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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단체 릴레이 탐방 리멤버 솔저스> 11.백골전우회

“한강 방어·38선 진격 기록… 남은 바람은 평화통일”
Written by. 국방일보   입력 : 2020-07-02 오전 10: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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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국방일보에서 게재하는 ‘참전단체 릴레이 탐방 리멤버 솔저스’ 기획 기사를 국방일보와 협조하에 시리즈로 전재한다.[편집자 주]

‘죽어서 백골이 되더라도 끝까지 조국을 수호하겠다’는 정신으로 싸워 이긴 부대가 있다. 

철모 양쪽에 백골을 그려놓고 전쟁에 참전했던 이 부대는 눈부신 전투력으로 한강 방어선을 사수했고, 38선을 전군 최선봉으로 돌파하는 개가를 올렸다. 그리고 지금은 철의 삼각지대로 불리는 중부전선의 심장부를 철통같이 경계하고 있다. 바로 ‘백전백승의 신화’를 이뤄낸 백골부대다.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백골부대원으로 승전의 역사를 썼던 김구현(93) 백골전우회 고문을 찾아 치열했던 전투와 소회를 들어보았다. 

백골부대의 탄생  

서울 마포대교 인근의 여의도 한강공원. 빼곡히 들어선 고층빌딩 숲을 따라 한강 변으로 발길을 옮기며 지나는 길목에 6·25 당시 수도 서울을 사수했던 감격을 간직한 백골부대 전적비를 마주할 수 있었다. 전적비 옆 간이 의자에 앉아 있던 김 고문은 기자를 보자마자 반갑게 맞아주었다. 

“원래는 양화교 인공폭포 공원 내에 전적비가 있었어요. 하지만 월드컵대교가 들어서면서 지난달 5일 전적비를 이곳 여의도로 옮겼죠. 매년 6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백골전우회 회원들이 이곳에 모입니다. 이곳 한강에서 방어 임무를 수행하다 목숨을 바친 전우들의 넋을 달래기 위함이죠.” 

 ▲ 백골전우회 김구현(왼쪽 셋째) 고문과 백골전우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 자리한 백골부대 전적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방일보] ⓒkonas.net

 

평안북도 구성군이 고향인 김 고문은 6·25 당시 백골부대의 일원으로서 조국을 위해 싸웠다. 그는 아흔을 넘긴 고령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힘 있는 목소리로 당시의 기억을 생생히 증언했다. 

“한신 장군의 주도로 ‘사상적으로 단합된 부대를 세운다’는 뜻 아래 모인 청년들이 1948년 백골부대의 모체가 된 조선경비단 3여단 18연대를 조직했어요. 우리는 조국을 위해서는 죽음도 두렵지 않았어요. 바이킹처럼 용맹스럽게, 백골이 되더라도 이 땅을 지키자고 결의했죠. 그렇게 해서 백골부대가 탄생한 거예요.” 

6·25전쟁에서 발휘된 전투력  

하나 된 정신력과 강한 훈련을 거친 백골부대의 힘은 나라의 위기에서 발휘됐다. 

“6·25가 터졌을 때 1대대는 거의 휴가나 외출 상태였어요. 비상소집을 해봤자 당시는 교통편도 여의치 않으니 쉽지 않았죠. 그래서 급한 대로 2·3대대만 7사단 지원을 위해 출동하고 동두천 근방 갓바위에 연대본부를 차렸죠. 정보과 선임하사였던 나는 곧바로 정찰에 나섰는데, 북한군 보급부대를 발견했어요.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니 의정부로 향하는 길에 북한군 마차 12대가 보급품을 싣고 가는 게 보였죠. 즉시 부대에 보고해서 집중사격을 실시해 그들을 저지하고, 병사 11명과 장교 1명의 포로를 잡는 첫 성과를 거뒀죠. 그게 우리가 거둔 승리의 시작이었어요.” 

하지만 북한군은 맹렬히 남하했고, 전쟁 발발 3일 만에 미아리 고개를 넘어 서울까지 진격하기에 이른다. 

6일간 한강방어, 북한군 도하 지연...38선 돌파 후 최북단까지 진격 

“그해 6월 27일 지금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자리에 있던 연대본부에 북한군 포로를 인계하고, 밤에 잠깐 눈을 붙였는데 새벽녘에 포탄 소리에 놀라서 잠이 깼어요. 이남으로 향하는 길목은 한강 인도교가 끊어져서 벌써 시체들이 산처럼 쌓여 있고, 아비규환이 따로 없더군요. 그러다가 삼각지에서 북한군과 시가전을 했는데 탱크로 밀고 오는 기세를 당해낼 수가 없었어요. 결국 마포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와서 지금의 영등포역 인근에 대대본부를 만들고, 노량진 수산시장부터 양화교 인공폭포까지 배치돼 한강 방어에 돌입했죠.” 

그렇게 백골부대는 시흥지구 전투사령부 산하에 한국군 혼성부대의 일원으로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북한군의 도하를 저지했다. 한강방어선전투는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2일까지 6일간 계속됐다. 

“26일에 이미 북한군 6사단 14연대가 김포로 상륙했어요. 그들은 김포비행장을 점령하고, 28일엔 시흥까지 진입했어요. 인천과 영등포 사이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역습을 하기 위해서였죠. 우리는 ‘한강까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교대병력도 없이 북한군의 안양천 도하를 막는 데 사활을 걸었어요.” 

이처럼 눈물겨운 6일간의 한강 방어는 북한군의 한강도하를 지연시켰을 뿐 아니라 분산된 병력을 수습하고, 유엔군이 참전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실향민 아픔… 평화통일 반드시 이뤄야” 

한강 방어임무를 완수한 백골부대원들은 이후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포항에서 양양까지 330㎞를 전군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격했다. 그리고 1950년 10월 1일, 23연대 3대대가 전군 최선봉으로 38선을 돌파하는 위업을 달성한 데 이어 원산을 탈환하고, 해산진, 백암, 부령까지 진격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특히 18연대의 함경북도 부령 진격은 연합군과 국군을 통틀어 최북단까지 진격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 백골전우회 김구현 고문이 백골부대 전적비가 있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6·25전쟁 당시 치열했던 한강방어선전투를 증언하고 있다. [국방일보] ⓒkonas.net


“죽을 위기도 많았어요. 보은에서 상주로 후퇴하는 중에는 쏟아지는 파편 속에 전우들을 보내야 한 적도 있고, 중공군에 포위를 당한 상황을 뚫고 빠져나온 적도 있습니다. 적의 수류탄 공격으로 엉덩이에 파편을 맞은 적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어요. 오직 국가를 위해 생사를 초월해 싸워서 이기자는 굳은 신념뿐이었죠. 그게 바로 백골정신입니다.” 

이제 그의 바람은 자신들이 지켜낸 대한민국의 평화 통일뿐이다. 

“치열했던 전투의 그날도 벌써 70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우리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을 이뤄냈지만, 통일의 꿈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은 큽니다. 나 자신도 실향민이에요. 8남매의 장남인데 부모님과 형제들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살아왔지요. 다시는 이 땅에 전쟁으로 인한 아픔이 없도록 평화통일을 이뤄내야 돼요. 그리고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렸던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백골이 되더라도 싸웠던 백골정신은 세월이 흘러도 살아있으니까요.” 글·사진=노성수 기자< nss1234@dema.mil.kr > 

    2020.12.3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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