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⑰ <입선> 행정복지센터에서 지역사회를 생각하며
지방선거, 그리고 행정복지센터
2018년 6월 13일, 직전에 열린 북미정상회담과 직후에 개막하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도 불구하고 지난 2주가 넘는 기간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습니다. 광역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의회, 동네와 밀접하게 소통할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의회, 그리고 교육감까지, 또한 전국의 열두 곳에서는 공석이 된 국회의원의 재보궐선거를 포함하면 각자가 7~8표의 표를 행사하는 큰 규모의 선거였습니다.
우리 고장인 경기도에서는, 선거 준비 과정을 놓고 몇 가지 문제가 크게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특정 후보의 포스터가 누락 또는 순서가 바뀌어 게시되거나, 각 가정으로 배송되는 선거 공보물에 일부 후보의 공보물이 전달되지 않는 등의 일로, 선거관리위원회에 항의가 쇄도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이번 선거를 사회복무요원으로서,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는 입장에서 겪지 않았더라면, 비슷하게 선관위의 일처리에 대해 의문을 가졌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동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며, 선거뿐 아니라 우리 생활의 여러 부분에 행정복지센터가 깊숙이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거에 쓰이는 벽보와 공보물만 해도, 벽보 부착과 공보물 발송작업의 대부분은 행정복지센터가 중심이 되어 이루어집니다. 비단 선거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지역의 일들, 소위 지역사회라고 부르는 수많은 일들이 이 행정복지센터가 중심이 되어서 논의가 되고, 이루어집니다. 지방행정조직의 가장 말단인 동 행정복지센터,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께서는 종종 '동사무소'라고 부르고, 일상에서 그저 주민등록등본이나 가족관계증명서와 같은 행정서류를 발급받고 전입신고를 하는 등 단순히 행정민원만을 위해 찾고는 했던 이곳이 바로,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복무하는 저의 근무지입니다.
일본에서의 삶, 한국에서의 삶
저는 안산이라는 고장에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주소를 두고 살아왔지만, 성인이 되고 스무 살을 넘기고서는 8년에 가까운 시간을 일본 도쿄에서 홀로 지내며 한국 사회와는 조금 거리를 둔 채 살아왔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정치학과 행정학을 배우며, 환경문제나 에너지문제, 사회의 참여 등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데 제 20대를 바쳤습니다. 특히, 2011년 3월에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을 현지에서 온몸으로 겪으면서 지역사회와 여러 사람들 간의 유대의 중요성을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2015년 유엔에서 모든 회원국의 합의로 지속가능발전 목표(SDGs)이 채택되었는데, 세계 각지를 누비며 합의에 이르기 위한 준비과정을 추적하며, 또 채택 이후에 각국이 또 지역사회가 이를 어떻게 실천할지에 대해 일본 전국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토론하며 고민해 왔습니다. 비록 신분은 외국인이었지만, 일본 현지의 또래 젊은 친구들 누구보다 더 정치와 현실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못 다한 병역의무를 위해 일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오니, 막상 한국 사회의 특성이나 구조에 대해서는 부끄럽게도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동 행정복지센터와 같은 말단의 행정조직이 없고 시군청과 구청이 일선의 행정업무를 총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민이 지역의 일을 접하거나 참여하기가 매우 어렵고, 또 지역의 유대와 연대를 촉진하는 구심점이 없어, 심지어는 같은 동네에 사는 서로가 서로를 모른 채 살아가다보니 고독사와 같은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렇듯 일본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는 심도 있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서도, 정작 한국의 사정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동안 살아왔던 고장인 안산에 대해서도, 거리와 건물과 공간만 그대로일 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분명히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소집영장을 받고, 입대를 앞둔 누구나처럼 앞으로 기다리고 있을 2년여 간의 생활에 대한 어느 정도의 막연함과 두려움을 안고 육군훈련소의 문을 나오자, 저는 지금의 근무지인 집에서 가까운 한 행정복지센터에 배치되어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행정복지센터' 에 근무합니다.
근무지의 관할구역인 안산시 상록구 이동은, 제가 어릴 적에 학원을 다니고 친구들과 놀기도 하며, 아마도 집과 학교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을 곳입니다. 익숙한 풍경의 공간이지만, 사실 그 안의 자세한 것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회복무요원으로 지난 1년간 근무하며 이 지역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흔히들 작은 공간으로 인식되는 동 행정복지센터는 사실은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관계를 맺는 공간입니다. 인구 약 3만여 명이 살고 있는, 소위 중규모'의 동이라는 이곳에는 하루에 대략 200여 명의 사람들이 민원 업무를 위해서 찾아오고, 또 같은 건물에 함께 위치하고 있는 주민자치센터와 그곳에서 운영하는 문화체육 프로그램과 헬스장 등을 이용하기 위해 또 수백여 명의 사람들이 매일 이곳을 찾습니다.
