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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단체 릴레이 탐방 리멤버 솔저스> 6. 육군종합학교전우회

“헌신에 대한 부족한 기록 아쉬워… 꼭 기억해달라”
Written by. 국방일보   입력 : 2020-04-23 오전 10: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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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국방일보에서 게재하는 ‘참전단체 릴레이 탐방 리멤버 솔저스’ 기획 기사를 국방일보와 협조하에 시리즈로 전재한다.[편집자 주]

 ‘헌신’.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볐던 6·25 참전용사들의 삶을 표현하는 데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이제 고령이 된 참전용사들이 바라는 것은 대단한 보상이나 존경이 아니다. “그저 우리의 헌신을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 노장들이 후대에 남기는 간절한 당부의 말이다. 리멤버 솔저스, 오늘은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참전·친목단체 가운데 최고령 단체인 육군종합학교 전우회를 소개한다.

 ▲ 1998년 11월 20일 육군종합학교 전우회가 개최한 ‘충용탑 명각 준공식’ 당시의 모습. ⓒkonas.net

 

육군종합학교 김정규 전우회장

 김정규(91) 육군종합학교(육종) 전우회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자택에서 진행됐다. 동행한 향군 관계자와 함께 안방에 들어서자 백발의 노장이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김 회장이었다. 이마엔 주름이 가득했고, 팔다리는 앙상했다. 육종 전우회를 이끌며 국가와 군의 발전을 위해 정열적으로 뛰었던 노장의 건강한 예전 모습을 사진으로 자주 접했던 터라 마음이 더 아팠다.

 향군 관계자가 김진호 향군회장이 보낸 감사편지와 선물을 누워 있는 김 회장의 머리맡에 놓았다. 기자가 인사를 건네자 노장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버지가 최근 눈물이 많아지셨어요. 아버지, 반가운 손님 왔는데 왜 울고 그래요. 울지 마세요.” 김 회장 곁을 지키고 있는 장남 김덕 씨가 부친의 눈가를 닦아주며 말했다. 한없이 강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 아들의 절절한 심정이 느껴졌다. “찾아줘서 고마워서….” 김 회장의 메마른 입술에서 힘겹게 첫 마디가 나왔다.

 김 회장은 타고난 군인이었다. 육종 헌병 병과 장교 출신인 김 회장은 원칙을 중요시하며 호불호가 분명한 성격이었다. “저와 남동생 두 명에게는 상당히 엄한 아버지셨어요. 그래도 사실은 속정이 깊고 사람을 좋아하는 분이란 걸 주변 모두가 알았죠.” 아들 김씨가 말했다. 향군 관계자는 “김 회장님이 몇 달 전만 해도 불쑥 향군 사무실을 찾아와 장난스럽게 말을 걸곤 하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노년에도 비교적 강건했던 김 회장은 지난해 아내와 사별한 이후 자가면역저하를 겪으며 최근 몰라보게 기력이 쇠했다고 한다.

6주 교육 후 바로 최전선 투입

 육종은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15일 부산 동래에 세워진 전시 체제하의 사관학교였다. 전쟁 당시 부족했던 소대장을 급히 충당하기 위해 여러 병과학교를 하나로 묶은 단기 양성기관으로서 육종이 만들어졌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문을 두드린 평범한 청년들이 이곳에서 불과 6주간의 교육을 받고 곧바로 전쟁에 투입됐다. 1951년 8월 18일까지 약 1년 동안 육종에서 배출한 장교는 총 7288명이다. 이는 이 기간 임관한 육군 장교 1만378명의 약 67%에 해당한다. 김 회장 역시 이들 중 한 명이었다.

 ▲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 10일 육군종합학교(육종) 제18기 졸업 및 임관식 당시의 사진. 1951년 8월 18일까지 약 1년 동안 육종에서 배출한 장교는 총 7288명으로 이중 전·사상자가 거의 절반에 달한다. ⓒkonas.net

 

 육종 장교들은 전쟁 당시 주로 소대장을 맡았다. 당시 소대장은 전입 신고와 동시에 전사한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이렇게 위험한 최전선의 전투를 이끈 육종 장교들의 피해는 극심했다. 육종 장교로 임관한 이들 중 거의 절반이 죽거나 다쳤다. 전사자는 1377명, 부상자는 2256명에 달했다. 피 끓는 청춘들이 오직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을 내던진 결과였다.

 육종 장교들은 6·25전쟁 당시 전투 현장뿐만 아니라 군수,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다. 전후에는 대부분 현역으로 복무하며 우리 군의 발전에 이바지하다 베트남전에도 426명이 참전했다. 아울러 육종 장교들은 전역 이후 교육·법조·언론·금융·산업계 등에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선도했다.

 육종의 헌신과 희생에 대한 기록이 전사에 비중 있게 남지 못했다는 것이 김 회장을 비롯한 육종 전우회원들의 가슴에 남은 회한이다. 육종 장교들은 주로 소규모 전투의 최일선에서 싸웠고, 직속 후배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향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훈장을 받았어도 여럿 받았어야 마땅한 전우들인데…” 김 회장의 한탄 속에 먼저 떠난 전우들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김 회장은 기자를 바라보며 “육종의 이름을 젊은 사람들이 부디 기억하고 기록해 달라”고 당부했다.

참전단체 중 평균 나이 가장 높아

 육종 전우회는 참전단체 가운데 회원 평균 나이가 가장 높은 편이다. 1934년생이 최연소 회원일 정도다. 전후 7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많은 육종 장교가 유명을 달리했다. 매년 열리는 육종 전우회 추모행사의 참석자도 갈수록 줄어 최근에는 겨우 수십 명 남짓이다. 올해는 더 큰 걱정이다. 매년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멋지게 추모사를 낭독했던 전우회장의 참석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김 회장에게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노장은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더 이상의 인터뷰는 힘들어 보였다. 김 회장의 건강을 고려해 그만 자리를 뜨기로 했다. 방을 나서려는 기자에게 김 회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열심히 살아야 해.” 후배들을 위하는 노장의 진심이 담긴 짧지만 무거운 한마디였다. 김상윤기자 < ksy0609@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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