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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㉛ <입선> 96번 할머니 78번 할아버지

나를 변하게 한 두 어르신
Written by. 서병수   입력 : 2018-10-17 오후 4:5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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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농담처럼 말한 적은 몇 번 있지만 24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대체복무를 시작하기까지 사회복무요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 경우에는 삼수를 하는 동안 엄청나게 불어난 몸무게로 인해 병역판정검사에서 현역판정을 받지 못한 것인데, 나도 내가 뚱뚱한 것은 알았지만 현역으로 복무하기 무리일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내 생각이야 어쨌든 나는 이러한 이유로 작년 3월부터 창원 성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근무를 시작하고 나서야 나는 공익근무요원이라는 단어가 사회복무요원으로 바뀐 것을 알았다. 그리고 평소에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접하곤 했기에, 현역 군인들이 고생하는 동안 사회복무요원들은 편하게 근무한다고 여기는 부정적 편견까지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지만, 사회복지를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사회복무요원으로서 하얀 도화지와 같은, 아니 도화지는 도화지인데 좀 오래되어 약간 때가 탄 도화지 같은 상태였던 것이다. 이런 백지와 같은 내가 근무지에 처음 도착하고 나서 받은 가장 첫 질문은 이것이었다. "사회복지가 뭐라고 생각하세요ˮ상담실에서 과장님이 던진 이 질문은 내겐 너무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내가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처럼 거창한 일을 할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잡일이나 하다가 소집해제 할 건데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라고 내심 생각했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사회복무요원, 그리고 요원이 하는 일 자체를 깔보는 시선이 내 안에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터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회복지에 대한 생각들을 말씀드렸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나는 다소 도발적인, 그러나 어디까지나 속으로만 건방진, 겉으로는 아주 겸손한 상태로 사회복무요원으로 서 첫 발을 내디뎠다.

문제는 항상 엄한 데서 터진다.

 속으로 건방지든 겉으로 건방지든 그런 불손한 자세로 근무를 시작했으니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는 복지관을 이용하시는 어르신들의 식사를 위한 주방인 경로식당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아르바이트 몇 번이 내가 해본 일의 전부였기에 처음해본 주방일은 몹시 고되고 힘들었다. 처음엔 먼저 근무하던 요원에게 일을 배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간단한 재료 준비와 손질, 종종 조리장 선생님이 지시하는 일, 그리고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을 위한 도시락 준비가 오전 업무였고, 오후에는 설거지와 청소를 했다. 몸이 힘든 것이야 적응하면 되는 거지만 내게 문제가 되는 건 복지관 주 이용객인 어르신들을 대하는 것이었다. 아주 어릴 때 할머니 댁에서 함께 산 것을 제외하고는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을 만나고 대화할 일이 거의 없었던 터라 나는 어르신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말하자면 나는 노인에 대한 데이터가 너무 오래되어 업데이트가 시급한 구닥다리 기계 같은 상태였던 것이다. 어르신께서 그냥 옆에 앉아 계신 것만으로도 왠지 모르는 불편함이 생겨났고, 뭐라고 내게 말을 건네셔도 흐흐흐 하고 웃으면서 잽싸게 그 자리를 벗어나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거의 어르신들을 무서워하는 수준으로 피해 다녔다. 사실 주방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어르신을 직접 마주칠 일이 별로 없으니 큰 문제는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요원들이 해야 하는 일이 하나 더 남아 있었는데, 바로 명단체크였다. 복지관의 경로식당이 회원제로 운영되기도 하고 자주 결석하시는 분이 있나 확인도 할 겸, 배식 직전에 식당 옆 의자에 줄지어 앉아계신 어르신들께 번호를 여쭤보는 일이다. 내겐 번호를 여쭤보는 것부터 쉽지 않게 여겨졌는데 여기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나는 평소에도 귀가 잘 들리지 않고, 말귀를 못 알아듣는 편인데, 어르신들은 목소리가 작거나 발음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에 둘이 만나 최악의 조합이 된 것이다. 정말 총체적난국이었다. 같은 분께 번호를 여러 번 여쭤보게 되니 몇몇 어르신은 역정을 내셨다.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해도 그런 일에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었다. 결국 처음에 몇 번 명단체크를 나갔을 때에는 그냥 몇 분이 오셨는지 숫자만 맞춘다는 생각으로 아무 번호나 체크했었다. 완전히 제멋대로 체크한 것은 아니고,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명단을 둘러보고 이전부터 자주 오셔서 체크가 빼곡하게 되어있는 분들을 위주로 숫자를 채워나갔다.

솟아날 구멍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꼼수도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기에 나는 새로운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렇게 생각해 낸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예 어르신들의 얼굴과 번호를 함께 외워버리는 것이었다. 항상 맨 앞에 앉아계신 할아버지, 화장하고 오시는 할아버지, 코 옆에 작은 혹이 난 할머니.' 두 달 쯤 지났을 때 나는 명단에 있는 110분 남짓한 어르신 중 절반 이상을 외울 수 있었다.아직 어르신들을 대하는 게 어렵고 또 기계적으로 응대하고 있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얼굴과 번호를 외우는 일로 인해 예전보다는 어르신들을 대하는 게 나아졌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의미에서 나는 진정한 첫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예전처럼 내가 하는 일을 가볍고 쉬운 일로만 여기지 않게 되었고, 적지만 보람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렇기에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 일도 해봄직한 일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나서는 명단체크를 하러 나가서 어르신께 번호를 여쭤보는 게 형식에 불과한 경지까지 이르렀다. 예컨대 어르신께 번호를 여쭤보며 이미 볼펜은 그 분의 번호를 체크할 준비를 마치고 있는 것이다. 내 방식으로 어려웠던 문제를 이런 정도까지 해결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대견함을 느끼고 있었다.

