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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 수기 ʻ나에게 주어진 사회적 미션ʼ(최우수상)

Written by. 박주승   입력 : 2019-11-18 오후 2: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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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청은 지난 5월 24일∼ 6월 21일까지 사회복무요원 체험수기를 공모해 선발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2019 젊음, 향기로 피어나다'를 9월 26일 발간했다. 2006년 시작된 체험수기집 발간은 올해가 14번째로 사회복무요원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겼다. 코나스는 병무청의 협조 아래 우수작을 중심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이야기에 앞서

 사회복무요원인 나에게 주어진 사회적 미션은 무엇일까?’ 4주간의 군사훈련을 받으며 기록한 메모장의 가장 첫 줄에 적은 질문입니다. 저는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기 전까지 경영학을 전공하고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여 운영하였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관심을 가지던 분야에서 사회에 조금이나마 이로운 영향을 끼치기 위해 열정을 쏟았습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정부의 지원을 받아 창업을 하였고,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을 해외에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 부딪히다 보니 어느덧 주변의 친구들과 동기들은 모두 전역을 한 후였습니다.

 그렇게 약간은 늦은 시기에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복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9명의 아동들과 지난 1년을 보내며 이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습니다. 꼬박 1년이 지난 시점에 저는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요? 이 글은 그간 답을 찾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 저의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한 가짜 선생님에서 진짜 선생님이 되어가는, 또 앞으로 남은 복무기간을 어떻게 채워나갈지에 한 다짐의 글이기도 합니다.
 
작은 차이가 만드는 큰 변화

 아이들과 인사조차 나누기 어색해 하던 제가 복무하는 곳은 작은 농촌마을의 지역아동센터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무서워하던 아이들과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센터는 다문화 가정, 한 부모 가정, 조손 가정 등 취약계층의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 아이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학습하고, 친구들과 함께 따뜻한 저녁 한 끼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의 기본 업무입니다. 처음 센터에 출근 후 약 2주 동안 업무에 대해 배우고 아이들과 생활하며 한 가지 문제를 발견하였습니다. 저의 책상은 사무실에 있고, 아이들은 항상 거실의 작은 소파에 옹기종기 모였습니다. 한 센터 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레 아이들과 소통할 기회없이 맹목적으로 기본 업무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진단받은 허리 문제로 4급 판정을 받았지만, 과감히 아이들이 모이는 낮은 소파에 앉았습니다. 선생님이 자신의 바로 옆에 앉는 상황이 어색한지 처음에는 아이들이 자리를 피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어디가냐고 선생님이랑 얘기하자며 아이들을 조르고 설득하였습니다. 그렇게 몇 주를 함께하니 이제는 자연스레 저의 무릎을 베개 삼아 낮잠을 자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곁으로 다가가니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여 매일 무릎에 상처를 하나씩 만들어 오는 아이, 군것질을 하였는지 옷에 온갖 양념이 묻어있는 아이, 무슨 일인지 표정이 썩 좋지 못한 아이 등. 아이들의 변화와 그날의 기분들을 더욱 쉽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아동의 높이에 맞는 이 소파는 불편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시시콜콜한 대화와 함께 온기를 나누다 보면, 사회복무요원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하루는 초등학교 2학년인 한 아이가 평소와 달리 축 처진 어깨와 인사도 없이 센터에 들어왔습니다.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단 걸 알아채고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한참을 망설이고 머뭇거리던 그 작은 입에서는 “엄마가 보고 싶어요.”라는 예상치도 못한 말이 새어 나왔습니다. 부모님의 이혼 후 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아이는 남몰래 아픔을 꼭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온전히 그 아픔에 공감해 줄 수 없어, 섣부른 한 마디가 더 큰 아픔이 될까봐 말없이 아이의 어깨를 감싸 안았습니다. 때론 침묵이 더 큰 위로가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런 저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꼭 안긴 채 작은 목소리로 “선생님 고마워요.”라고 속삭였습니다. 그 순간 어떤 단어로 딱 정의할 수 없는 뭉클함이 가슴 한 편에 자리하였습니다. 아마 진심으로 이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게 주어진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 조금은 느리게 흘러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직 어린 이 아이가 속상하고 힘이 들때 그저 조용히 어깨를 토닥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곁에 누군가가 필요하지만 언젠가 자신의 아픔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도록. 비바람을 막아줄 수는 없어도 함께 맞을 수 있는 사람이 사회복무요원이라고 생각합니다.

 Dream은 Dream이고, Free는 Dance다!

