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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⑦] 시선의 방향

Written by. 조운지   입력 : 2017-09-17 오후 7:5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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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병무청이 주관한 「2017 사회복무요원 체험 수기」 공모에서 당선된 글임.(편집자 주)
                    
세상에서 에덴으로

 우리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가 가진 눈은 많은 것들을 차별하고 편견을 만들어 냅니다. 외모로 성격을 판단하고, 옷차림으로 그 사람의 수준을 매기고, 심지어는 부모의 재산에 따라 수저의 색이 정해지기도 하며, 태어난 지역으로 편을 가르기도 합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겉모습으로 상대방을 판단하기도 했었고, 다른 이의 시선에 ‘보여지는 나’가 무척이나 중요했었습니다. 그것이 과거형인 이유는 제가 사회복무라는 기회를 통해, 애광학교에서 수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들을 보았기에 저의 관점이 변화될 수 있었을까요?

 애광학교는 햇빛에 반사되어 찬란하게 빛나는 하얀 건물들에, 눈이 부실만큼 푸른 거제 앞바다를 끼고 있는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런 곳에 2년 동안 복무하게 된 것도 엄청난 행운이지만, 제가 찾은 보물은 이곳에 있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장애를 가진 이들이 소수이지만, 이곳은 재미있게도 비장애인이 소수자입니다.

 이러한 역설로 인해, 어떤 때는 마치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상상보다 규모가 큰 이곳은 애광원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 속해있기 때문에, 이곳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까지 합치면 그 수가 무려 300명에 달합니다. 이곳의 장애인들은 특수하게도 모두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 큰 학생들이어도 아기이고, 저보다 나이가 많아도, 심지어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아도 다 어린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의 동산 같은 이곳에서는 웃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도심 속 무표정한 사람들과는 달리, 이곳의 사람들은 길에서 저를 마주치기만하면 호기심어린 눈망울로 저를 쳐다보고, 함박 웃으며 인사를 합니다. 저를 보는 그 눈과 미소가 어찌나 맑고 순수한지 모릅니다. 세상에 그보다 순수한 것이 있을까요?

 아이부터 어른까지 티 없이 맑은 영혼들로 가득한 이곳이 바로 지상의 낙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담과는 거꾸로, 사회복무요원이라는 옷을 입고 에덴으로 오게 된 저는 이 경험이 너무나 소중하고 값집니다. 이런 기회를 감사히 여기고 행복해하는 저도,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죠.    

장애인의 세상

 처음 배치를 받고, 중증 장애인이 거주하는 곳에 파견을 나간 것이 기억납니다. 문을 열자마자 코를 찌르는 냄새와 괴상한 소리들, 여기저기 널브러져있는 장애인들을 보며, 기대에 부풀었던 마음이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2년을 보내야 하나라는 우울감이 제 눈의 색안경이 되어, 장애인들을 한층 더 불쌍하게만 보고, 거리를 두는 벽까지 세우고 말았습니다.

 그 벽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한건 학교에서 반을 맡아 학생들을 도와주기 시작할 때입니다. 제가 맡은 반은 고 3이었는데, 저보다 덩치가 큰 학생도 있었고, 의사표현 자체를 못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학생들과 밀착해서 얼굴을 마주하고, 식사시간에는 밥을 떠먹여 주었습니다. 양치질을 시켜주고 장애가 심한 학생의 대소변 처리를 도와주며 점점 이들과 가까워져 갔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들이 눈에 익어가고 그들의 행동과 표정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 미소를 짓고 있는 각기 다른 아이들이 말이죠. 이곳에 정말 수많은 학생들이 있지만, 이들은 비장애인보다 오히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합니다. 한 명의 사람이 하나의 우주라는 말이 이곳에서 와 닿았습니다.

 K군은 말더듬이 질문왕입니다. 하루에 수십 가지 질문을 저에게 쏟아냅니다. 주로 반복되는 질문들에 귀찮을 때도 있지만, 이 친구의 호기심을 채워주고 싶고 무엇보다 더듬더듬 거리며 힘겹게 질문을 하는 모습이 예뻐 모두 대답해주려 노력합니다.

 M군은 190cm의 거대한 아기입니다. 큰 바위 얼굴인 이 친구는 저를 볼 때마다 제 품에 안기려합니다. 제가 안아준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제가 이 친구의 품에 쏙 파묻히는 우스운 모습입니다. Y군은 학교에서 유명한 화장실 애호가입니다. 볼일을 자주 보기도 하지만, 화장실이 자신만의 공간이라고 인식하는지 수업이 지루하거나 심심하면 화장실로 휙 들어가 버립니다. 선생님들께서 항상 화장실 앞에 서있는 제 모습을 보고는, Y가 또 화장실에 있냐며 웃으시곤 합니다.

 W군은 학교 제일의 말썽꾸러기입니다. 책을 잘 읽지도 않으면서 신기하게도 책을 좋아하는지, 매일 아침마다 성경책을 옆구리에 끼고 등교하고, 이동수업 하는 교실의 책을 수집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친구의 가방엔 언제나 책이 한 가득입니다. 겉보기엔 모범생, 사실 귀여운 책 도둑인 이 녀석은 엄청난 동물 박사이기도 합니다. “원숭이 어디 있어?”, “검은 꼬리 누 어디 있어”라며 하루 종일 동물을 찾는 이 아이에게 “W 마음속에 있어”라고 하면, “노루 내 마음속에 있어요.”라며 자문자답 하는 재밌는 학생입니다. 사실 W는 동물이 산에 나올까봐 무서워, 금요일마다 하는 등산을 못 올라간답니다.

