반도가 위험에 빠질 경우, 28,500명의 주한미군과 유사시 즉시 투입될 美 해·공군의 5할을 상회하는 증원전력을 통해 한반도 안보에 크게 기여하는 등 한미동맹의 입지는 여전히 공고하다.    

 또한 한미동맹의 의의를 단순히 안전보장으로만 국한하는 것은 그 진가의 일부만을 다루는 것이다. 상호방위조약에 이은 합의의사록에 의거 미국의 막대한 경제원조로 전소된 국가의 기간(基幹)을 복구할 수 있었고, 군사원조로 국군을 70만 수준으로 확충하고 전력을 증강하여 진일보한 자위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다. 美의 군사원조로 우리는 국방지출을 최소화하여(1970년 전반까지 GNP대비 5%이하) 국가의 여력을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었다. 또한 미국의 동맹국 자격으로 월남전에 참전하여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었고, 우리의 수출주도형 산업발전도 미국이 5할에 가까운 한국 재화의 수요처가 되어 줌으로써 가능했다.

 이렇듯 확고한 안보·경제적 기반의 마련을 통해 대한민국은 오늘날 자유민주주를 대표하는 국가로 만방에 우뚝 설 수 있었다.

 통상 ‘한강의 기적’이라 하면 한국이 비교적 단시간 만에 이룬 경제적 번영을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한미동맹을 통해 이룩한 현대사상 놀라운 발전은 비단 경제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소화해냈고, 군사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냈으며, 국제적 위상의 측면에서도 G20의 반열에 들었다.

 이렇듯 우리는 70년간의 현대사에서 분야를 막론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으며, 이는 우리의 각고의 노력에 한미동맹이라는 든든한 지원이 더해져 일궈진 고귀한 현대사의 상징물인 것이다.(Konas)

오제호 (의정부보훈지청 선양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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