어느 날 영어 숙제를 하던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제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오늘 배운 단어를 제게 자랑하기 위해서 “선생님 Dream이 뭘까요?” 웃으며 말했습니다. 정답을 모르는 척 “Dream! 우리 센터 이름에도 들어가잖아. 무슨 뜻이야?”라고 되물었습니다. 자신보다 몇 뼘이나 더 큰 선생님이 정답을 모른다니 신이 난 듯 “꿈이잖아요. 그것도 몰라요?”라고 저를 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모습이 귀여워 “그럼 ○○이 꿈은 뭐야?”라고 또 물었습니다. 전부터 정말 궁금하던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떤 거창한 꿈을 갖고 있을까. 변호사? 경찰? 의사? 아니면 요즈음 뜨는 유튜버? 아이의 입에서 나온 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선생님 꿈은 꿈이에요!” 이게 무슨 말일까.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제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선생님 매일 밤마다 꾸는 꿈은 바뀌잖아요. 꿈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거예요. 지금 저한테 꿈이 뭐냐고 물어봐도 말해 줄 수 없어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습니다. 특별한 것을 기대한 저의 머리를 한 대 때리는 듯 아이의 눈빛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놀라움을 애써 감추고 이번에는 다른 질문을 하였습니다. “○○아~ 그럼 Free는 뭘까?” 경영학과 경제학을 원서로 공부한 제게 Free는 무료의 의미가 더욱 강하였습니다. ‘자유’라는 답을 내놓으면 무료라는 의미도 있음을 알려줄 의도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의 입에서는 자유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기다렸단 듯이 “○○아, 자유라는 의미도 있는데 공짜라는 의미도 있어! 이건 몰랐지?” 물었습니다.

 아이는 몰랐음을 들키기 싫었던지 대답없이 살짝 웃기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선생님, Free는 Dance에요!”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던지곤 춤을 추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아이가 춤을 추자 서로 짜기라도 한 듯 주변의 친구들도 정체모를 춤을 췄습니다. 다소 우스꽝스럽고 귀여운 춤을 추는 아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였습니다. 제게 보여주고 싶었나 봅니다. 춤을 출 때 행복하고, 그것이 곧 자유로운 것임을. 선생님이 가르침을 받은 순간이었습니다. 대단한 꿈과 멋진 이야기를 기대한 제게 지혜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아이들이 춤을 추고 싶을 때는 마음껏 춤출 수 있는 자유를 지켜주는 것이 우리의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회가 정한 기준과 틀에 맞추려 하지 않고, 각자의 개성과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거창한 꿈을 기대하는 사회를 향해 꿈은 꿈이라고 소신껏 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 아이들이 순수함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사회복무요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키워나가는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인식

 4주간의 군사훈련, 복무기본교육, 직무교육 등 사회복무요원 교육과정을 이수할 때면 항상 빠지지 않는 말이 있었습니다.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회복무요원’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생겼음에도 여전히 우리를 공익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요원들은 그마저도 아닌 ‘야’, ‘어이’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교육을 받을 당시 강사님께서는 “우리 사회가 사회복무요원에 해 좀 더 나은 평가와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에 공감과 함께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더 나은 평가와 대우는 올바른 태도와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저 맹목적으로 바라는 것이 아닌 먼저 우리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에 옳은 인식이 자연스레 자리할 것입니다.

 우리 센터는 일반 가정빌라 내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빌라 내의 주민 분들을 매일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한 분 한 분 마주칠 때마다 아이에게 그렇듯 웃으며 인사를 건넵니다. 사회복무요원 헌장에 적힌 글처럼,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시작이 저에게는 인사였습니다. 이 작은 인사는 쌓이고 쌓여 제게 “오늘도 고생이 많습니다.”라는 따뜻한 한마디로 되돌아 왔습니다. 어느 날은 아주머니께서 아이들이랑 놀아주느라 고생이 많다며 비타민 음료를 제 손에 쥐어주기도 하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센터가 일반 빌라에 위치하다 보니, 항상 주변에 쓰레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선뜻 쓰레기를 치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쓰레기는 쌓여가고, 특히 비가 온 날은 담배꽁초로 인한 악취도 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는 아이들이 비교적 늦게 오는 화요일 오후를 쓰레기 줍는 날로 정하였습니다. 그리고 항상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는 곳에 재활용 용기를 쓰레기통으로 활용하였습니다.

 매주 봉투를 손에 쥐고 주변을 청소하기 시작하자 금방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제가 청소하는 모습을 본 아이들 중 몇몇이 저를 돕기 위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혹여나 쓰레기를 버리는 친구를 보면 다그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청소하고 정리하는 모습을 본 이웃 할머니께서는 “군인 아저씨 덕분에 빌라가 깨끗해 졌네!”하며 칭찬해 주셨습니다.

 작은 일이지만 봉사를 실천하자 저를 바라보는 주변 분들의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그저 단순히 설거지와 센터 내부만 청소하는 학생이 아닌, 사회를 위해 힘쓰는 사회복무요원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주어진 기본 업무를 벗어나, 사회의 공익을 위해 헌신하니 저에 대한 시선도 변화하였습니다. 나에 대한 평가는 나 스스로가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직업정신을 가지고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행동한다면 말입니다.

 때로는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고생 많습니다.”라는 그 말 한마디에 또 다시 힘을 내어봅니다. 저는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제게 주어진 미션들을 찾고, 아이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줄 수 있는 사회복무요원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사회복무요원인 것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박주승(남지드림지역아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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