 그 외에도 복도에서 항상 동요를 부르고 다니는 아이, 앵무새 같이 모든 말을 따라하는 아이, 하루에 한번은 학교가 떠나가게 우는 아이, 음악만 나오면 흥겹게 춤을 추는 아이, 인사만 했을 뿐인데 부끄러워 도망가 버리는 아이 등 수 많은 아이들과 만나며 교감합니다. 걷는 모습만 봐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이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을 표현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져, 모든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고, 만나면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눈을 맞추고 인사하려 노력합니다.

 외모에서부터 말투 행동까지, 어쩜 그렇게 한명 한명이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항상 이 아이들이 보내는 순수한 미소를 보고, 그 미소에 화답해 따라 웃으니, 저도 이 아이들과 같이 순수해지는 기분입니다. 또, 이 친구들의 엉뚱하고 독특한 행동에 박장대소하며 웃으니, 저까지 웃음 바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 한 선생님께서 제가 처음에 비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아냐며 물으셨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제가 가장 많은 변화를 느낍니다. 이 아이들로 인해, 제가 얼마나 밝아지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말입니다.  

방향 전환

  아이들을 보며 제가 얼마나 큰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저 제가 가진 시선으로 이 아이들을 장애인으로만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장애인이니까 불쌍하고, 장애인이니까 못하는 것이 당연하며, 장애인이기에 나와는 다르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부모님에게는 세상 그 누구보다 소중하고 사랑받는 아들딸들이고, 도움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조금 시간이 더 걸리는 것뿐이며,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낸 편견 가득한 시선이 이 순진무구한 아이들에게 반사되어 저의 마음을 꿰뚫은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전해준 순수한 마음은 제 가치관까지 변화시켰습니다. 더 이상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순수하게 웃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익과 손해를 따지던 제가 희생하는 법을 배우고, 상대방을 사람 대 사람으로 진실하게 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세상 속 차별과 편견들이 이 아이들 앞에서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고, 또한 제 마음속에서 비롯된 잘못된 생각들이 이 세상을 왜곡해 바라본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준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제가 배우는 것이 훨씬 더 많았던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장애를 가지고 있던 것이 누구인가라는 생각이듭니다. 내가 가진 선입견과 편협한 마음들이 나를 속박했던 장애는 아니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처음 장애인들을 접했을 때, 험상궂은 외모라고 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흘리는 침이 더러워 피하려 했던 제 모습이 떠올라 부끄럽기만 합니다.

 사회복무요원이 될 수 있었던 이 시간을 통해, 저는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제 3의 시각기관을 얻었습니다. 측은해 보이기만 했던 장애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오히려 제가 가지지 못했던 것들은 얻은 이 시간이, 저에게는 긴 유학생활을 통해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소중한 배움이었습니다.

새로운 가족

 2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학생들과 수학여행도 가고 수련회도 갔었습니다. 같이 목욕을 하고, 살을 맞대며 장난도 치고, 또 같이 코를 골고 자기도 하는 등 잊지 못할 추억들을 많이 쌓았습니다. 비행기에서 승무원 호출 버튼을 계속 누르는 바람에 곤란했던 해프닝을 겪기도 하고, 하루에 수많은 약들을 복용하는 아이들의 이면도 보았습니다.

 어떤 때는, 간질이라 불리는 뇌전증 발작을 보기도 했는데, 올해 제가 맡은 학생이 수업 중 갑자기 심한 전신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엄청난 양의 구토를 2차에 걸쳐 하고, 온몸에 힘이 쭉 빠진 채 의식을 잃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바로 옆에 있었고, 그동안 복무 중 세 번의 간질 발작을 본 경험 덕에 당황하지 않고, 신속하게 선생님의 도움을 요청하고 응급구조팀을 불러 응급실에 이송했었습니다. 의식이 돌아오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려, 토사물을 치우면서도 가슴을 졸이며 기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맡았던 학생들은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때문에 남은 평생을 시설이나 집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저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아쉬운 일이지만, 이곳에서 맺은 인연을 복무가 끝나도 계속해서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저희 반 아이들을 종종 만나서, 맛있는 것들을 사주고 서로 마주보며 웃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아이들과 저에게 소소한 행복이 되지 않을까요. 외동아들인 저에게 귀여운 동생들이 한 가득 생겼습니다.

꽃이 질 무렵

 사회복무요원이 된 후로 만난 것은 장애인뿐만이 아닙니다. 수십 명의 교직원들과 사회 복무를 같이했던 10명의 동료들도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먼저, 가녀린 몸으로 이 시커멓고 개성 강한 사회복무요원들을 관리하는 진계장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언제나 저희를 인간적으로 대해주시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적이 많습니다. 사회에서도 이런 상사를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도 다음에 진계장님 같은 관리자가 되기를 꿈꿔봅니다.

 복무지에서 만난 동료들은 다 저보다 어린 동생들이었지만 하나 같이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중증 장애인들이 있는 어려운 반을 맡고, 지친 일과 후에 무거운 오르프를 옮기는 것에부터 청소나 삽질까지, 힘든 내색 없이 묵묵히 해내는 동료들을 보면 사회복무요원들이 정말 만능이라는 생각이듭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날 잡초 뽑기를 할 때에도, 별것 아닌 것에 웃으며 즐겁게 일할 수 있었던 것도 다 동료들 덕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꽃이 질 때 슬퍼하기도 하지만, 다음에 또 이 꽃이 얼마나 화려하게 피어날지를 상상하며 기대합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사회복무를 하며 얻은 양분을 통해, 이곳에 만발한 수국처럼 또 다른 곳에서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길 소망하며, 또다시 한 번 활짝 웃어봅니다.

조운지(거제애광학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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