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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㉔ <입선> 나를 성장시켜준 너의 웃음

"눈맞추고 이름 부르며 가까워진 아이들...더 많이 웃으며 행복하길"
Written by. 김현준   입력 : 2018-10-17 오후 2: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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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청원학교 소개

 성인이 되어 군대를 가야했다. 인대수술과 천족(병명)으로 인해 사회복무요원이 되었고, 근무지를 정해야 했다. 당시에는 가고 싶은 곳 중에 세 곳을 선택하여 추첨을 통해 가는 방식이었고, 나는 원주시청과 횡성 큰 빛 어린이집 그리고 지금의 근무지인 원주 청원학교를 선택하였다. 보육자격증이 있어 어린이집에 근무를 하고 싶었지만 근무지는 원주 청원학교가 되었다. 나는 사회복무를 위해서 학교에 대해 알아보았다. 청원학교는 원주에 있는 유일한 장애인특수학교였으며, 유치원부터 성인까지 다닐 수 있었다. 원주 청원학교에 와서 보니 학교는 장애인들의 지적 능력을 향상시켜줄 수 있는 수업과 학생들을 도와주기 위한 미술치료와 원예치료를 지원해주었다. 또한, 중・고등학생들의 경우 바리스타 수업과 더불어 도예와 제과・제빵 수업, 석고방향제 등을 만드는 공예수업도 지원해 주고 있었다. 학생들이 만든 물품중에 어떤 것들은 학교행사 등에서 팔리기도 하였다. 학교 정규수업을 마치고 방과 후 수업 때는 육상부, 역도부, 댄스부 등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있었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시험을 통해 정규반에 뽑힌 후 사회경제활동을 위한 수업을 받았으며, 스무 살 이상의 학생들 또한 사회적응 훈련과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일을 지원해 주고 있었다. 부모님들에게도 많은 지원이 있었는데, 분기별로 장애아동과 함께 할 수 있는 많은 프로그램들이 있었고,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의 가정일 경우 장애학생이 아니더라도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많은 부분을 지원하며 원주 청원학교는 장애인의 인권향상과 더불어 장애인의 사회적응을 도와주고 있었다. 학교 시설은 도서관을 더불어 아이들이 실습을 할 수 있는 세차실과 바리스타실, 공예나 도예 등을 할 수 있는 작업실이 있었으며, 쉬는 시간에 산책할 수 있는 정원과 체육관도 있었다. 장애인들이 용변 실수를 할 경우를 대비하여 학교 화장실에는 샤워를 할 수 있는 호스가 따로 구비되어 있었고 각 교실에는 양치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세면대도 있었다. 근무지를 조사하며 청원학교는 사회적약자의 편에서 인권향상을 위해 힘쓰고, 도와줄 있는 곳이라고 알게 되었고, 나 또한 장애인의 인권향상을 위해 힘 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미운정이 무섭다.

 대학을 다니며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사회복지 실습을 장애인 시설에서 했기 때문에 나의 다짐은 학생들을 사랑으로 보살피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복무에 임했다. 하지만 자신감은 한 순간에 무너졌다. 고등부인 우리 반은 남학생 4명과 여학생 2명으로 이루어진 학급이었고, 녹록치 않았다. 학생 2명의 통학지도를 도와주어야 했고, 식사 때에는 숟가락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 해 식사보조를 해주어야 했으며 이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끌어줘야 했다. 나를 때리는 아이도 있었다. 가끔 "고의로 해코지를 하는 게 아니냐ˮ며 핀잔을 받기도 했다. 이렇다보니 아이들을 돌봐주는데 힘이 들어 필요한 도움을 주지도 못 했다. 이렇게 생활하면서 들었던 생각이 아이들에게 정을 붙이자' 어차피 아이들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상황 또한 바뀌지 않을 것' 이라면 내가 바뀌어야만 했기에 조금이라도 아이들에게 정을 붙이기로 생각했다.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고 쉬는 시간에는 재미있게 놀아주었다. 체육시간이 되면 애정결핍인 아이를 좀 더 많이 신경 써 주었고, 휠체어를 끌며 장난을 쳐 주기도 하고, 웃어주기도 했다. 밥을 잘 먹을 때는 칭찬을 해주고, 나를 때리는 아이가 있어도 웃으며 받아주었다. 이렇게 내 마음과 행동이 바뀌자 아이들의 행동도 놀랍게 바뀌었다. 나를 봐도 인사를 하지 않았던 아이는 먼저 인사를 했고, 이동할 때 내가 먼저 웃어주었던 아이는 나중에는 먼저 웃어주었다. 나를 때리던 아이는 먼저 다가와 손을 잡아줄 때도 있었다. 처음 아이들을 고의로 해코지를 한다고 항의하시는 어머니의 전화도 없어졌다. 현장학습이 있는 날이면 고맙다며 학생 가방 안에 간식을 넣어 주셔서 아이들과 함께 나눠먹기도 했다.