또한 통장협의회나 주민자치위원회, 새마을지도자협의회, 새마을부녀회,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바르게살기위원회 등 직능단체'라고 부르는, 주민들로 구성되어 동의 발전을 위해 봉사하시는 여러 주민들의 단체 또한 행정복지센터와 함께 활동하여, 이 모두를 합치면 매일매일 천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행정복지센터를 찾아오고,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저를 포함한 사회복무요원들이 하는 일들은, 행정복지센터의 업무만큼이나 보통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사회복무요원이 하는 일은 동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많고 넓을지도 모릅니다. 행정복지센터가 단순히 민원인들의 민원사무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동과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 여러 방면에서 힘쓰고 있듯, 사회복무요원들도 이러한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 묵묵히 직원들과 협력하고 뒤에서 지탱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으로는 행정복지센터를 찾아오는 수많은 주민들에 대한 안내나 행정서류의 정리, 직능단체의 정기적 및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회의의 준비와 지원부터 시작해서, 관내에 불법으로 게시된 광고물과 현수막의 제거나 국토대청결 운동을 비롯한 환경미화활동에 나서며, 도움이 필요한 주민에게 후원품과 지원물품을 전달하러 직접 방문하기도 합니다. 계절마다 열리는 지역축제와 행사에 대비해서는 필요한 홍보물과 비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작년 여름에는 담당 직원과 함께 제 전공과 지식을 살려서 행정복지센터 청사와 지역 내의 에너지 절약 계획안을 기획하기도 했고, 그 과정을 통해 동의 자세한 사항을 속속들이 알 수도 있었습니다. 매넌 지역 주민들이 직접 토론하여 예산의 사용처를 결정하는 주민참여예산위원회의 회의도, 지역의 실상과 주민의 요구사항을 폭넓게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습니다. 작년 여름에 있었던 을지훈련과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민방위 대피훈련 때에는 직원과 통장님들과 함께 훈련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시설의 어딘가가 고장 나면 제일 먼저 달려가는 것도 우리들 사회복무요원입니다. 이렇듯 보이는 곳, 보이지 않는 곳을 마다하고 손닿는 모든 곳에서 직원들의 업무를 도와 동과 지역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덕분에, 처음 배치되어 복무를 시작할 즈음에는 더운 여름 땡볕 아래에서 매일매일 한 시간 이상을 들여 골목골목마다 나부끼던 불법 광고물을 제거하러 다녀야 했지만, 매일매일 들인 노력으로 이제는 불법 현수막들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 사시사철 계절에 맞는 꽃들을 행정복지센터 주변과 인근 학교 주변 등에 심고 가꾸어, 주민들이 지나가던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때면 뿌듯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직능단체 회원들과 길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할 때, 지역 축제에서 많은 주민들과 함께하거나 노인의 날 행사에서 어르신들께서 점심식사를 맛있게 드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때, 그
외에도 근무 중에 여기저기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웃는 얼굴들을 보며, 보람과 즐거움을 느낍니다.
물론, 근무의 모든 순간들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작년 10월에는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하신 민원인이 갑자기 기도가 막혀 응급조치를 취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고, 술에 취해 방문한 민원인이 난동을 피워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습니다. 사회복지 창구에 방문하는 여려 민원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어깨너머로 듣고 감정이 이입되어 내가 담당자라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 깊어지는 날도 있고, 시정홍보물이나 시책을 접하고 나라면 이렇게 하고 싶다.'며 여러 생각들로 머릿속을 채워가는 날들도 있습니다.
한 팀', 그리고 지역사회를 생각하다
물론 이 모든 순간들은, 당연하게도, 사회복무요원과 직원의 구분없이, 직면한 일에 한 팀으로써 함께 업무에 임하고 함께 땀 흘리는 모두의 덕택일 것입니다. 그런 한 팀'으로 일하는 순간이 가장 빛났던 때가, 처음에 이야기했던 선거 때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수많은 업무들이 밀려드는 속에서, 저도 제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필요한 정보를 먼저 수집해서 공유하고 숙지해서, 최대한 한 발짝 먼저 움직여서 일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수백 장의 벽보, 수십만 장의 공보물, 여섯 개의 투표소…. 모두가 함께 땀 흘린 덕택에 아무런 사건사고 없이 무사히 선거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덕택에, 지난 1년이 매일매일 보람차고 배움과 느낌으로 가득한 하루하루가 되었습니다.
행정복지센터에서의 지난 1년을 통해, 그동안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지역사회의 유대가 한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또 그 속에 파고듦으로써 저도 그 넓은 네트워크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일본과 비교해서, 행정복지센터라는 말단 행정조직의 존재, 통반과 같이 더 작은 단위의 주민간의 조직, 다양한 직능단체와 주민이 참여 가능한 활동들을 통해서, 지역사회와 개인이 서로 유리되거나 개인이 고립되지 않고, 커다란 네트워크를 이루어서 역동적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국 단위로 시행되는 사업이 동과 같은 작은 지역 단위에 스며드는 것도,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가 인식하여 정책으로 옮겨 실행하기에도, 한국은 매우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고, 필요에 따라 잘 활용되고 있다고, 현장에서 1년 동안 일하면서 깊게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점을 저를 포함한 요즈음의 젊은 사람들이 직접 느끼고 참여하기 쉽지 않다는 점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커다란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사회복무요원으로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게 되어, 가장 현장과 가까운 곳에서 직접 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던 점은 제게 큰 행운이었다고도 생각합니다. 앞으로 남은 1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하루하루 전체의 일부분으로써 제 능력과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한 2년간의 경험이 앞으로의 제 인생과 전공, 연구에도 커다란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6월 16일 토요일, 내일은 동네에 열린 매실을 따서 그 수익금으로 지역의 장학금을 마련하는 축제가 열리는 날입니다. 토요일인 내일은 원래대로라면 쉬는 날이겠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축제를 즐길 모두를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하겠습니다.(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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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행정복지센터 강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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