오만과 편견이 겸손과 이해로

 그쯤에 그 일이 있었던 것 같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배식 준비를 마치고, 내가 명단체크를 하러 나갔던 날이었다. 평범한 날이었다. 항상 맨 앞에 앉아계신 43번 할아버지는 오늘도 맨 앞에 앉아계시고, 2번 할머니의 코에는 여전히 작은 혹이 나있었다. 한 분 한 분 번호를 체크해나가며 명단을 거의 다 채우다 보니 어느새 배식시간이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배식이 끝나기 직전에 78번 할아버지가 복지관을 가로질러 식당으로 오시는 게 보였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날따라 기분이 좀 좋았던가, 나는 78번 할아버지께 번호를 여쭤보는 대신에 "어르신 78번이시죠ˮ라고 말했다. 평소처럼 인상을 구기고 다가오던 78번 할아버지는 내 말을 듣고 허허 웃으시면서 "이제 아네.ˮ라고 짧게 말하시고는 식당으로 들어가셨다.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저 내 변덕이 만들어 낸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항상 무표정한 어르신들을 보며 나도 무표정하게 번호를 체크하는 과정은 너무 기계적이어서 나에게 대견함은 느낄 수 있을지언정 보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항상 인상을 쓰고 웃음과는 너무 멀어보이던 78번 할아버지가 내가 먼저 번호를 알은 체 했다고 내게 웃어 보인 것은 충격이었고, 생각지 못한 보람을 주었던 것이다. 내게 별로 수고롭지 않은 행동 하나가 그 분을 기쁘게 하고 또 내게 이런 보람을 안겨줄 줄 몰랐다. 아마 78번 할아버지에게 번호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당신을 기억하고 또 알아본 것 자체로 기뻐하신 것일 게다. 보람은 마약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 번 기분 좋은 보람의 감각을 알게 되자 내 처음의 건방진 속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내가 얻어가는 가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고, 또 그런 보람을 계속해서 찾게 되었다. 또 이전까지 어르신들은 항상 근엄하고, 웃을 줄 모른다고 생각해 노인을 항상 어려운 존재로 여기던 내 태도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96번 할머니의 가방을 들어드린 일도 내게 작은 보람을 안겨주었다. 96번 할머니는 78번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배식이 끝날 무렵에 늦게 오시는 분들 중 한 분이었는데, 사실 사시가 심하신 탓에 시선이 많이 비틀어진 탓에 평소엔 조금 무섭게 느끼던 분이었다. 보통 식사를 하러
오시는 할머니들은 보행을 돕고 물건보관도 겸하는 실버카를 끌고 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96번 할머니는 실버카를 끌고 오시면서도 항상 작은 가방이나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아 다녔다.  그러나 허리가 많이 굽으신 탓에 한 손에 가방을 들고 식당으로 올라오는 네 칸 남짓한 계단을 오르는 것도 힘에 부쳐하셨다. 이전에는 부끄럽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도 선뜻 도와드리지 못했다. 바보처럼 내 선의가 불편하실 수도 있다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애써 못 본 체 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78번 할아버지가 내게 웃어 주신 후로 나는 어쩌면 이런 내 태도가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을 고립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또 용기를 가지고 어르신, 제가 도와 드릴게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기에 이번에도 용기를 내보았다.

 명단을 체크하는 서류철을 내려놓고 96번 할머니께 다가가 가방을 들어드리겠다고 말하며 두 손을 내밀었다. 다행히 할머니는 선뜻 가방을 내주시며 학생 고마워요, 라고 말하셨고 나는 아녜요 별거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뿌듯함을 느꼈겠지만 더한 일이 그 뒤에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시는 길에 96번 할머니께서 가방을 뒤적거려 찾아낸 사탕 몇 알을 내 손에 쥐어주시며 너무 고맙다고 감사해 하신 것이다. 그 사탕은 옛날 사탕이었지만 아주 달콤하게 먹은 기억이 난다. 두 사건이 있은 후로 나는 어르신을 대하는 데 성실하려 노력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내게 주어진 일이니까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당위가 나를 움직이게 했다면, 이제는 스스로 그렇게 하고 싶다는 내 의지가 그런 태도의 근원이었다. 어쩌면 이제는 근무를 처음 시작하며 과장님이 내게 물었던 질문에 진짜 내 생각을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행동이라도 의무로서가 아닌 자의로서, 그리고 오만이 아닌 겸손으로 행하는 것이 봉사이고, 또 그것의 국가적 확장으로서 기능한 게 사회복지가 아니겠느냐고 감히 생각한다. 보람은 참 무서운 것이다. 참 건방진 속마음을 가졌던 내게 기꺼이 봉사하려는 마음을 주었으니 말이다.(konas)

성산종합사회복지관 서병수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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