 선생님이 학생들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학교를 재미있어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학생이 자신과 잘 놀아준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 어머님께 조그마한 감사 편지를 받기도 했고, 아이가 하교할 때 수고하신다며 가끔은 마실 것을 챙겨 주시기도 하였다. 내가 먼저 정을 들이니 아이들이 바뀌었다. 처음으로 해주던 칭찬은 어느새 진심이 되었고, 학생들은 비교할 수 없게 좋아졌다. 다음 학기에도 학생을 봐달라고 요청하시던 부모님도 계셨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큰 변화를 가져왔다. 덕분에 나는 학기가 끝날 때 학생들을 좀 더 잘 돌볼 수 있는 요원이 되었고, 선생님들 사이에선 열심히 일하는 복무요원이 되어 있었다.

나도 아파'

 ○○이는 나를 보며 씨익 하고 웃었다. 마치 안녕 우리 잘 지내봐' 라고 인사하는 것 같았다. 까까머리에 왜소한 체구, 큰 눈이 인상적인 ○○이는 지체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걷는 데 불편했고, 혼자 밥을 먹지도 못 했다. 용변처리조차 본인이 할 수 없는 타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아이였다. ○○이는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해맑게 웃었고, 내가 관심을 주지 않으면 왜 나한테 관심을 안줘? 라는 슬픈 표정을 짓기도 했다. 밥을 먹을 때면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데도 매운 음식을 바라보며 그건 뭐야? 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 내가 매운 것을 주면 받아먹고는 화들짝 놀라며 물을 찾았다.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며 물을 마시면 살았다는 표정과 함께 다시 밥을 먹었다.

 ○○이는 내가 눈을 맞춰주고 이름을 불러주면 함박웃음을 지었다. 머리를 때릴 때 머리를 살짝 두드려 주면 이건 무슨 놀이지? 라는 표정으로 자학을 멈추고는 했다. 내가 관심을 주지 않으면 나를 보며 보란 듯 자학을 해 관심을 줄 수밖에 없었다. 안기는 것을 좋아하는 ○○이는 가끔 안기기 위해 자학을 했다. 안아달라고 신호를 보내면서 내 눈치를 보다 내가 애써 무시하면 나 보란 듯이 자학을 해 안기고는 뭐가 그리 좋은지 함박웃음을 지어서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할 수 없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표현을 주변사람들의 머리를 뜯는 것으로 표현했다. ○○이는 자기 기분이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머리를 뜯었다. 밥을 먹이다 머리를 뜯기고, 놀아주다 머리를 뜯거나 가끔 기분이 격양되면 안경을 벗겨버리거나 뺨을 때릴 때도 있었다. 이렇다 보니 나중에는 ○○이가 손만 뻗어도 흠칫하고 놀라며 뭐' 왜? 뭐가 문젠데? 라고 혼잣말하며 ○○이의 눈치를 살피는 나를 보며 즐거워하는 ○○이를 볼 수 있었다. 그러면 나는 ○○이를 간질으며 나름의 복수를 하고는 했다. 그래도 나는 ○○이를 미워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신뢰해주고 담임선생님보다 나를 좋아하며 안아달라고 장난을 치고, 지금 내가 너 때문에 즐겁다고 내 머리를 뜯는 학생을, 나만 보면 반갑다고 함박웃음짓는 이 학생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 대신 나는 오늘도 내 머리를 뜯기며 말없이, 그리고 조용히 소리친다. 나도 아파'

나를 참 좋아해주던 남학생

 내가 보았던 많은 아이들 중 유독 생각나는 학생이 한 명 있다. 바로 ○○이다. ○○이라는 학생을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학급에 처음 들어갔던 날이었다. 신변처리와 이동지원, 식사지원이 필요 없는 보기 드물게 지원이 필요 없는 학생이었다. 도움은커녕 오히려 반 친구들을 챙기는 그런 아이였다. 큰 키와 순진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이는 낯을 많이도 가렸다. 말을 할 때면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얘기를 해 몇 번이고 되물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고, 말을 시키지 않으면 한 마디도 하지 않을 정도로 그만큼 소극적이고 행동도 느렸다. 그리고 나는 얼마 자나지 않아 ○○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바로 애정이었다.

 ○○이의 부모님은 맞벌이 가정이었고, 그만큼 관심을 쏟아주지못 하였다. 일주일 내내 같은 옷을 입고, 비듬이 가득한 머리로 등교 할 때가 많았고, 나도 다른 아이를 돌봐야 했기에 ○○이에게 별다른 관심을 주지 못 했다. 지내면서 보니 처음 낯을 많이 가렸던 아이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정이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어쩌다 나와 눈이 맞으면 조용히 웃으며 좋아했고, 체육시간 등 이동 수업을 할 때나 현장학습을 갈 때면 내 손을 잡고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쩌다 먼저 손을 잡아주고 말을 걸어주면 너무나도 좋아하는 아이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턴가 ○○이를 더 많이 보게 되었다. 그게 쉽지만은 않았다. 조용히 칭찬을 갈구했던 아이였기에 나는 조그마한 일에도 ○○이를 더 많이 칭찬해 주어야 했고, 간식이 생기면 항상 먼저 챙겨주었다. 현장 체험학습을 갈 때면 ○○이의 손을 먼저 잡아 주고 가끔 나에게 안기려 할 때면 밀어내지 않고 있는 힘껏 안아주었다. 내가 보던 아이가 있어 힘겨울 때도 있었지만 정이 많이 고픈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정을 채워주고싶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고 ○○이와 헤어져야 했을 때 아버님이 찾아오셨다. 아버님은 나를 보자마자 "○○이가 나를 만나고 조금이지만 전보다 많이 웃고, 많이 즐거워한다고, 고맙다ˮ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그 동안 많은 노력을 했지만 별로 달리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힘들었던 나에게 아버님이 해주신 말씀은 엄청난 힘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학기가 끝나 다른 반을 맡게 되어 ○○이와 헤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아버님이 해주셨던 말씀은 소집해제를 3개월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 참 많은 힘이 되고 있다.

소집해제를 3개월 앞둔 지금

 소집해제를 3개월 앞두고 있는 나는 지금까지 세 학급을 들어갔고, 이제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나는 특이하게 처음부터 지금까지 고등부를 맡았다. 그래서인지 고등부 학생들에게 많은 정을 느낀다. 일학년이던 학생들은 이제 이학년이 되었고, 나는 지금도 ○○이를 보살피며 근무를 하고 있다. 작년 겨울 처음 만났던 조그마했던 아이가 이제는 내 턱까지 키가 커서는 아직도 나를 보면 안아 달라고 두 팔을 벌린다. 밥을 처음 먹였을 때 질긴 음식을 주거나 과도한 양의 음식을 주다 뱉어내게 하던 실수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처음 곧 잘 걷던 아이가 이제 다리가 굳어 잘 걷지는 못 하지만, 이제는 나만 보면 웃는 그 아이는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이 아이와 함께한 시간 덕분에 사회복무업무가 나쁘지 않은, 좋았던 순간으로 내가 소집해제를 해도 오래오래 선명하게 기억될 것 같다.

 애정결핍이었던 ○○이는 지금은 다른 반이 되어 예전처럼 안아주거나 손을 잡아주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나만 보면 천천히 다가와 먼저 손을 잡아주며 아는 척하는 ○○이를 보면 그래도 이 아이에게 내가 많은 도움을 주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힘들지만 힘들지 않던 시간이었다. 내가 보살피던 다른 학생들 또한 나름 잘 지내고 있는 중이다. 학생들을 처음 봤을 때 잘 보살피고 많은 것을 가르쳐줘야지'라고 생각했던 나는 내가 가르쳐 주는 것 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배우는 중이다. 학생들에게서 조그마한 것에도 행복해하는 방법을 배웠고, 학생들을 통해 만족할 줄 아는 방법을 배웠다. 원주 청원학교는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예비 사회복지사인 나에게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회복지를 실천해야할지를 마음 깊이 생각해보게 해주는 시간이자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보며 부끄러워하고, 반성하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앞에서 말했듯 나는 이제 곧 소집해제를 한다. 하지만 여기서 배운 많은 것들이, 또 쌓아 올린 많은 추억이 언제까지고 내 마음에 남아있을 것 같다. 스물 넷 적지않은 나이에 시작해 길 다면 긴 시간동안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힘이 들 때나 지칠 때 꺼내볼 수 있는 좋은 경험임에 감사하며 내가 소집해제를 하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또 다시 학교에 와서 옛날 일들을 추억하며 아이들을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나는 또 다시 우리 반 학생들을 보살피러 간다.(konas)

원주청원학교 김현준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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